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 AS로마, 가슴 뛰는 스타디오 올림피코

by 김산결

무법의 도시, 로마


로마는 우리 여행 계획이 본격적으로 틀어지기 시작한 도시였다. 앞선 글에서 밝힌 것처럼 이탈리아의 도로 문화, 특히 ZTL이라는 구역으로 인해 어디를 가든 큰 스트레스를 받았다. 뿐만 아니라 상대적(?) 고급 차량에 대한 치안의 위험도 있었고, 그런 와중에 친퀘 테레의 절벽 도로는 우리의 마음을 더더욱 뒤숭숭하게 만들었다. 그런 상태에서 우리는 피렌체에서 로마로 들어왔다.


본격적으로 로마로 들어가기 전까지는 나쁘지 않았다. 고속도로가 계속되었고 과속카메라만 조심하여 여느 때와 같았다. 하지만, 로마 시가지 주변으로 들어가기 시작하면서 군데군데 ZTL 표지판이 보이기 시작했고 도로 위에는 차들이 많아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로마 시내 운전은 생각보다도 더 심각했다. 수많은 차량의 바퀴질로 차선은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흐릿했고 차선이 있어도 제대로 지키는 차가 몇 대 없었다. 여기저기 울리는 경적소리에 왼쪽 오른쪽으로 많은 차들이 끼어들기 시작했고 이런 상황 속에서도 비좁은 틈을 파고드는 오토바이들이 아슬아슬하게 지나가고 있었다. 어떻게 이런 상태에서 다들 운전을 할 수 있는지... 그야말로 어이가 없는 상황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스트레스는 점점 심해져갔다. 물론 로마에서는 친구가 대부분을 운전했지만, 운전자뿐만 아니라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차를 타고 있는 동승자들에게도 그 스트레스가 심각하게 전해졌다. 서울이나 부산 같은 우리나라에서 꽤나 복잡하다는 곳을 모두 차로 다녀보았지만 이 곳은 그 이상이었다. 무질서 속의 질서가 말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우여곡절 끝에 숙소 근처로 도착했지만 역시나 주차할 곳이 마땅치 않았다. 주차장이 있을 법한 곳에는 어김없이 ZTL 표지판이 보였다. 결국 빙빙 돌아 숙소에서 멀리 떨어진 공터에 주차할 수 있었다. 다만, 혹시나 누군가 우리 차에 위협을 가하진 않을까라는 걱정은 여전히 마음속에 남아있었다. 이탈리에 들어온 이후로 이러한 상황이 반복되니 여행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이전까지만 해도 비록 장거리 운전을 하더라도 그 자체가 즐거웠다.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고 바깥바람을 쐴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다. 하지만 상황이 180도 달라졌기에 모든 것이 짜증으로 다가왔다. 그리고... 여기에 우리의 목적지 중 하나인 나폴리의 절벽 도로가 친퀘 테레의 것보다 더 위험하고 심각하다는 사실이 방점을 찍게 되었다. 우리는 로마 이후의 이탈리아에서의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계획을 새로 짜기 시작했다. 로마에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지 않고 토스카나 주로 바로 이동한 후 베니스를 지나 오스트리아로 가는 것으로 결정됐다. 계획을 수정하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이탈리아에서의 보낼 수 있는 날이 앞으로 많이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드니 오히려 여행에 더 집중되었다. 어쨌든 로마에서의 첫날이었고 우리는 이전부터 기대하던 축구 경기를 앞두고 있었다.


유럽의 숙소


로마에서의 첫날에 대해 본격적으로 얘기하기에 앞서 숙소에 대해 간단하게 얘기하려고 한다. 옛날에 비해 여행할 때의 숙소에 대한 선택지가 많아지고 있다. 예전에는 호텔이나 호스텔 정도였다면 지금은 게스트하우스, 한인민박, 에어비앤비 등 여러 형태의 숙소를 선택할 수 있다. 이 중 우리는 주로 에어비앤비와 취사가 가능한 호텔을 이용했다. 크게 두 가지 이유가 있었는데 하나는 여행 비용에 대한 것이었고 나머지 하나는 분위기였다.


우선 취사가 가능한 숙소를 선택함으로써 식비를 많이 아낄 수 있었다. 우리나라에 비해 서구권 국가에서는 집에서 외식문화가 상대적으로 덜 발달했다고 한다. 회사생활을 하더라도 회식이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고 특별한 날이 아닌 이상 대부분의 사람들이 저녁식사를 집에서 했기 때문에 집에서 요리하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이 때문인지 에어비앤비로 구한 집들에는 오븐 등 한국의 일반 가정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조리 도구들도 기본적으로 갖춰져 있었다. 취사가 가능한 호텔 방도 마찬가지였다. 덕분에 피자 등 요리를 쉽게 할 수 있었고 식자재가 저렴했기 때문에 밖에서 사 먹는 것보다 훨씬 합리적으로 식사를 할 수 있었다.


