『내가 네 번째로 사랑하는 계절』이라는 책이 있다. 이 기막힌 책의 제목처럼 나도 계절 중 여름을 네 번째로 사랑한다. 여름에겐 미안하지만.
여름이면 몸무게가 2킬로씩은 빠진다. 모든 식욕이 사라져 저절로 다이어트가 되는 계절. 지금은 8월, 여름의 한 가운데에 있다. 그래서 되도록 여름엔 두문불출, 웬만하면 집 밖을 나가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여름 놀이터 노역을 제외하고.
내리쬐는 햇볕 아래에서 아이들을 지켜본다.
최대한 그늘을 찾아가 보지만 이내 개구진 아이들 덕에 결국 햇볕 아래다. 눈살이 절로 찌푸려지며 놀이터 노역용 챙 넓은 모자를 주섬주섬 꺼내 쓴다. 내 돈 주고 살 줄은 꿈에도 몰랐던 이 모자를. 햇빛뿐만 아닌 내가 숨기고 싶은 은밀한 것들까지 가려질 것만 같은 이 모자는 나의 무적 방패다.
사실 이 모자를 쓰기까지 몇 번의 시행착오를 거쳤다. 아줌마라는 정체성을 받아들이기 전 나는 어떻게든 좀 덜 아줌마스러운 모자들을 시도해 봤지만 햇빛을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결국 챙이 점점 커지더니 왜 그 많은 아줌마들의 선택을 받았는지 알법한 모자를 이제는 당당히 쓴다. 남편의 비웃음과 조롱은 여전하지만 뭐 어떤가. 아줌마는 괜히 아줌마가 아니다. 내공과 현명함으로 어떻게든 멜라닌 색소가 빛을 만나 고개를 쳐드는 것을 막고, 기미와 검버섯에게 자리를 내어주지 않으려 부단히 애쓰는 것이다.
숨이 턱턱 막히는 더위와 기미와의 전쟁 가운데 죽지 말란 법이 없듯 하나님은 가장 선한 것을 하나 주셨으니 그것은 바로 복숭아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과일이자 여름에만 맛볼 수 있는 귀한 아이. 너로 인해 나의 여름은 빛이 난다.
이 복숭아를 두고도 여름철 취향 전쟁이 벌어지기도 한다.
딱복이냐, 물복이냐 혹은 백도냐, 황도냐.
선택 자체가 행복인 이 전쟁에서 우열을 가리기 힘들지만 굳이 나의 순위를 매겨보자면 물복보단 딱복, 황도보단 백도다.
아삭아삭 하얀 속살에, 핏기 도는 분홍색 볼 터치로 물든 딱복과 백도의 조합은 그야말로 환상이다. 한 입 베어 물면 상큼 달콤한 과즙이 입안에 퍼지며 더위의 모든 괴로움이 가신다. 그 한 입에 나도, 아이들도 발을 동동거리며 웃는다.
사실 어릴 땐 물복을 좋아했는데 어느 날 엄마가 “넌 할머니들처럼 물복을 좋아하더라~”라는 농담 한마디에 딱복파가 되었다. 어린 나도 늙기가 싫었던 건지, 늙어 보이는 게 싫었던 건지 딱복파가 되기로 결심했던 그날이 아직도 기억에 남는다.
지금의 내 삶도 계절로 보면 '한여름'이 아닐까. 마흔을 바라보는 지금, 파릇한 봄은 지난 것 같고 수확하는 가을이라고 하기엔 수확할 것도 없으며 아직 젊다. 무언가를 열심히 일궈가는 여름이라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녹음이 푸르르고 뜨거운 태양 아래 과실이 맺히듯, 뜨거운 햇빛을 받으며 나의 과실인 아이들이 자란다. 활발하면서도 해가 길어 느긋하기도 한 이 여름처럼 일과 노동으로 활발히 뭔가를 일구어가지만 20대보다는 여유와 느긋함이 생겼다. 나는 지금 인생의 여름을 지나는 중이다.
비록 네 번째로 사랑하는 여름이지만 인생의 여름만큼은 뜨겁게 사랑해야겠다. 이 여름을 사랑해야 수확하는 가을과 따뜻한 겨울을 누릴 수 있을 테니.
사랑과 전쟁이 공존하는 이 계절, 달콤함에 취하기도 괴로움을 흘려보내기도 하며 이 여름을 버텨본다. 내 인생의 여름도 무탈하게 잘나기를 바란다.
여름아, 부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