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맑은 하늘에 날벼락, 베른

by 김산결

푸른 하늘의 베른


루체른에서의 끔찍한 기억을 잠시 넣어두고 다음 날 우리는 스위스의 수도인 베른으로 이동했다. 앞선 글들에서 언급했던 것처럼 우리가 스위스에 머무는 동안 날씨는 거의 항상 좋지 않았다. 항상 구름으로 가득했고, 그 때문에 알프스의 청량한 풍경을 본 기억은 거의 없다. 그렇기 때문에 파란 하늘에 구름이 몽실몽실한 그 순간을 더더욱 잊지 못한다. 베른에서의 기억이 그러하다. 베른으로 가는 길도 날씨가 그다지 좋지는 않았지만, 베른에 도착한 우리를 환영하듯 베른의 하늘은 지긋지긋한 회색이 아닌 파란색과 흰색의 물감으로 칠해져 있었다. 베른 시가지 인근 언덕에 주차하고 바로 내려가려 했으나, 언덕에서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베른의 구시가지와 하늘에 시선을 뺏길 수밖에 없었다. 그다지 높지도 그렇다고 낮지도 않은 어쩌면 개성이 없어 보일 수도 있지만 함께 모여있으니 그 자체가 멋진 광경을 이루는 황토색 지붕의 건물들과 그 사이사이로 고개를 뻗고 있는 첨탑의 조화로운 모습을 가진 시간이 멈춘 듯한 풍경이었다. 시간의 흐름을 느낄 수 있는 건 도시 주변으로 흐르는 강물뿐이었으며, 도시에 남은 것은 시간의 흔적뿐 흘러감은 강의 몫인 듯했다.


파란색으로 물들어가는 베른(Bern)의 하늘


인터넷에 베른을 검색하면 '곰의 도시'라는 키워드를 쉽게 접할 수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도시 입구에 떡하니 곰 공원이 있었다. 공원을 잠시 들렀지만 아쉽게도 추운 겨울 날씨 탓인지 곰을 보지는 못했다. 아마 잠을 자고 있거나 추운 날씨를 피해 어딘가에 숨어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필 이곳에 왜 곰 공원이 있는 것일까. 잠시 찾아보니 베른(Bern)이 독일어로 '곰'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12세기 말 체링겐가의 베르쉬톨트 5세가 이 지역에서 처음 만나는 동물의 이름을 지명으로 쓰겠다 했으며, 그 동물이 바로 곰인 것이다. 이러한 지명의 유래를 생각하면 실제로 이 지역에서는 곰이 살았던 모양이다. 물론 진짜 곰을 보지는 못했지만 에버랜드에서도 볼 수 없는 전선에서 줄타기를 하는 곰을 보았기 때문에 아쉬움을 뒤로하고 본격적으로 시가지로 들어섰다.


곰 공원과 줄타기하는 곰


베른의 거리는 조용하고 단아했다. 사각 돌로 이루어진 큰길 주변으로 건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다. 그리고 길 중간중간에는 독특한 장식의 작은 탑과 분수가 있었다. 한 가지 독특한 풍경으로 거의 모든 건물 앞에 정체모를 지하로 향하는 문들이 있었다. 문 위로 조그마하게 적힌 간판을 보니 상점이나 음식점 등이 아래에 있는 것으로 추측은 되나, 이른 시간이어서 그런지 문이 열린 곳은 많지 않았다. 운이 좋게도 조금 걸어가다 보니 문이 활짝 열린 가게가 하나 있었고 간판을 보니 사탕 가게였다. 동심을 파는 사탕 가게답게 지하로 내려가는 길도 평범하진 않았다. 내려가는 계단 옆으로 미끄럼틀이 놓여 있었고 한 번의 미끄럼이면 굳이 여러 층계를 내려갈 필요 없이 바로 가게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앞에 서있으니 마치 우리의 동심이 여전히 존재하는지 묻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우리는 영원히 철들지 않는 청춘이기에 주저 없이 미끄럼틀을 택했다. 물론, 동심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엉덩이가 화끈해졌지만 그래도 즐거웠다.


베른 거리와 지하 사탕 가게


시가지에 들어서서 길을 따라 쭉 걷다 보면 베른의 랜드마크인 치트글로게(Zytglogge) 시계탑을 만날 수 있다. 13세기에 지어진 이 탑은 베른의 서쪽 요새 역할을 했으며, 이후 15세기 초에 시계가 더해지면서 독일어로 '시계탑'을 의미하는 지금의 이름을 얻게 되었다. 시계탑은 매 정시 4분 전에 작동하여 정시가 되면 상층부의 인형이 종을 두드려 정시를 알린다. 베른을 들리게 되면 한 번쯤은 치트글로게의 종소리를 들어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시계로 유명한 장소인 만큼 주변에는 가정용 종 시계를 판매하는 가게들도 드문드문 있었다.


베른 구시가지를 거닐며 구경하다 보니 첨탑 뒤로 예쁜 하늘이 걸려있었다. 유럽 여행 당시 푹 빠져있었던 별 모양의 단체사진을 찍자며 친구들에게 얘기했고, 친구들은 나를 위해 마지못해 손가락을 뻗어주었다. 덩치 큰 사내 4명이 손가락으로 별을 만드는 모습이 남들이 봤을 땐 어땠을까. 아마 꽤나 재밌는 광경이지 않을까 싶다. 이런 우리의 모습이 귀여웠는지 또는 사진을 찍어주는 사람이 없어 용을 쓰고 있는 모습으로 보였는지 마침 지나가는 스위스 아주머니 한 분이 먼저 사진을 찍어주겠다며 다가왔다. 이방인을 친절히 맞이해주는 아주머니의 마음에 감사함을 느끼며 첨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남겼다. (이 첨탑이 어떤 건물이었는지는 아쉽게도 기억이 나질 않는다.)


첨탑과 별


짧은 베른 구경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중에 내 인생의 새로운 첫 번째 경험을 만들었다. 베른 시가지를 벗어나는 다리 앞까지 간 순간 우리의 구경이 끝나다는 것을 하늘이 요란하게 확인시켜주었다. 파란 하늘이 순식간에 먹구름으로 뒤덮였고 이번에는 비가 아니라 우박이 내렸다. 우박이라는 자연현상에 대해서는 물론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 이것을 목격하고 또한 얼음덩이에 맞아보기는 처음이었다. 차를 꽤나 멀리 주차했기 때문에 우리는 떨어지는 우박 사이로 부리나케 달려갔다. 짜증 나는 상황일 수도 있겠지만 우박도 처음 맞아보는지라 기분이 나쁘지 않았고, 집에 가려는 찰나에 그랬기 때문에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싶었다. 소나기와 같은 우박이었는지 차를 타고 루체른으로 다시 돌아가는 길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하늘이 맑아지고 저 먼 땅끝부터 무지개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우리가 달리는 도로의 끝에는 알프스가 있었다. 하늘이 게으름을 피워도 이 곳 스위스에는 자연의 아름다움이 곳곳에 있었다.


무지개와 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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