분위기에 대한 부분은 에어비앤비 숙소에만 해당된다. 나라마다 지역마다 여러 차이가 있는 것처럼 주택양식이나 거주 문화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가급적 다양한 형태의 주거지를 경험해보고 싶었다. 이러한 목적에 부합하는 것이 에어비앤비였고 덕분에 우리는 유럽 아파트에서도 지내보고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의 농촌 주택에서도 지낼 수 있었다. 호텔의 경우 왜관은 나라마다 특색 있게 꾸밀 수 있더라도 결국 방에 들어가 보면 특별한 점을 찾을 수 없었다. 반면에, 에어비앤비 숙소는 호스트마다 집을 꾸미는 성향도 다르고 지역의 색도 많이 녹아져 있었고 가끔은 뜻밖의 선물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 물론 에어비앤비 숙소는 호스트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는 경우도 많지만, 우리는 다행히 좋은 호스트만 만나 마음 편히 지낼 수 있었다.


로마의 숙소도 에어비앤비 숙소였다. 이 숙소는 아파트에 위치한 집이었다. 아파트라고 표현하기는 했지만 우리나라의 아파트의 모습은 아니었고 오히려 고풍스러운 빌라와 같다고 할 수 있다. 커다란 대문의 건물로 들어가면 영화에서나 볼 수 있을법한 철창으로 된 엘리베이터가 있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문 안으로 들어가니 깔끔하게 꾸며진 하얀색 벽지의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러한 광경들이 내가 정말 유럽에서 지내고 있구나라는 것을 실감시켜주었다.


바로 경기장으로 이동해야 했기에 빠르게 옷을 갈아입고 길을 나섰다. 이 고운 집과는 저녁에 많은 시간을 보내길 기약하며 우리는 AS로마의 홈구장 스타디오 올림피코로 향했다.


로마의 유럽식 아파트


직관의 꿈


나와 친구들은 축구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학창 시절에도 점심시간, 저녁시간을 가리지 않고 항상 운동장에서 공을 찼고 이 때문에 미리 사둔 식권이 쓸모가 없어진 날도 많았다. 또한, '해버지' 박지성 선수의 전성기와 학창 시절을 함께한 세대로 그가 활약한 다음 날 아침은 온통 그 얘기로 가득했고 교실 텔레비전에는 경기 하이라이트가 무한 반복되었다.


그중에도 나는 박지성 선수의 유럽 진출 이후 해외축구에 눈을 뜨게 되었다. 다음 날 수업이 있더라도 새벽까지 기다리며 경기를 시청했다. 경기가 너무 늦은 시간에 있을 때에는 꼬박꼬박 알람을 맞춰두고 새벽같이 일어나서 경기를 챙겨보았다. 아침잠이 많은 나로서는 웬만한 열정이 아니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다. 뿐만 아니라, 수능을 앞둔 고3 시절까지도 매주 일요일 아침마다 공을 차러 나갔다. 이런 나의 모습에 어머닌 이해할 수 없다 하셨지만 결국에는 나의 이러한 건강한(?) 취미를 인정해주셨다. 심지어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위닝이라는 축구게임만큼은 유일하게 십 년이 넘도록 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한때는 김성주, 배성재 아나운서와 같은 스포츠 전문 아나운서를 잠시 꿈꿨던 적도 있었다.


어쨌든 이 때문에 유럽으로 여행을 계획했을 때부터 어느 나라 어느 도시가 되던 간 축국 경기를 꼭 관람하려고 했다. 그리고 기왕이면 세계 최고 수준의 팀과 선수들의 경기를 보고 싶었다. 우리가 지나는 나라들 중 독일 분데스리가와 이탈리아 세리에 A가 가장 매력적인 리그였다. 다만, 분데스리가는 그 시기에 겨울 휴식기를 가졌기 때문에 세리에 A 밖에 선택지가 없었다. 그중에서도 유벤투스나 두 밀란 팀의 경기를 보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일정과는 맞지 않았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최종 선택지는 AS로마의 경기가 되었다.


스타디오 올림피코


스타디오 올림피코(Stadio Olimpico)는 세리에 A의 팀인 AS로마와 라치오의 홈구장이다. UEFA에서는 유럽에 위치한 축구 경기장들에 등급을 매기는데, 스타디오 올림피코는 몇 안 되는 5성급 경기장이다. 경기장 등급은 해당 경기장에 개최할 수 있는 대회에 영향을 미친다. 그중 하나로 UEFA에서 주관하는 챔피언스리그 결승전은 5성급 경기장 중에서도 일정 규모 이상의 인원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에서만 열릴 수 있다. 이러한 사실들이 말해주듯 우리가 방문한 스타디오 올림피코 경기장은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경기장이 아니라 큰 의미와 가치를 지닌 경기장이었다.


