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진수와 초콜릿 공장

by 김산결

테마 박물관


박물관은 일반적으로 고고학적 자료, 역사적 유물, 예술품, 그 밖의 학술적인 의미를 지닌 물건들을 보존하고 진열하여 일반인에게 전시하는 장소로 일컬어진다. 그중에서도 '테마' 박물관이라고 부르는 곳은 일반적인 박물관보다 더 구체적이고 특정한 주제들에 대한 전시물들을 모아놓은 곳이다. (사실 대부분의 박물관이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테마 박물관이라고 굳이 구분할 필요가 있는지는 의문이다.) '특정'한 주제를 다룬다고 해서 '특정' 지역에만 있을 필요는 없지만 우리나라에서 이들의 소재지는 이상하게도 일부 지역에 집중되어 있다. 경주, 춘천, 제주 등 우리나라의 유명한 관광도시에 가면 테마 박물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인터넷에 '○○ 명소' 등을 검색하면 꽤 많은 글들의 주제가 테마 박물관이며, 혹시나 하는 기대감에 집어 든 '○○시 관광지도'를 보더라도 관광지도라기보다는 테마 박물관 지도라고 부르는 것이 맞을 정도로 반 이상이 이 자본주의의 산물이 차지하고 있다.


관광산업이 발전하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곳에는 비슷한 종류의 테마 박물관이 우후죽순으로 생겼다. 그 지역의 특성과는 전혀 상관없이 주요 관광지에는 성 박물관, 테디베어 박물관, 인형 박물관 등 정체를 알 수 없는 테마 박물관들이 패키지처럼 생겨났다. 박물관의 수준이 높기라도 한다면 그 나름대로도 의미가 있겠지만, 대부분의 방문객들은 관광지의 높은 입장료에 걸맞은 큰 실망감만 얻은 채 돌아온다. 나 역시도 여러 지역에서 테마 박물관들을 다녀봤지만 단 한 번도 만족한 적이 없었다. 어느 지역을 가더라도 똑같은 내용과 전시물이고 박물관을 찍어내는 보이지 않는 기계가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이러한 이유로 테마 박물관에 대한 나의 시선은 곱지 않았다.


여행 계획을 짤 때, 그뤼예르 인근에 대해서 알아보던 중 까이에 초콜릿 공장에 대해 찾을 수 있었다. 나는 그다지 관심은 없었지만 초콜릿을 좋아하는 친구가 꼭 한 번 가고 싶다고 얘기하여 이 곳도 우리의 여정지 중 하나로 결정되었다. 물론 나는 큰 기대를 가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은 완전히 틀렸다. 그곳은 어쩌면 우리가 갈 수 있는 윌리 웡카의 초콜릿 공장에 가장 가까운 곳이었다.


까이에 초콜릿 공장


까이에 초콜릿 공장


그뤼에르 마을에서 얼마 가지 않아 까이에 초콜릿 공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실제로 초콜릿이 생산되는 공장 건물도 있지만 방문객들을 위해서 이 공장의 공정과 초콜릿의 역사 등도 함께 볼 수 있는 전시 시설이 있는 곳이었다. 주변이 한산한 풍경과는 달리 로비에는 꽤 많은 사람들, 특히 어린이들이 모여 있었다. 처음에는 전시라고 하여 일반적인 박물관처럼 관람객들이 박물관에서 정해놓은 동선 또는 마음 가는 데로 돌아다니면서 관람하는 곳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로비에서 살펴보니 관람할 수 있는 시간대가 별도로 정해져 있었고, 같은 시간대에 동시에 관람할 수 있는 인원수도 제한되어 있었다.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일단은 시간대를 정해서 표를 끊고 우리 차례를 기다렸다. 관람에는 오디오 가이드도 함께 였는데, 오디오 가이드 기기를 초콜릿 모양으로 만들어 놓아 본격적인 관람 전에 이미 기분이 말랑말랑해졌다.


