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이탈리아로 향하는 길, 석양이 지는 친퀘 테레

by 김산결

안녕(Bye), 스위스


체르마트의 아쉬운 하룻밤을 마치고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이탈리아로 향하는 길을 나섰다. 체르마트로 들어올 때와 마찬가지로 차가 있는 테쉬로 기차로 돌아가 오랜만에 우리의 붕붕이와 재회했다. 스위스에서 이탈리아까지 가는 길은 무척 멀었다. 우리의 목적지는 스위스와 이탈리아의 국경에서도 한참 들어가야지 위치한 피렌체(Firenze)였다. 또한, 피렌체로 바로 가는 것이 아니라 중간에 들려야 하는 곳이 있기 때문에 장시간 운전을 할 수밖에 없는 여정이었다.


이탈리아로 향하는 첫걸음을 출발하고 내비게이션에 우리의 목적지를 입력하였다. 차량에 탑재된 내비게이션에는 앞으로의 우리의 여정에 대해 그렇게 친절하게 나오지는 않았다. 우리가 가는 길이 시내를 관통하는 길이든, 고속도로이든, 비포장도로이든 아니면 터널이든 목적지로만 우리를 안내했다. 스위스를 빠져나가는 길은 국경에 가까워짐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본 스위스의 풍경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었다. 길 옆으로는 하얗게 눈 덮인 산들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었고, 구름 사이로 내리쬐는 햇볕이 눈을 파랗게도 만들고 눈부신 하얀색으로도 만들었다. 스위스의 마지막 순간에 사로잡힌 채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우리의 목적지로 그저 그렇게 흘러가고 있었다.


그러던 와중에 내비게이션에 한 번도 보지 못한 안내표시가 떴다. 생긴 것이 터널 모양과 비슷하지만 지금까지 본 터널 표시와는 조금 달랐다. 앞으로 수백 미터 후에 그런 곳이 있다는 것인데, 어떤 길이 펼쳐질지 가늠이 되지 않았다. 내비게이션이 안내하는 곳으로 향하다 보니 앞서 가는 차들의 속도가 점점 느려지기 시작했고 하나둘씩 줄을 서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그 표시가 의미하는 것은 열차였다. 또한, 일반 열차가 아니라 차량이 다니는 길 끝에 위치하여 차량을 싣는 열차였다. 테쉬에서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을 건너기 위해서는 스위스를 둘러싸는 높은 산맥들을 지나가야 했고 이 때문에 산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과 열차가 있었다. 뜻밖의 경험이었다. 우리나라에서 섬에 들어가기 위해 차량을 배에 싣는 경우는 보았지만 이렇게 산을 넘어가기 위해 기차에 차량을 싣고 넘어가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었다. 마침 다행이었다. 아침부터 계속된 운전의 피로를 잠시 덜 수 있는 시간이었고 무거워진 눈꺼풀을 잠시 쉬게 하고 어둠 속으로 이어지는 터널에 우리의 몸을 실었다.


스위스의 마지막 풍경과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차량용 기차


안녕(Hello), 이탈리아


꽤 길었던 터널을 지나니 오랜만에 느껴보는 따사로운 햇살이 내리쬐었다. 터널을 통과하기 전까지만 해도 스위스의 눈 덮인 세상에 있었지만 터널을 통과하니 눈 녹은 물로 촉촉해진 땅과 구름 한 점 없는 하늘, 눈부신 태양이 기다리고 있었다. 터널 하나를 지났을 뿐인데 내가 서있는 곳이 이렇게 달라졌음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그저 신기하고 피부처럼 함께한 무겁고 두꺼운 패딩을 벗을 수 있음에 감사했지만 이 느낌을 다른 이들에게 어떻게 잘 전달할 수 있을지는 몰랐다. 하지만 여행이 끝난 한참 후 우리의 상황과는 완전히 반대이지만 그때의 감정은 어쩌면 비슷할 수 있는 책의 도입부를 알게 되었다.


'국경의 긴 터널을 빠져나오자, 눈의 고장이었다. 밤의 밑바닥이 하얘졌다. 신호소에 기차가 멈춰 섰다.'
- 설국 中 (가와바타 야스나리 作)

우리는 눈의 고장을 벗어났고 볕의 고장으로 들어간 것이지만 새롭게 펼쳐진 풍경에 대한 경의와 감탄을 잘 나타낸 문장으로 다가왔다. 그때의 감정도 그러했듯이.


