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펙트 데이즈> 지금을 믿기
영화 <퍼펙트 데이즈> - 빔 벤더스 - 2024
히라야마의 삶은 상당히 '힙'하다. 그는 일찍 일어나고(미라클 모닝), 취향이 듬뿍 담긴 카세트 테이프를 듣고, 단골 주점과 책방이 있으며, 식물을 기르고, 필름 카메라를 사용한다. 무엇보다 자신의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최선을 다한다. 아야나 니코가 등장하기 전까지 히라야마의 삶은 온전하고 안정돼 보인다. 그는 혼자만의 삶을 충실하게 꾸리고 있으며 충분히 1인분을 하는 사람이다. <퍼펙트 데이즈>는 사실 이상적인 비혼의 삶을 그린다. 히라야마는 안전하고 독립적이다. 그가 공격 당하는 순간은 다른 사람이 그 세상을 침범했을 때 뿐이다. 히라야마의 삶이 유독 고립돼 있긴 하나, 그는 충분히 잘 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게 계속될 수는 없기에', 그의 인생에도 파도가 찾아온다.
돈이 없으면 사랑도 할 수 없는 거냐며 울부짖던 다카시는 돌연 일을 그만둔다. 오랫동안 보지 않은 조카는 가출을 하고는 갑자기 찾아온다. 단골 주점의 사장님이 전남편과 재회를 하는 순간을 엿보고, 그 전남편이 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는다. 히라야마의 삶은 끊임없이 침범 당한다. 그의 세계는 견고하고 아름다워 보인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침범 당할 때마다 얼마나 작고 보잘 것 없는 삶인지가 실감나고야 만다. 그건 히라야마가 화장실 청소부이기 때문이 아니다. 히라야마는 우리 모두가 그렇듯 자신만의 세상에서 살고 있고, 그의 세상은 유독 단절되어 있다. 그래서 히라야마는 다른 사람의 세상을 엿볼 때마다, 혹은 다른 사람에게 침범 당할 때마다 자신의 세상이 아주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불안을 느낀다.
엔딩 장면에서 히라야마의 복잡한 표정의 의미는 무엇이었을까. <퍼펙트 데이즈>를 순간의 아름다움을 포착하여 인생의 소중함을 고찰하는 영화라고들 하지만, 나에게는 동시에 순간의 덧없음을 아주 잘 보여주는 영화라고 느껴졌다. 매 순간이 아름다운 것은 어떤 것도 영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코모레비의 아름다움을 잘 아는 사람은 그것이 아주 쉽게 사라져버린다는 것도 잘 알기 마련이다. 아주 잘 살고 있다고, 이대로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도 모든 것이 얄팍하기 짝이 없는 거짓말임을 알게 된다. 내 삶을 잘 지탱하고 있다고 믿었는데, 내 삶을 지탱하는 것은 오직 나 밖에 없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런 불안 속에서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다음은 다음이고, 지금은 지금이라고 되뇌이며 순간에 충실하려고 노력할 뿐. 흔들리는 코모레비를 보며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뿐이다. 인생이란 원래 좋거나 나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아름답고도 금세 사라져버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히라야마의 삶은 규칙적이고 균일해보이지만 영화 내내 그의 삶은 요동친다.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 어느 것도 예전과 같지 않다. 그게 살아간다는 것이고, 그런 날들이 완벽한 날들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