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렌체에서의 우리 일정은 순식간에 흘러갔다. 이틀 밤을 보내긴 했지만 늦은 저녁에 도착한 첫째 날과 아침 일찍 출발한 마지막 날을 제외하고는 온전히 피렌체에 있었던 건 하루뿐이었다. 피렌체에서의 마지막 아침 우리의 원래 계획은 바로 로마로 이동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친구가 전날 가죽 시장에서 살지 말지 고민하던 물건이 있었고 아침에야 그 물건을 사기로 결정하여 출발 시간이 잠시 늦춰졌다. 호텔 셔틀로 피렌체 시가지를 다녀오기에는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차를 가지고 시가지로 향했다. (로마로 향하는 여정이 길었기 때문에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했다.) 다만, ZTL을 피하기 위해서는 중심지에서 떨어진 곳에 잠시 주차를 해야 했다. 다행히 전날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넓은 주차장을 본 것이 기억나 우선은 그곳으로 향했다. 광장에 도착하여 볼 일이 있는 친구만 가죽 시장으로 갔고, 나와 다른 친구들은 아침해가 비치는 피렌체 시가지와 광장을 둘러보았다. 피렌체의 시가지는 전날 밤에 보았던 것보다 더 영롱한 주황빛으로 빛나고 있었다. 지난밤에는 피렌체 시가지의 주요한 건물들을 비추는 주홍빛 조명이 마치 무대 위에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주인공을 연상케 했다면 아침에 바라본 피렌체는 수많은 회백색과 적갈색의 건물들이 햇볕에 반사되고 흐릿해져 주인공이 따로 없는 하나의 풍경과 한 폭의 수채화가 되었다.
광장에는 우리말고도 아침 공기를 맞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른 아침부터 산책을 온 피렌체의 주민들도 있었고 음료를 파는 가판대를 운영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몇몇 사람들이 아침 산책으로 차가워진 몸과 마른 목을 축이기 위해 가판대에서 따뜻한 커피 한 모금씩을 하곤 했다. 지금까지 지나온 독일, 스위스보다는 남쪽 나라였지만 계절이 계절인지라 아침 공기가 제법 차가웠다. 우리도 잠을 깨우고 몸을 따뜻하게 하기 위해 가판대에 잠시 들러 이탈리아 길거리 커피를 맛보았다. 한국에서 등산길에 흔히 만날 수 있는 길거리 커피보다는 훨씬 쓴 맛의 커피였지만 그 분위기만큼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광장에서 가죽 시장까지 거리가 꽤 있다 보니 친구를 기다리는 시간이 생각보다 더 길어졌다. 광장에 처음 도착했을 때는 눈 앞에 펼쳐지는 피렌체의 풍경에 시간 가는 줄을 몰랐지만 기다림이 계속될수록 조금씩 지루해졌다. 뭔가 재밌는 게 필요한 순간이었다. 마침 우리 뒤로 펼쳐진 풍경도 예술이었겠다 사진이나 많이 남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사진을 찍는 것도 한순간이었다. 사진을 찍으면서 시간을 보내는 것에도 한계가 있었다. 특히, 그 대상이 남자라면 더더욱 그렇다. 5컷 안에 모든 것이 마무리되기 때문이다.
그러자 친구 A가 점프샷을 한 번 찍어보자고 제안했다. 나와 친구 B는 호기롭게 좋다고 했다. 그렇게 우리의 첫 점프샷을 찍었지만 결과는 엉망이었다. 최선을 다해서 '높이' 뛰었지만 결과물이 좋지 않았다. 나는 그렇다 하더라도 친구들 중에서 운동 신경이 가장 좋은 편인 친구 B의 자세도 그렇게 좋지 않았다. 둘 다 높이는 뛰었지만 사진으로 보았을 때 구도가 전혀 예쁘지 않았다. 반면에, 의외로 사진 속에서 친구 A는 그의 두꺼운 허벅지에도 불구하고 아름다운 자세를 보여주었다. 뭔가 이상했다. 분명 높이 뛰기는 친구 A보다 우리가 훨씬 높이 뛴 것 같았다. 하지만, 사진 결과물은 전혀 반대였다. 우리의 모습을 보며 친구 A는 의미심장하면서도 비웃는 미소로 우리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점프샷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농구를 하는 것 마냥 높게 뛰는 것이 아니라 다리를 최대한 허공에 띄우는 것이라고 그가 말했다. 이후, 친구는 바로 시범을 보였다. 이상한 자세로 뛰는 친구의 모습은 마냥 웃겼다. 하지만, 사진은 그렇지 않았다. 자객이 지붕에서 뛰어내리는 것처럼 날렵하고 역동적인 모습이 담겨있었다. 놀라울 뿐이었다. 그렇게 우리는 한 동안 점프샷 훈련을 받았다. 친구의 확실한 조언 덕분에 우리는 제대로 된 사진을 건질 수 있었다. 다만, 문제는 이후로도 우리는 어떤 곳을 가더라도 계속 뛰었다. 로마에서, 토스카나에서도, 베니스에서도, 오스트리아에서도, 독일에서도.
머지않아 가죽 시장으로 갔던 친구가 돌아왔다. 숨이 가쁜 우리의 모습에 의아해하던 친구를 말없이 차에 태우고 우리는 로마로 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