이탈리아의 볕은 따뜻했다. 지나가는 풍경도 전혀 달랐고, 불과 몇 시간 전 우리를 둘러싼 알프스의 흔적인 이미 지평선 끝에 머물러 있었다. 이 여행을 시작한 지 수일이 지났지만 새로운 풍경은 우리를 다시 설레게 하기에 충분했다. 여정표에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제노바(Genova), 밀라노(Milano)와 같은 이탈리아 도시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이런 큰 도시들도 있었지만 우리의 첫 행선지는 아름다운 해안 절벽에 자리 잡은 5개의 마을로 유명한 친퀘 테레(Cinque Terre)였다. 새로운 여행의 시작이었다.


멀리 보이는 알프스


이탈리아의 운전 문화


자동차 여행으로 국경을 지날 때마다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새로운 운전 문화에 적응해야 되는 것이었다. 독일과 스위스를 지나 이탈리아에 들어왔지만, 그 전까지의 운전 문화는 많이 어렵지는 않았다. 나라마다 다른 교통 안내판은 그래도 어느 정도 비슷한 모양을 띄고 있어 대충 그 뜻을 가늠할 순 있었고, 내비게이션이 과속카메라의 위치를 알려주진 않지만 운전하는 동안 가급적 규정 속도에 맞추고 카메라처럼 생긴 게 있으면 더 조심하는 식으로 대처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운전 문화는 쉽게 적응하기 어려웠다.


지금부터 나오는 내용은 나와 친구들의 경험담이므로 사실 여부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다만, 현지에서 느끼는 점을 적었기에 혹시나 필요한 분들께는 참고 정도는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고속도로의 과속카메라가 우리가 보이지 않는 곳에 숨어 있었다. 한국에서는 과속카메라가 도로의 우측 편에 있거나 이정표 위에 달려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이탈리아의 고속도로에 접어든 지 한 참이 지나도 우리는 과속카메라를 찾아볼 수 없었다. 뭔가 이상하여 찾아보니 이탈리아에서는 운전자가 볼 수 없는 이정표 뒤편에 과속카메라를 설치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 카메라는 자동차 뒷 편의 번호판을 촬영한다. 실제로 그런지를 확인하기 위해 이정표를 지날 때마다 뒤로 돌아 살펴보니 가끔씩 카메라와 비슷한 형체를 가진 기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한순간도 방심하지 않고 규정속도를 준수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그게 당연하겠지만 우리를 지나쳐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현지 차량들을 보면 답답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또한, 이탈리아 도시에는 외부 차량이 통행할 수 없는 ZTL(Zona Traffico Limitato)라 불리는 구역이 있었다. 이는 도시 거주자들의 원활한 차량 통행을 위해 외부 차량을 금지하는 제도로 이 구역에는 등록된 차량을 제외한 차량들의 통행이 엄하게 금지된다. 이러한 제도의 취지 자체는 충분히 공감이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외부인의 입장에서는 이러한 구역에 대한 안내가 너무 불친절했다. ZTL이라고 적혀있는 안내판이 있지만 이게 진짜 ZTL구역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표지가 아닌 경우도 있었고, 이미 ZTL에 진입했지만 이곳이 ZTL인지 아닌지를 확인할 수 있는 그 어떤 안내문도 없는 곳도 있었다. 더 최악인 것은 인터넷에 검색해도 이 구역에 대한 설명을 쉽게 찾을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우리는 ZTL이라고 적혀있는 안내표시만 보면 길을 돌아가야 했고 항상 먼 곳에 주차하고 우리 숙소로 찾아갈 수밖에 없었다.


마지막으로 이탈리아의 좋지 않은 치안으로 인해 차량을 두고 가는 것 자체가 마음이 편치 않았고 현지인들의 운전 매너가 너무 나빠 운전하는 것조차도 쉽지 않았다. 이탈리아에서는 좋은 차량일 경우 주차한 사이 차량이 파손되는 경우도 있고 심지어 차량 유리창 안으로 좋은 물건이 있으면 상황이 더 심각할 수도 있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또한, 뒤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이곳은 우리나라 부산을 한참 넘어서는 과격한 운전자들이 많은 곳이었다. 이 때문에 이탈리에서의 자동차 여행은 시작부터 쉽지 않았고, 우린 결국 일정을 변경하는 결정까지 하게 되었다. 이 또한 추후 이야기에서 자세히 다루도록 하겠다.


