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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mz Aug 17. 2018

나는 오늘 음악이 듣기 싫어졌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놓는다는 것



2018.6.9



가장 좋아하는 일?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은 단연 음악을 듣는 것이다. 사실 좋아하는 일이라면 정말 많지만, 음악을 듣는 것은 가장 소중하기에 아끼고 싶을 정도이다. 음악도 다른 일을 하면서 듣기보다는 음악을 듣는 일 자체에 집중하는 편이다. 그래서 멀티태스킹이 잘 안된다. 가사가 있는 곡이라면 가사도 찬찬히 읽어가며 음미해야 하고, 선율과 박자를 따라가다 보면 다른 일을 할 수가 없다. 물론 학창 시절, 자습시간 몰래 노래를 들으며 공부 하긴 했지만, 나름의 유일한 힐링이었다. 그렇게 나름의 유일한 힐링을 즐기다 맞기도 했다.


 '음악을 듣는 일이야 누구나 하는 거 아닌가?' 그렇긴 하지만, 나에게 음악을 듣는 행위는 꽤 무게감 있는 일이니 말이다. 음악을 듣기 전, 가장 먼저 음미할 것은 곡의 제목. 비록 그 한 줄, 한 단어일지라도 보고 있자면 마치 작은 시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든다. 간혹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지었어요.' 하는 제목도 있다만, 그런 아무 이유 없는 제목 또한 나에겐 꽤 기막힌 자극을 주는 것이다. '아니, 이런 곡에 아무 이유 없는 제목이라니?!'


 음악을 재생시켜 본격적으로 듣기 시작하면, 나는 러닝타임의 숲 속을 거닌다. 음악이 말하는 세계 안에 완전히 갇히는 것이다. 개인적인 견해로는, 다른 예술 작품에 비해서 더 직접적으로 주인공이 되는 경험을 주는 듯하다. 등장인물이 '고정된 인물'로 특정되는 경우가 보다 적기 때문일 수도 있겠다. 경우에 따라서 다르겠지만, '어떤 이름을 가진 다른 인격체'가 등장한다는 느낌은 확실히 덜 하다. 또한 가사 자체가 이미 문학 작품이기에 가사만으로도 내 심장을 일렁이게 만든다. 누구보다 나의 감정을 바르게 공감해주고, 누구보다 빨리 위로해준다.


 더 즐거운 부분은 부르는 이의 목소리가 주는 힘이랄까. 시를 직접 읽어갈 때보다 노래를 들을 땐 목소리의 이미지가 정서에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들의 호흡이나 음색, 떨림, 성량을 따라가는 재미가 있다. 그런 미묘한 차이에 따라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의 강도가 달라질 수 있는 것이다. 한 가수의 목소리에 빠지면 그 매력을 다 헤아릴 때까지 그의 노래만 듣기도 한다. 다른 곡에서는 어떻게 그 매력이 보일까 하는 호기심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실 그 매력적인 목소리를 듣는 것 자체로도 기분이 좋다.


 가사가 없는 음악에도 분명히 주는 메시지가 있다. 이 경우는 가사가 있는 노래보다 감정을 느끼기에 훨씬 더 자극적이다. 가사가 있는 노래는 아티스트가 마련한 내용을 재해석하거나 받아들이지만, 가사가 없다면 내가 알아서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스스로 한 폭의 그림을 머릿속에 새기며, 그 장면에 의미를 부여한다. 멋대로 하나의 영화가 탄생하는 짜릿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음악이 만드는 일상은 이렇게나 다양하고 거대하다.


 좌우간, 음악을 듣는 일이 나에겐 제일 행복한 시간이며, 하루의 가장 많은 시간을 차지한다. 그렇기에 역으로 말하면, 작업을 하거나 밖에 다른 일을 보러 나가는 시간 외엔 음악을 듣는 것뿐이다. 영화를 보거나 글을 읽기도 하지만 그 할당량은 전체적으로 보면 얼마 되지 않는 편. 다른 일을 하기까지는 엄청난 심호흡과 함께, 긴장을 풀고 만반의 준비상태를 거쳐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엄청난 의지로 일구어 낸 자부심 있는 시간이다.



 그런데 오늘은 음악을 듣고 싶지 않아졌다. 




가장 좋아하는 일을 놓고서,


 


 생각할 것들도 너무 많았고, 내리꽂는 자극들에 지쳐있는 상태였다. 음악을 듣고 감정을 끌어올리는 데에 한계가 있을 것 같았다. 거기다가 이런 기분으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애꿎은 음악에 혹여나 부정적인 감정을 담아버릴까 겁이 났다. 그래서 한 두 곡 정도를 듣다가 과감히 꺼버렸다. 그리고 음악을 듣지 않을 때 하고 싶던 것을 생각했다. 나의 글을 충분히 썼다. 음악과 글을 번갈아가며 취하지 않으니 글이 술술 써졌다. 그리고 다른 글도 읽고 싶어 졌다.


 평소에 사놓고 읽지 못했던 책들을 집어 들고 닥치는 대로 다 읽어대기 시작했다. 정말 온전히 글에만 집중하니 주변이 멈춘 듯 단어들 속에서 헤엄치는 기분이었다. 음악을 끄지 않았다면 들지 않았을 책들이었다. 내친김에 외국어 원서의 책도 읽어갔다. 새롭게 알게 된 단어도 기록했다. 다른 작업도 했다. 감정을 담은 일러스트도 새로 그리고, 느꼈던 것들을 다이어리에 써 내려가며 펑펑 울기도 했다. 오랜만에 내 감정에 충실한 알찬 시간을 보낸 것 같았다. 단지 하나만 하지 않았던 것이다.


 늘 안정된 감정을 전해주는, 변함없는 친구라고 할 수 있을까. 좋아하는 일은 그렇게 편안하게 만들어 준다. 그래서 언제나 좋아하는 일을 하길 바라고, 그렇게 하길 권하고, 그에 집중하기를 노력하는 것 아니겠나. 이렇게 하는 것이 가장 행복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가끔은 좋아하는 일을 놓을 줄도 알아야겠더라.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것은 좋지만, 그것'만' 하는 것은 결국 나에게 안정된 행복만 줄 뿐이다.


 안정된 직업을 선호하는 이들이 있듯, 행복에도 안정을 원하는 이들이 분명 있을 것이다. 새로운 행복을 찾기 위한 과정은 사실 생각보다도 훨씬 더 '도전'이기 때문이다. 귀찮아서든, '굳이'라는 생각에서든, 엄두를 내지 못했던 행위를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 일이 단지 취미로 남을 일이더라도, 본인에게 더 가치 있는 취미가 되기 위해선 그렇다.


 더 다양한 행복을 찾기 위한 과정은 결국 '경험'이다.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얻을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우리는 꼭 경험이라 하면 거창한 행동들을 떠올리지만 딱히 그렇지도 않다. 책을 읽고, 취향이 아닌 다른 음악을 들어보고, 다른 생각을 해보는 것마저 경험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경험은 나의 다른 부분나와 다른 부분을 이해하는, 폭넓은 사람으로 만들어 주는 기회이다. 끝에 가서 맞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되더라도, 이 또한 언젠가 끝에 가봐야 알 수 있는 것이다. 좋아하는 일을 충분히 즐기되, 그것에 너무 몰두해서는 다른 것들을 경험할 수 없어진다. 물론 꼭 경험할 필요는 없지만, 경험하지 못하면 다른 좋아하는 것들 역시 찾을 수 없다.


 좋아하는 일이 많아진다면 결국 더욱 풍부한 인생이 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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