우리 숙소에서 스타디오 올림피코까지 버스를 이용해 쉽게 갈 수 있었다. 이미 버스 안에서부터 AS로마의 유니폼을 입고 있거나 머플러를 두르고 있는 사람들을 볼 수 있었다. 버스를 내리고 경기장까지는 조금 더 걸어 들어가야 했지만 경기장에 모습이 보이지 않더라도 이미 그 열기를 느낄 수 있었다. 우렁찬 응원소리와 북소리가 우리가 걸어가는 방향으로부터 들려왔다. 귓가로 울려 퍼지는 북소리와 함께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많이 기대했던 것만큼 마음속 열정이 점점 커져갔다. 이 때문인지 행동도 좀 더 과감해지고 충동적 이어진 듯했다. AS로마를 이전부터 좋아한 건 아니기 때문에 관련 용품들을 살 생각은 전혀 없었으나, 평범한 패딩을 입고 경기를 본다는 것은 쿵쾅 뛰는 내 가슴이 허락하지 않았다. 친구들의 생각도 마찬가지였다. 결국, 우린 붉은색 재킷, 모자, 머플러 등을 파는 매장을 지나 온몸에 하니씩 걸치고 경기장에 들어가게 되었다.


스타디오 올림피코로 향하는 길


이탈리아 축구팬들의 열기(?)가 엄청나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었다. 더비 경기가 있을 때는 연장을 챙겨 오는 팬들까지 있다고 하니 역시 마피아의 나라구나라는 생각도 했다. 이를 증명해주듯 경기장으로 들어가는 절차가 간단하진 않았다. 마치 공항에서 입국심사를 하는 것처럼 소지품 검사를 모두 해야 했고 날카로운 물건이나 무기는 당연히 반입이 안되었고, 폭발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배터리 같은 것들은 입구에 맡겨놓고 입장해야 했다. 오히려 이런 과정을 거치니 마음 편하게 축구를 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리 예약해둔 자리로 가니 생각보다 경기장과 가까운 거리였다. 선수들이 몸 푸는 모습이 무척 가깝게 느껴졌다. 리그 하위팀과의 경기다 보니 좌석도 여유가 있어 편하게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다. 몸을 풀던 선수들이 다시 경기장 안쪽으로 들어갔고 곧이어 경기 유니폼을 갈아입은 선수들이 다시 입장했다. 본격적으로 경기가 시작되었다. 세계 최고의 선수들은 아니지만 충분히 클래스가 있는 선수들의 경기를 직접, 그리고 가까이서 볼 수 있음에 정말 감사했다. 안타깝게도 상대팀 선수들은 거의 몰랐지만, AS로마에는 '로마의 왕자' 토티, 피야니치, 제코, 살라, 나잉골란, 데 로시, 슈치에스니 등 축구팬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유명한 선수들로 가득했다. 특히 지금은 세계 최고의 선수 중 하나로 거듭난 현 리버풀의 살라 선수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공이 발에 붙여 다녔고 수비수 사이로 순식간에 달려 나가는 살라 선수의 움직임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그의 플레이를 보니, 세계 최고 선수인 메시나 호날두 선수의 움직임은 어떤지 더더욱 궁금해졌다.


경기 외적으로 인상적인 상황들도 있었다. 우선, 경기장 안이 공인된 흡연구역인지는 모르겠지만 이탈리아의 거친 아저씨 팬들은 거의 대부분 자리에서 담배를 피우면서 경기를 관람했다. 그리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는다 싶으면 봉우리 모양의 두 손을 강하게 흔들며 알아들을 수 없는 이탈리아를 거칠게 내뱉었다. 이탈리아어를 이해하지 못하지만 욕이었음은 누가 들어도 짐작할 수 있었다. 또한, 잠깐잠깐씩 전광판을 통해 동시간에 진행되는 다른 경기의 상황이 중계되었는데 라이벌 팀이 골을 먹히면 모든 관중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쏟아냈다. 역시 상대 팀의 아픔은 우리 팀의 기쁨인가 보다.


시간이 오래 지나 당시 경기 결과가 어땠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AS로마가 가까스로 이겼던 거 같다. 하지만, 결과가 중요하진 않았다. 그 자리에서 현지 팬들의 열정을 함께 느끼고 세계적인 선수들의 경기를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시간이었다.


AS로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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