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일요일, '다시 시작하는 유럽 여행'의 '친퀘 테레' 편을 발행하고 여느 때와 같이 가벼운 운동으로 하루를 마무리하고 있었다. 조회수가 높지는 않지만 내 글을 찾아주고 간혹 댓글을 달거나 구독과 좋아요로 관심을 표해주는 감사한 분들이 있어 틈이 날 때마다 브런치 앱을 열어보곤 한다. 이러한 이유로 운동을 마치고 돌아가는 길에도 잠시 브런치를 열었고 평소에는 볼 수 없는 조회수에 멈칫하게 되었다. 분명 어딘가에 내 글이 노출되고 있음을 짐작했다. 여러 감정이 교차했다.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 그중 누군가에게는 울림을 주지 않았을까라는 기대에 뿌듯한 성취감도 있었던 반면, 혹여나 내 글에 잘못된 정보, 어휘, 문장 등이 있을까 걱정스럽기도 했다. 퇴고를 거침에도 항상 새로운 오타가 발견되기에 다시 한번 글을 읽어보았다. 말과 글의 무게를 세차게 느꼈다. 앞으로 그 무게를 기억하며 좀 더 성숙한 글을 쓸 수 있도록 해야겠다. 나의 말과 글을 함께해준 꽤 많은 사람들에 대한 보답으로...
우여곡절 끝에 무사히 피렌체로 입성할 수 있었다. 우리가 이틀 밤 동안 머물 곳은 피렌체 힐튼 호텔(Hilton Florence Metropole)이었다. 장거리 운전으로 피로가 많이 쌓였음에도 불구하고 친퀘 테레에서 제대로 끼니를 해결하지 못하여 허기짐이 더 크게 느껴졌다. 마침 차로 멀지 않은 곳에 맥도널드가 있었고 햄버거로 끼니를 간단하게 때울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날의 새로운 여행을 위하여 일찍 잠에 들었다.
피렌체(Firenze) 여행의 첫 번째 날이다. 다음 날은 아침에만 잠시 시간이 있고 바로 다른 도시로 이동해야 했기에 이 도시에 오롯이 시간을 바칠 수 있는 건 이 날 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여행 계획을 그렇게 짰던 것에 대해 많이 후회스럽다. 피렌체라는 도시에 대해 조금은 알게 된 지금, 르네상스 시대의 중심이자 당시 문화, 상업, 경제, 정치 등 다양한 분야에서 세계를 선도하였던 도시를 고작 하루 만에 돌아보았다는 것 그리고 심지어 크게 인상적인 기억 없이 돌아왔다는 것에 아쉬운 마음이 크다. 그래도 다른 사람들은 느껴보지 못한 나만의 피렌체의 기억을 끄적여봐야겠다.
우리가 머문 힐튼 피렌체에서 도심지까지는 꽤 거리가 있었고 ZTL이라는 녀석 때문에 차를 가지고 가는 것도 조심스러웠다. 다행히 호텔에서 시가지까지 운행하는 셔틀버스가 있어서 편하게 피렌체 중심으로 이동할 수 있다. 우리의 첫 번째 목적지는 우피치 미술관(Galleria degli Uffizi)이었다. 르네상스 문화/예술의 중심지였던 피렌체의 위엄을 느낄 수 있는 우피치 미술관은 도시의 시대적 배경과 더불에 메디치 가문이라는 예술작품들의 가치를 알아봐 준 이들의 공로로 르네상스 시기의 많은 작품들을 보관, 전시하고 있다. 미술 작품을 감상하는 법도 모르고 역사적 지식도 없지만 마침 학교에서 이전 학기에 미술사라는 과목을 수강하면서 어깨너머로 들은 것이 있었기에 괜스레 관심이 가는 곳이었다.
