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른에서의 짧지만 의미 깊었던 반나절을 보내고 숙소가 있는 루체른으로 다시 돌아왔다. 루체른으로 돌아와 가장 먼저 들른 곳은 지난밤의 경찰서였다. 혹시라도 분실물이 접수된 것은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하지만 만약 지갑을 잃어버렸다면 작은 희망이라도 있었겠지만 지폐가 들어있는 흰 봉투만 덜렁 잃어버린 것이기에 되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것은 분명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때는 실낱같은 희망을 버리지 못했다. 아마 루체른의 친절한 경찰관들도 찾을 가능성이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싶다. 나와 친구들 그리고 경찰관 등 나를 도와주는 사람들이 모두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다고 느껴졌지만 내색하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나를 도와주는 모습에 크게 감동받았다. 3년 이상이 지난 지금, 그때 돈을 잃어버린 아쉬움은 전혀 없고 오히려 그보다 값진 깊은 감사함만이 마음에 남아있다. 이 여행기간 동안 마주한 수많은 아름다움 풍경과 사람들, 깊은 역사를 자랑하는 유물들과 함께 나에게는 또 하나의 인상 깊은 여행의 순간이 되었다.
마음을 편안해지니 지난밤 돈을 찾느라 보이지 않았던 루체른의 풍경이 그제야 보였다. 물의 도시 루체른을 관통하는 엄청난 양의 물, 그리고 단절된 두 공간을 이어주는 카펠교의 풍경은 아름다웠다. 강 위로 유유자적한 시간을 보내는 백조들과 갈매기들도 그 풍경을 즐기는 듯 보였다. 해가 지고 빈사의 사자상도 들렸다. 스위스 근위병들을 기리는 슬프지만 웅장한 이 조각 아래에도 작지 않은 연못이 함께 있었다. 돌이켜보니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여행지들은 모두 바다 또는 강과 같이 물을 끼고 있는 도시들이었다. 제각각의 삶을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물이 있는 장소에 끌리지만 결국 이곳에서 얻고자 하는 곳은 여유로움이 아닌가 싶다. 자신의 반려견과 숨이 가쁘지 않을 정도로 산책을 하거나 낚시를 하거나 가족들과 공놀이를 하거나 또는 가만히 앉아서 이 곳의 풍경을 지켜볼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이 전부이다. 이곳에서는 무언가를 격렬하게 할 필요가 없으며 생각해보면 그럴 거리도 없다. 숨 가쁘게 돌아다니는 이방인의 눈에 이 도시 주민들의 여유로움이 느껴지면서 함께 동화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져본다. 그렇다면 물의 도시 루체른은 여유로움의 도시라고도 할 수 있겠다. 내 기억 속의 루체른은 그러하다.
루체른 시내 구경을 마치고 숙소로 다시 돌아왔다.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여행의 묘미는 바로 계획하지 않은 돌발적이지만 즐거운 시간이 아닌가 싶다. 다들 피곤한 탓인지 그날 밤 우리에겐 특별한 계획이 없었다. 다음 날 인터라켄으로 이동해야 되기 때문에 자연스레 일찍 쉬자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러한 우리에게도 뜻밖의 상황이 발생했다. 친구들을 먼저 방으로 보내고 뒤늦게 올라가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우연히 한국분을 마주쳤다. 더군다나 우리와 또래처럼 보였다. 해외에서 한국인을 마주치는 것이 이제는 특별한 일이 아니기에 가벼운 눈인사만 하고 방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하지만 웬걸,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그분께서 먼저 우리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물어봤다. 어떤 곳을 다녀왔으며 루체른은 어땠는지. 그분께서는 부모님을 모시고 여행을 하는 중이고 루체른에 오늘 도착해서 어딜 가야 할지 고민이라고 했다. 부모님과 함께 유럽 이곳저곳을 여행한다는 얘기를 들으니 멋있단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분 역시도 부모님과 좋은 장소들을 함께 들리고 좋은 것들을 볼 수 있어 뜻깊은 시간이라고 했다. 하지만, 자신만의 시간을 가지기가 어려워 그 부분은 살짝 아쉽다고 했다. 이런저런 서로의 묵혀두었던 안부를 묻고 앞으로도 좋은 여행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을 전하고 각자의 공간으로 헤어졌다.
방으로 돌아오니 그 아쉬움이 가득한 말투에 귀에 맴돌았다. 어차피 특별히 할 일도 없었던 밤이기에 친구들에게 근처에 괜찮은 곳이 있다면 야경을 보러 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물론 그분도 함께였다. 그분에게 함께 나갈 생각이 있는지 먼저 연락하고 주변에 지대가 높은 곳이 있는지 찾아보았다. 다행히 루체른에는 무제크 성벽이라는 곳이 있었다. 마치 낙산공원이 떠오르는 장소였다. 도시 인근 고지대에 위치한 오래된 성벽. 그분에게 긍정적인 대답을 받고 우리는 바로 숙소를 나섰다. 그렇게 멀지 않은 곳에 있었기에 금방 도착할 수 있었고, 루체른에서 가장 오래된 시계가 있는 시계탑을 지나 루체른의 구도심이 내려다보이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나에게는 다사다난한 곳이었던 루체른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내려다보는 루체른의 모습은 그간 있었던 일과는 달리 고요했고 아름다운 야경과 함께 아름다운 기억으로 이곳에서의 마지막 순간을 장식할 수 있었다. 베른에서 처음 만들었던 손가락 별은 원래 5명이 만들어야 하는 것이었고, 마침 한 명이 더 추가되고 또한 그 순간을 기록하기 위해 우리는 루체른의 밤하늘에 별을 달아보았다.
