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셔츠
짧은 머리칼이 적당히 젖었다.
아마도 깊은 고민에
밤새 술을 마신 듯 보인다.
방금 펴서 쓰기 시작한 비닐우산이
이미 젖은 머리칼보다 뽀송뽀송하다.
정류장을 벗어나 천천히 걸어간다.
마을버스가 오고 두정거장 뒤 내 옆에
그 청년이 섰다.
술냄새가 숨소리에 묻어있다.
어린 청년에게서
아들의 모습을 봤다.
등에 힘겨움이 가득한...
세상 속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마을버스에 아들의 뒷모습을 두고...
비가 잦은 계절이다.
비 냄새가 좋아 비를 좋아하지만 문득 생각나는 피붙이들이 아련하다.
감성을 자극하는 것들 중에 유난히 비가 그렇다.
비 오는 날 우유 배달할 때가 생각나고,
외갓집 처마 끝에서 양철 바케스로 떨어지던 빗소리가 생각나고,
학교에서 소나기가 퍼붓는 날 우산 없이 집으로 오던 날이 생각나고,
비 오는 날 라면 먹으며 펑펑 울던 때가 생각나서 비가 몹시 미워지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