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위 말하는 지잡대 출신이다. 더군다나 어문계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계 대기업 본사 정규직도 해보고, 연봉 1억짜리 오퍼도 받아봤고, 지금은 영국 및 유럽 지사 HR을 이끄는 HR 팀장이다.
가끔 스스로가 자랑스럽기도 하지만 나의 실제 실력보다 더 많은 것을 누리고 있다는 생각을 항상 해왔다. 어쩌다 보니 HR 일을 하고 있고 한 번도 Business&Management에 대해 배워보지 못했기에 더 높은 직책을 맡았을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지식과 실력이 들통날까 걱정이 되기도 했다. 그래서 이번 코로나 일이 터지고 회사 내에서 승진 제의를 받았을 때 거절을 했다. 나는 일명 "물 실력"을 가지고 있다.
계속 걱정만 하다가 좋은 기회 다 놓칠 수 없지 않은가? 코로나 때문에 재택근무를 하며 시간도 있겠다 이참에 무언가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어디에 홀렸는지 Business School 대학원에 한번 도전해볼까? 하며 지원서를 냈다. 예기 치도 않게 난 합격을 했고 나의 석사 공부는 현재 진행 중이다. 직장인이라 Full-time은 엄두도 못 내니 Part-time으로 2년 동안 공부하는 과정을 듣고 있다. Part-time이라 쉬울 줄 알았는데 첫 번째 모듈 과제를 보고 포기해야 하는 거 아닌가 고민을 100번도 넘게 했다. 한 번도 English speaking 국가에서 공부를 해 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에세이를 쓰고 과제를 해결해 나가야 할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그래도 비싼 돈 주고 학비를 냈으니 일단 제출해보기라도 하자는 마음으로 꾸역꾸역 써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난 당연히 Fail 할 줄 알았는데 의외로 Merit를 받았다. 혹시 잘 못 채점했나 싶어 다시 확인해봐도 Merit 다. 그것도 안타깝게 Distiction보다 적은 차이로 받은 Merit!
내가 나 자신을 너무 과소평가한 건가? 알고 보면 나는 많은 잠재력을 가지고 있고 실력이 있기에 거기에 응당한 오퍼들을 받은 게 아닌가? 우리 남편은 내 옆에서 "거 봐! 넌 항상 너 자신에게 너무 혹독해! 내가 말했잖아. 아무 문제없을 거라고!"라고 계속 잔소리한다...
*내가 다니는 대학원의 점수는 Distiction Outstading-Distiction Excellent-Merit Very Good-Pass Good-Pass Satisfactory-Fail Marginal-Fail Clear 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