다음 날 우리는 융프라우요흐로 가기 위하여 인터라켄으로 향했다. 융프라우는 스위스 관광지 중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곳이 아닌가 싶다. 한 번쯤은 들어봤을 법한 이곳은 기차로 오를 수 있는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해발 3,454m)이며, 신라면을 가장 높은 곳에서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이러한 것을 잘 보여주듯 인터라켄에 도착하니 한국 사람들이 무척 많았다. 기차 시간을 기다리기 위하여 잠시 구경하는 와중에도 아름다운 한국어를 여기저기에서 들을 수 있었다. 사실 외국 관광지에서 한국 사람들을 많이 만나는 것을 그다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이국적인 정취를 기대하고 갔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득 찬 관광지를 보면 마음 한 켠이 허전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인터라켄에서부터 허전한 마음이 커져갔다. 또 한 가지 걱정된 점은 어제의 맑은 하늘은 온데간데없이 어김없이 회백색 구름이 하늘을 덮고 있었다. 융프라우요흐 아름다운 풍경을 위해서는 하늘이 일을 해줘야 되는데 그 날 하늘은 여전히 게을러 보였다.
우리는 인터라켄 동역에서 출발하여 그린델발트와 클라이네 샤이덱을 거쳐 융프라우요흐 역으로 향했다. 내 기억이 맞다면 2번이나 기차를 갈아탔다. 하지만 그 보다도 내 기억에 선명한 건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길 내내 기차 안에서 소란스러웠던 우리말이었다. 마치, 고향집으로 내려가는 무궁화호를 탄 기분이었다. 날씨는 좋지 않아 바깥 풍경은 전혀 보이지 않았고 내 귀에 울려 퍼지는 것은 무궁화 객석의 소리와 같으니 이 곳이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가는 길인지 집으로 가는 길인지 헷갈릴 정도였다. 도착지에 가까워질수록 기대감이 커져야 하지만 오히려 커진 것은 실망감뿐이었다.
아마 융프라우요흐 역으로 올라가는 기차 안이었을 것이다. 이 열차의 역사에 대해 간단하게 소개하는 것이 있었는데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는 더 오래전에 이곳이 건설되었고 거의 10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운영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일반인에게도 알프스의 아름다운 광경을 보여주기 위하여 엄청난 기술력과 자본 그리고 노동력이 투입되었음이 분명했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전 세계 각지의 수많은 사람들이 이 곳의 아름다운 광경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물론 그 날의 우리를 제외하고이다.
융프라우요흐 역에 도착하니 투명한 창 밖으로 보이는 것은 역시나 뿌연 구름과 차에 맺힌 얼음 조각들 뿐이었다. 아쉽지만 컵라면만 먹고 내려갈 수는 없으니 알파인 센세이션과 얼음궁전을 잠시 둘러보았다. 그리고 플라토 테라스로 향하는 출입구 근처에 다 달랐다. 물론 그 어떤 관광객들도 이 날씨에 나갈 생각은 없어 보였다. 하지만 우리는 달랐다. 여기까지 왔기에 그리고 언제 다시 돌아올지 모르기에 비록 나쁜 날씨일지라도 우리의 몸으로 직접 체험해보고 싶었다. 옷을 단단히 여미고 문을 여니 세차게 불어오는 바람이 우리를 맞이했다. 불과 약 5m 앞에 있는 것도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구름이 가득했고 거친 바람은 우리를 날려버릴 것 같았다. 그래도 이 곳의 스위스 국기는 확인해보고 싶었기에 에베레스트를 오르는 산악인들 마냥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이용하여 올라갔다. 왠지 즐거워진 마음에 친구들과 눈 밭을 뒹굴기도 하면서 올랐고 스위스 국기 깃발을 확인하고 다시 실내로 돌아왔다. 잠시 나가 있었을 뿐인데 우리의 눈썹, 속눈썹, 머리카락, 모자에는 얼음 알갱이가 하얗게 얼어있었다. 이제는 정말 라면을 맛있게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이 순간을 위해서 유럽에 도착한 후 한식을 전혀 먹지 않았고 우리의 객기 덕분에 요 근래 가장 맛있었던 라면을 먹을 수 있었다.
융프라우요흐 역에서 인터라켄 동역으로 다시 내려오는 길, 피곤했는지 우리는 계속 졸면서 내려왔지만 한 가지 기억에 남는 것은 스키 장비를 가지고 기차를 탄 10여 명의 군인들이었다. 학창 시절 우스갯소리로 자신이 월남전 스키 부대였다는 체육선생님의 썰렁한 농담을 들은 적이 있지만, 실제로 스키 부대가 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던 와중 기차에서 스키부대로 보이는 군인들을 만나니 새로웠고 그들의 늠름한 자태에 연신 멋있다는 말만 반복했다. 물론 정말로 스키부대인지는 모르겠지만 올라가는 기차와는 달리 내려가는 기차에서 이국적이고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싶었다. (필자가 확신을 가지지 못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는데 필자도 예전 친구들과 옛 군복을 입고 스키를 타러 간 적이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