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로 들어온 첫날(2016년 1월 9일), 우리는 꽤 많은 거리를 이동했다. 샤프하우젠에서 우연히 만난 소중한 인연과 함께 조용한 중세도시 샤프하우젠을 뒤로하고 스위스의 최대 도시인 취리히로 향했다. 솔직히, 여행을 하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취리히가 어떤 도시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는지를 전혀 몰랐다. (지금도 잘 모르는 것은 여전하다.) 취리히뿐만 아니라 스위스 대부분의 도시들에 대해 크게 알고 있는 바도 없었고, 알려고 하지도 않았다. 스위스 여행을 떠올렸을 때부터 이 나라의 도시가 아니라 알프스, 호수, 맑은 구름과 같은 자연에 집중했기 때문에 도시에 대해서 알아볼 생각을 전혀 하지 않았다. 여담이지만, 축구를 사랑하는 나로서 취리히에 FIFA 본부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는 게 꽤 한이 된다.
그렇기 때문에 취리히에서의 시간을 미적지근하게 보낼 뻔도 했지만, 다행히 동행한 친구 중 한 명이 디자인 제품에 관심이 있어 '프라이탁'의 플래그쉽 스토어에 들리게 되었다. (나는 '프라이탁'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프라이탁'이 시작된 곳이 바로 이 곳 취리히였고, 본사 건물도 이 도시에 있지만 본사보다는 다양한 제품을 가지고 있고 그 왜관 또한 독특한 플래그쉽 스토어를 방문하기로 결정했다. 취리히까지 태워주기로 한 우리 아이들의 미래인 착한 선생님을 내려드리고, 우리는 '프라이탁' 플래그쉽 스토어로 향했다.
'프라이탁'은 업싸이클링 제품으로 유명한 브랜드이다. 업싸이클링이란 '업그레이드'와 '리싸이클링'의 합성어로 본래의 용도로 사용하지 못하는 폐제품을 활용하여 새로운 용도의 더 가치 있는 제품을 만드는 것을 나타내는 신조어이다. '프라이탁'은 트럭에서 사용하는 '방수천'이나 폐자동차의 안전벨트 등을 활용하여 메신저백과 같은 가방이나 지갑 등 다양한 수납용품을 제작하는 브랜드이다. 실제로 매장에는 시골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농산물을 담는 각양각색의 포대(?) 디자인의 제품들이 여기저기 전시되어 있었다. 나는 이 브랜드에 대해 아는 바가 전혀 없었지만 알고 보니 패션에 선구안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꽤나 인지도가 있는 브랜드였다. (2016년도와 비교해보았을 때 요즘은 길거리에서도 종종 '프라이탁'의 제품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내가 패션에 뒤떨어지는 것일 수도 있지만, 디자인적으로만 보았을 때는 왜 이 제품에 열광하는지는 전혀 공감이 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브랜드가 전하고자 하는 가치는 분명히 느껴졌다. 다른 이에게는 더 이상 쓸모가 없는 폐제품을 활용하여 새로운 경제적 가치를 만들어냄과 동시에 폐품 처리에 발생하는 경제적, 환경적 비용을 줄이는 것이 이 제품의 독특한 디자인 너머에 담겨있는 또 다른 의미였다. 플래그쉽 스토어의 모습도 '프라이탁'의 이러한 가치를 잘 보여주었다. 컨테이너를 쌓아 올린 건물의 모습은 화려한 외관이 아니라 필요한 것을 적절히 쓸모 있는 재료로 효율적으로 만든 듯한 느낌을 주었다. 또한, 이러한 건물의 형태가 흔치 않았기 때문에 진귀환 멋이 자연스럽게 더해졌다. (다행히도 건대 쪽에 위치한 '커먼그라운드'를 보기 전이었기 때문에 그 느낌이 더 크게 다가왔다.)
물론 제품의 가격이 내가 생각한 것보다는 많이 비싸 차마 구매하지는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브랜드를 사랑하고 있었고, 사람들이 브랜드의 가치에 공감을 했든 하지 안 했든 간에 이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행보를 같이 한다는 점에서는 유의미하지 않나 싶다.
'프라이탁' 플래그쉽 스토어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특이한 쇼핑 거리가 있다. 육교 시장이라고도 불리는 이 곳은 도시의 장벽처럼 이루어진 고 기차선로를 활용하여 경제적 거점을 만든 독특한 장소이다. 2차 산업혁명 시대 경제 발전의 중추적인 역할을 한 기차는 시대가 발전해나감과 함께 주연에서 조연으로 역할이 바뀌게 되었다. 한 때는 핵심적인 운송수단을 담당했지만 이제는 그 역할을 항공이나 해운에 넘겨주고 중년으로 접어들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기차선로들이 대부분 시골지역이나 지하로 이동하게 되었고, 도시개발에 방해가 되는 도심 속 철로들은 처리하기가 쉽지 않은 애물단지로 남게 되었다.
비아둑트는 바로 그런 고 기차선로를 새롭게 해석하여 경제적 활동의 거점으로 재탄생시킨 공간이다. 처음 이 쇼핑 거리에 들어섰을 때는 척박하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다. 기차선로가 이룬 작은 아치형 터널에 자리 잡은 수많은 가게들이 서로의 존재감을 내뿜으며 다양한 제품과 가치를 전달하고 있었다. 이 때문인지 마치 이 선로 건축물이 기차의 운행이 아니라 이러한 가게들을 위해서 만들어진 양 본래의 모습이 전혀 눈에 띄지 않았다. 호기심이 생겨 이 지역의 과거 모습을 보니 지금과는 달리 굉장히 황폐한 모습이었다.
시대가 바뀌어가면서 점점 오래된 것들에 대한 사회적 대우가 초라해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있다. 그것이 물건이든 시스템이든 서비스이든 혹은 사람이든 오래된 것도 그 나름의 가치를 가지고 있지만, 그러한 가치를 매몰시키고 단지 오래되었다는 이유만으로 배척하는 사회적인 행태가 과연 바람직한지는 의문이 든다. 비아둑트의 사례가 보여주듯이 오래된 것의 가치를 살리고 거기에 새로운 시대의 가치를 더하면 또 다른 제3의 가치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인지하고 힘썼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밤이었다.
취리히에서는 환경보호와 도시개발에 대한 재해석을 엿볼 수 있었다. 뿐만 아니라, 물로 가득한 이곳의 풍경과 친절한 사람들에게도 따뜻한 느낌을 많이 받았다. 어느 가게를 가도 친절하게 맞이해주는 직원들과 낯선이 들에 게 가벼운 미소로 인사해주는 취리히의 시민들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이외에도 강가에 갔을 때 나의 손인사에 반갑게 응해준 백조(?)도 기억에 남는다. 아쉽게도 취리히에서의 일정은 하룻밤으로 마무리하고 우리는 루체른으로 이동해야 했다. 언젠가 취리히로 다시 가게 된다면 이러한 아쉬움을 채울 수 있게 이 도시에 대해 더욱더 탐구해보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