이 곳은 바깥에서부터 미술관임을 느낄 수 있도록 멋진 조각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었다. 많은 인파들과 함께 우리도 미술관으로 들어섰다. 미술관이 소장하고 있는 작품들도 물론 멋있지만 이 건물 자체도 하나의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금색 또는 오렌지색 풍의 화려한 천장 장식과 천장화로 꾸며진 긴 복도 양 옆으로 수많은 조각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또한, 큰 창으로 들어오는 자연광은 다른 조명이 없더라도 이 작품들을 은은하지만 충분히 비추고 있었다. '라오콘과 두 아들'과 같은 교과서에서 소개된 작품들도 있었지만 대부분의 작품들은 처음 보는 것들이었다. 작품들마다 짧은 설명이 있었지만 모두가 영어로 표기되어 있었기에 그 많은 설명들을 전부 읽는 것은 시간 제약으로 인해 힘들었다. 뿐만 아니라 설명을 읽더라도 이 곳의 역사적 배경을 알고 있었던 것도 아니었기에 전달하고자 하는 바를 이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물론 글로 된 설명만으로는 전달할 수 없는 그 작품만의 분위기와 서정을 느낄 수는 있었다. 무척이나 유명한 작품들이지만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봄'에서 이러한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다행히 이 작품들이 전달하고자 하는 신화적 이야기를 알고 있었기에 보다 잘 이해할 수 있었고 우리와 완전히 닮은 인물의 모습은 아니지만 그림 속 인물들이 느끼는 감정이 전달되었다. 특히, 한쪽 벽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던 '봄'을 보고 있을 때에는 '제피로스'가 불어오는 봄바람이 전해지는 느낌이었다.
돌이켜보니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이 있는 것처럼 수많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이 들에 대한 사전 배경지식이 없었기에 작품들 앞에 머무는 시간은 고작 해도 수 초였을 뿐이었다. 시간적 여유와 예술에 대한 관심이 더 많았더라면 사전에 여러 가지를 알아보고 갔으면 작품을 더 재밌게 즐길 수 있었을 것이다. 언젠가 다시 우피치로 돌아가게 된다면 이 작품들에 더 많은 관심과 경의를 보여야겠다.
우피치 박물관을 나와서 우리는 가죽 시장으로 갔다. 피렌체 대성당, 우피치 박물관, 미켈란젤로 광장 등 피렌체에는 유명한 장소들이 많지만 사실 우리가 가장 기대했던 곳은 가죽 시장이었다. 이탈리아라고 하면 패션의 나라처럼 느껴졌고 뭔가 좋은 가죽을 팔 것만 같은 선입견이 있었기에 한 개 정도의 물건은 얻어가자는 암묵적인 다짐이 있었다. 또한,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선물할 것들을 사기에도 좋아 보였다. 가죽 시장에 도착하니 명동이나 우리나라 유명 관광지 또는 전통시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노점상들이 길 양 옆으로 쭉 뻗어있었고, 그 뒤편으로는 노점상보다는 번듯한 상점들이 줄지어있었다. 노점상보다는 일반 상점의 임대료가 더 비쌀 것이고 그만큼 취급하는 물건도 고급스러울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가죽 시장이라고 불리지만 가죽제품 외에도 관광지에 있는 시장에서 팔 법한 선글라스, 기념품 등 다양한 물건들을 취급하고 있었다. 나는 어머니에게 선물할 가방을 찾고 있었고 친구들도 지갑, 재킷 등 각자 사고자 한 물건들이 있었기에 그것들에 주목하며 시장 거리를 걸었다.
가죽 시장에 오기 전 유심히 찾아보았던 글이 있었다. 이 곳은 시장이었고 또한 우리는 먼 이국에서 온 이방인이기에 합리적인 가격에 제품을 살 필요가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가급적 우리에게 가장 유리한 가격에 흥정을 할 필요가 있었고 이러한 흥정의 기술을 터득하기 위해 이전에 이곳을 다녀온 사람들의 후기를 많이 찾아보았다. 다행히 친구들이 대구 동성로의 보세 상인들과의 잦은 흥정으로 이미 기술을 터득했던 지라 내가 굳이 많이 찾아보고 나설 필요는 없었다. 이 덕분인지 나는 원하는 가격에 어머니의 선물을 구할 수 있었다. 마침, 그 가게의 사장님(?)께서 여성분이셨고 자녀가 있었던 이유인지 어머니에게 선물한다는 나의 말을 듣고 선뜻 좋은 가격에 양질의 가방을 내주었다. 우리에겐 마지막 관문이 남아있었다. 가죽 시장에서 멋진 가죽재킷들을 보고 갑작스럽게 구매 욕구를 가지게 된 친구가 있었고 친구를 위해 우리는 최선을 다해 발품을 팔고 흥정을 할 필요가 있었다. (물론, 나는 흥정에는 소질이 없었고 다른 친구가 도맡아 했다.)
