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당신은 무엇을 이루었나요?
코로나 때문에, 코로나 덕분에
결론부터 말하자면 계획한 대다수를 이루지 못했다.
2019년 하반기에 영국에 입국해 정착하느라, 새 직장에 적응하느라 제대로 된 유럽 여행을 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번 연도 초에 남편과 함께 희망차고 다이내믹한 2020년 Bucket list를 만들었다.
한국 다녀오기. 한국 있을 때 말레이시아에 며칠 여행 갔다 오기. 겨울에는 추울 거니까 따뜻한 모로코에서 크리스마스 보내기. 중간중간에 가까운 유럽 여행하기. 집 사기. 고양이 입양하기.
코로나 때문에,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모든 여행 계획은 무산되고 그나마 이 중 내가 이룬 건 집 사기와 고양이 입양하기이다. 여행은 다음에 가도 되지만 집은 산 뒤 이미 집값이 올랐으니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이뤘다고 해야 할까? 그리고 우리가 집을 산 바로 며칠 뒤 코로나 때문에 집 대출이 안 나와 집 사기가 어렵다고 하니 어찌 보면 가장 가치 있는 한 가지를 이룬 것 같기도 하다.
코로나 덕분에,
예기치 못한 다른 것들을 이루게 되었다.
항상 생각만 하던 석사 공부를 시작했다. 사실 본과 끝나고 공부에 뜻이 더 있었는데 당시 상황상 어려워 미루고 미루었다. 그러다 재택근무 중 갑자기 어디에 홀렸는지 파트타임으로 공부하는 석사과정에 덜컥 등록을 해버렸다. 시작이 반이라고 등록금 입금하고 나니 그동안 '내가 할 수 있을까?'라고 걱정하던 게 싹 사라지고 우등생이 되어야겠단 의욕이 불끈불끈 생긴다.
코로나 전에는 출퇴근 시간에 3-4시간씩 할애하다 보니 영국에서 취미생활을 찾아볼 체력도 시간도 없었다. 재택근무가 서서히 몸에 익고 일도 적응되니 남는 시간이 많았는데 시간이 날 때마다 조금씩 했던 뜨개질이 어느새 내 몸에 딱 맞는 카디건이 되어 있었다. 이 이후로 나는 뜨개질에 재미를 들여 다른 뜨개질 프로젝트(?)들을 시작했다. 밤이 긴 영국에서 시간 때우기 딱이고 완성하고 나면 은근히 성취감도 든다.
코로나 때문에 2020년 다 낭비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코로나 덕분에 이뤄낸 것도 분명 있을 것이다.
2020년이 가기 전에 한 해를 돌아보며 스스로 정리해보자. 난 무엇을 이루었는가? 그리고 혹시 내가 코로나 핑계를 대고 있진 않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