오디오 가이드


우리 시간대에는 다른 관람객 없이 우리 4명만 들어갈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종종 지나치게 관람객들이 많이 몰리는 전시의 경우 질서 있는 관람 문화를 위해 시간 간격을 두고 입장하는 경우가 있었기에 그와 비슷할 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곳은 전혀 생각과는 전혀 달랐다. 우리 앞에 펼쳐진 것은 넓고 은은한 전시 공간이 아니라 어둡고 좁은 암실이었다. 이게 뭐지라는 생각과 동시에 우리 앞에는 작은 인형극과 영상물 등 시각적인 효과들이 펼쳐졌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이런 상황에 대한 설명이 시작되었다. 바로 초콜릿의 역사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었다.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보이는 것들이 꽤나 재밌어 최대한 집중해서 오디오 가이드의 영어에 귀 기울였다. 그 방에서의 작은 공연이 끝나고서야 다음 방으로 가는 문이 열렸다. 다음 방에서는 또 새로운 영상과 인형극이 펼쳐졌다. 앞선 방에 이어 길고 긴 초콜릿 역사의 각각의 순간들을 설명했다. 이렇게 여러 방을 거쳐서 우리는 초콜릿의 역사에 대해 다채로운 시각과 청각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초콜릿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거의 끝날 무렵 본격적으로 스위스 지역의 초콜릿과 까이에라는 브랜드의 역사에 대한 내용이 이어졌다. 까이에(Cailler)는 1819년에 설립된 스위스의 초콜릿 회사 및 브랜드였고, 1931년 스위스의 또 다른 식품 기업 네슬레(Nestle)에 인수되어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사실 까이에라는 초콜릿 브랜드는 처음 들어봤지만 네슬레라고 하니 바로 그 브랜드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까이에와 네슬레의 역사에 대한 설명이 끝나고서야 우리는 신비로웠던 방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때부터는 초콜릿이 실제로 생산되는 공정을 살펴볼 수 있었다. 초콜릿이 만들어져서 포장되는 것까지의 생산 라인 축소판으로 만들어진 형태로 가까이서 볼 수 있었고 덤으로 마지막에는 이 초콜릿들을 직접 먹어볼 수 있었다. 시식코너는 이게 전부인가 싶을 때 관람 마지막 단계에서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많은 종류의 초콜릿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든 종류의 초콜릿을 전부 맛보고 나서야 우리의 관람이 끝났다.


까이에 초콜릿 공장 내부


박물관에서 중요한 것을 두 가지 꼽자면 전달하고자 하는 콘텐츠와 전달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일반적인 박물관의 전시물들은 이미 그 가치가 인정된 역사적인 의미가 깊은 유물들이다. 하지만 이들을 관람객들에게 보다 더 잘 전달하기 위하여 설명을 적어놓고 도슨트를 운영하기도 한다. 심지어 전시물의 가치가 더 부각될 수 있도록 조명에도 신경 쓴다.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 많은 테마 박물관들에는 이러한 정성이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다. 박물관 이름에 걸린 테마에 대해 이것저것 많이 모아놓았지만 이는 인터넷에서 조금만 검색해보면 찾아볼 수 있는 수준이다. 또한, 그 전달 방식도 날 것 그대로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 같다.


하지만 까이에 초콜릿 공장의 경우 전혀 반대였다. 초콜릿의 역사나 까이에와 네슬레라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을 어떻게 재밌고 흥미롭게 전달하느냐가 중요한 점이었다. 특히, 이곳의 주 관람객인 집중력의 시간이 무척 짧은 어린아이들에게 잘 전달하는 것은 무척 중요했을 것이다. 아마 그렇기 때문에 이곳은 인형, 영상, 소리, 조명 그리고 이야기를 섞어 하나의 각각의 극 형태로 자신들이 전달하고자 한 바를 꾸민 듯하다. 아이들은 분명 반짝반짝 빛나는 초콜릿 이야기에 빠져들 것이고 초콜릿에 관심이 없는 사람일지라도 푹 빠져들기에 충분한 하나의 공연이 되었다.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테마 박물관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관람객의 입장으로서 이 곳에 있으면 초콜릿을 사랑하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잘 전달된다. 감히 말하자면 테마 박물관이라고 하면 진실로 그 테마를 사랑한다는 느낌을 사람들에게 주는 장소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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