마침 멀지 않은 가게에서 친구의 마음에 쏙 든 가죽재킷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멋진 수염을 가진 미남 사장님과의 흥정 대결이 시작되었다. 우선 사장님이 최초로 제시한 가격에서 최대한 협상을 해야 된다. 그리고 흥정할 수 있는 만큼 흥정을 한 후에 현금으로 결제하겠다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가격을 깎는 것이다. 만약에 이 시점에 넘어오지 않는다면 마지막으로 지금 가지고 있는 현금이 얼마밖에 없다는 최후의 멘트를 칠 수밖에 없다. 이런 식으로 친구는 사장님과의 긴 흥정에 들어갔고 결국, 장고 끝에 사장님은 질렸다는 듯 더 이상은 해줄 수 없다며 마지막 가격을 제시하셨다. 하지만, 한 가지 씁쓸한 말씀을 하셨다. "이래서 한국인보다 중국인이 좋아. 중국인들은 가격 얘기하면 바로 사가거든." 스스로 알뜰한 거라고 위로해보지만 중국 부호들의 씀씀이를 생각하니 살짝 씁쓸해진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래도 나와 친구들이 모두 원하는 물건을 산 것에 대해 감사하다.
모든 쇼핑을 마치고 가죽 시장을 떠나려던 찰나 한 가판대에서 선글라스를 파는 것을 보았다. 마침 이탈리아의 햇볕이 생각보다 강렬하여 모두가 막 쓸 수 있는 선글라스를 필요로 하던 찰나였다. 선글라스의 각양각색의 색도 마음에 들었지만 무엇보다도 동그랗게 개성 있는 모습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이 선글라스를 모두가 함께 쓴다면 어디에서든 눈에 띌 것 같았다. 가격도 저렴했기에 더 이상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가판대의 주인께 값을 치르고 다 함께 선글라스를 써보았다. 마치 4명의 레옹과도 같은 우리의 모습이 재밌었는지 주인께서 사진을 찍어준다고 했다. 즐거운 미소로 쇼핑을 마치고 사진을 남겼다. 지금 봐도 참 재밌는 모습이다. 이후에도 여행을 하면서 가끔씩 같이 선글라스를 쓰곤 했는데 정말 주목받는 모습이었다.
이탈리아에서부터 본격적인 우리의 커피 여행이 시작됐다. 최근에야 스타벅스가 생기긴 했지만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에서는 스타벅스 매장이 없었다. 이탈리아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을 잘 보여주는 사례이다. 커피에 대한 자신들의 기술과 노하우 그리고 맛에 대한 자부심이 강한 이탈리아로 백 년이 넘은 카페들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거기에다가 국민 대부분에게 커피 문화가 퍼져있고 많은 사람들이 물처럼 커피를 마시고 있기 때문에 커피 가격도 에스프레소 기준으로 1~2유로 밖에 하지 않았다. 커피를 좋아하는 우리에게는 이보다 좋은 곳이 없었다.
피렌체에서도 많은 카페들을 들렀지만 가장 기억에 남는 곳은 카페 질리(Caffè Gilli)이다. 1733년에 문을 연 이곳은 커피도 훌륭하지만 디저트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곳이다. 그리고 처음 문을 연 년도에서도 알 수 있듯이 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며 피렌체의 많은 예술가와 문인에게 사랑받는 장소였다고 한다. 커피만큼 디저트가 유명한 곳이라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듯 카페에 처음 들어서니 진열대 안쪽으로 다양한 케이크들이 우리를 맞이하고 있었다. 아침식사 대용으로 에스프레소와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디저트인 티라미수를 주문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티라미수 한 숟갈에 쌉싸름한 에스프레소를 더하니 입 안으로 궁합이 착 감겼다. 나의 미각으로 300년의 역사를 맛으로 찾아낼 순 없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쉽고 편하게 커피를 즐길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오랫동안 사랑하고 있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아마 피렌체라고 하면 사람들이 가장 먼저 생각하는 음식은 티본스테이크일 것이다. 학생이었던 당시에는 한국에서 스테이크를 자주 맛보진 못했다. 하지만, 티본스테이크로 유명한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에서 이 음식을 먹지 않으면 크게 후회될 것 같았다. 그래서 이탈리아에서 한 번은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겠다고 다짐했고 그중에서도 티본스테이크를 꼭 먹겠다고 생각했다.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인터넷을 찾아보면 피렌체에는 3대 티본스테이크 레스토랑이 있다고 한다. 우리는 그중 자자 레스토랑(Trattoria ZàZà)으로 갔다.