비수기의 친퀘 테레(Cinque Terre)


친퀘 테레는 이탈리아 서북부에 자리 잡은 해안으로 절벽이 무척 아름답고 그곳에 위치한 다섯 마을로 유명한 곳이다. 해안 절벽에 위치한 이 마을들은 각양각색의 파스텔 톤 건물로 이루어져 있고 내리쬐는 햇볕에 그려지는 마을의 모습이 한 폭의 수채화 같아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도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다. 또한, 지중해와 해안 절벽이 만들어 낸 주변 경관 역시 아름다우며 국립공원 및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어되어 보존되고 있었다. 우리도 아름다운 친퀘 테레의 풍경을 기대했고 마침 피렌체로 가는 길이었기에 그곳을 이탈리아의 첫 여행지로 정했다.


하지만, 친퀘 테레에 위치한 마을들로 가는 길부터 녹록지 않았다. 해안 절벽에 위치했기에 그곳으로 향하는 길은 대부분 포장되지 않았었고 길도 그리 넓지 않았다. 차 두대가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 정도의 폭이었다. 또한, 군데군데 나타나는 ZTL 표시판으로 인해 마을에 가까이 갔다가도 ZTL을 피해 주차할 곳을 찾기 위해 한참을 헤맸다. 겨우 주차를 하고 본격적으로 마을 중심부로 들어갔지만 스위스보단 따뜻한 이탈리아였지만 이 곳을 기준으로 보았을 때는 추운 계절이었기 때문에 길에서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점심식사를 위해 식당도 여기저기 찾아가 보았지만 문이 닫혀있는 곳이 많았다. 또한, 사진 속에서 본 파스텔 톤의 건물 외벽은 생각과는 달리 칠이 대부분 벗겨져 무채색의 회백색 콘크리트가 드러나있었고 나뒹구는 나뭇잎에 분위기는 더 스산했다.


다행히 해변가로 가니 분위기가 조금 전환되었다. 햇볕에 부서지는 지중해는 아름다웠다. 산으로 둘러싸인 며칠을 보내다 오랜만에 광활한 바다를 보니 바다의 특별함이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을 찾아보기 힘든 이 곳의 허전함은 어쩔 수 없었다. 때문에, 이곳에 오래 머물러야 할 이유를 크게 찾지 못했다. 우리가 기대했던 아름다운 마을의 모습도 없었고 기대를 품고 찾아오는 사람들 또한 없었다. 생명력을 찾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이후에나 알게 되었지만, 이탈리아의 대부분 관광지는 여름이 성수기이고 비수기인 겨울에는 다시 돌아올 여름을 위하여 보수작업에 들어가는 일이 많다고 한다. 아마 마을 건물의 외벽도 파스텔톤으로 다시 칠해졌겠지만, 내 기억 속 친퀘 테레를 다채롭게 칠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친퀘 테레


별이 내리는 절벽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친퀘 테레를 서둘러 나와 오늘의 목적지인 피렌체로 향했다. 친퀘테레를 벗어나 고속도로로 닿기 위해서는 해안 절벽을 벗어날 필요가 있었다. 절벽을 따라 계속되는 길은 무척 위험했다. 옆에는 낭떠러지가 가까이 붙어 있었지만 불의의 사고를 대비한 가드레일은 전혀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 곳으로 들어올 때보다 길은 점점 더 좁아져 차 한 대만이 가까스로 지나갈 수 있는 길이 되었다. 상황은 점점 더 심각해져 해는 지기 시작했고 얼마 가지 않아 주변은 새까매졌다. 가드레일이 없는 이 길에 가로등은 있을 리는 없었다. 그저 조금이라도 빨리 이곳을 벗어나길 기도할 수밖에 없었다. 애꿎은 하늘은 이 상황에서도 아름다웠다. 수평선을 통해 붉게 물든 석양과 하늘을 수놓은 별은 무척 아름다웠지만 눈에는 전혀 들어오지 않았고 저 별이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만이 가득했다. 다행히도 무사히 그곳을 벗어날 수 있었지만 이 경험은 여행 계획을 바꾸는 데에 큰 기여를 하게 되었다.


석양이 지는 친퀘 테레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10. 마지막 스위스, 체르마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