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치즈케이크 Dec 02. 2020

내 남편은 부처님

파란 눈의 부처님

나는 비혼 주의자였다. 솔직히 꿀릴 게 없었다. 어린 나이에 해외 여기저기 출장 다니며 작지만 한 팀을 리드하고 있었다. 손만 뻗으면 강남 병원 건물주 아들, 억대 연봉 세일즈맨, 어디 땅부자, 회사 대표 등 만나자고 하는 남자들이 있었다. 그때 나는 나 자신을 너무 사랑했고 그 누구도 곁에 필요하지 않았다. 열심히 일하는 모습, 여기저기서 인정받는 나에게 만족했다. 그랬기에 굳이 결혼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고 평생 나를 가꾸고 발전시키는데 시간을 할애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다 갑자기 이 파란 눈의 남자가 내 인생에 나타났다. (본인은 아니라고 우기지만) 남편의 구애 끝에 연애를 시작했다. 남편과 연애를 시작할 때 비혼 주의에 대해 확실히 말했다. 남편도 동의했고 본인도 딱히 결혼할 마음이 없다고 했다. 그래 놓고 어느 날 갑자기 프러포즈를 했다... 얼떨결에 프러포즈를 승낙했고 지금은 결혼 2년 차다. 


만약 옛날로 돌아간다면 나는 비혼 주의를 끝까지 지킬 것이다. 하지만 결혼을 다시 하게 된다면 그때도 이 남자일 것이다.


남편은 부처님이다. 난 매일 남편에게 잔소리를 한다. 초콜릿 좀 그만 먹어라. 운동해라. 배 좀 봐라. 손이 왜 이렇게 못 생겼냐. 이것 좀 해줘. 저것 좀 해줘. 그런데 우리 남편은 한 번도 짜증 낸 적이 없다. 심지어 주말에는 나를 위해 삼시 세끼 즐겁게 식사 준비를 한다.


하루는 너무 신기해서 물어봤다. "내가 잔소리하는데 왜 짜증 안 내?" 그러자 남편이 미소를 띠며 말한다. "잔소리였어? 난 그냥 귀엽던데. 초등학생이 좋아하는 남자한테 일부러 못되게 하는 것처럼"


부처님인 게 분명하다. 영국 부처님이다.



작가의 이전글 지잡대 출신이 영국에서 일하며 석사 공부하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