내부 외에도 테라스 좌석에서도 식사를 할 수 있는 이 곳은 한국 사람들에게도 무척 유명한 식당이다. 다행이게도 긴 기다림 없이 식당에 들어갈 수 있었고, 가죽 시장에서 장만한 우리의 선글라스 탓인지 종업원께서 유쾌한 웃음으로 우리를 맞이해주었다. 메뉴는 고민 없이 티본스테이크로 정했다. 이 곳 티본스테이크는 정량인 1kg을 정확히 지키고 그 무게가 말해주듯 어마어마한 양으로 유명한 곳이다. 스테이크를 먹을 때는 당연히 굽기의 정도도 정해야 한다. 사실 스테이크를 제대로 먹어본 적이 없어서 나에게 맞는 굽기를 알리가 없었다. 흔히들 많은 사람들이 미디엄 레어로 먹는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어 그 굽기로 주문을 했다. 한 껏 분위기를 내기 위해서 하우스 와인까지 주문했다. 하지만, 그 주문과 굽기는 큰 실수였다.
한참을 기다린 후에야 음식이 나왔다. 어머어마한 크기를 가진 네 덩이의 고기가 우리 테이블을 가득 채웠다. 티본스테이크라는 이름 그대로 T자 모양의 뼈가 도드라졌고 그 아래로 바삭하게 익은 고기가 붙어 있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잘 익은 스테이크 같았다. 하지만 고기에 칼을 갖다 대니 얘기가 달라졌다. 생각한 것보다 고기는 잘 썰리지 않았고 고리를 썰면 썰수록 육즙과 함께 핏물도 함께 나왔다. 뭔가 이상하긴 했지만 스테이크를 처음 먹어보는 것이기에 원래 스테이크란 그런 줄 알았다. 고기 한 조각을 입에 넣었는데 거의 생고기처럼 느껴졌고 많이 질겨 잘 씹히지 않았다. 어른의 맛이란 참 어렵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왜들 그렇게 스테이크를 좋아하는지 알 수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맛있다고 하여 억지로 고기를 먹어치우긴 했다. 고기 덩이가 무척 컸기에 배는 불렀지만 불쾌한 배부름이었다. 그렇게 티본스테이크에 대한 기억은 나쁘게 남았다. 한국에 돌아와서 제대로 된 스테이크를 먹기 전까지 나는 미디엄 레어라는 굽기가 원래 생고기 수준이구나라고 생각했다. 물론 아니었지만.
피렌체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며 미켈란젤로 광장으로 갔다. 이 광장이 미켈란젤로 광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유는 이 곳에 미켈란젤로의 조각품 '다비드상'의 모조품이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하지만 다비드상이 있다는 것 말고도 이 광장이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이유는 아마 이 곳에서 피렌체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역시도 피렌체의 아름다운 야경을 기대하며 그곳으로 갔다.
광장이 도심지 뒤편 언덕에 위치하여 사람들의 말처럼 시가지가 정말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주황빛 조명으로 둘러싸인 피렌체 대성당과 그 밖에 다른 건물들의 모습이 고요하고 아름다웠다. 내려다보이는 야경 뒤편에 위치한 다비드상도 조명과 함께 늠름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참 동안이나 피렌체의 모습을 내려다보았다. 시간이 흘러 집에 돌아갈 시간이 되었다. 아쉬운 마음을 감추고 우리는 사진 하나를 남기고 다시 숙소로 돌아왔다. 피렌체의 부지런한 하루가 그렇게 지나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