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랜만에 글을 쓰려 노트북을 열어보니 모니터 우측 하단에 오늘의 날짜가 보인다. 11월 16일. 마지막 글을 쓴 지 꼬박 한 달이 지났다. 벌써 한 달이 지났다는 생각에 흠칫 놀랐다가도 지난 몇 주 동안 바빴던 날들을 생각하니 그럴 수 있겠다는 생각도 바로 이어 들었다. 컴퓨터 가득 쌓인 자기소개서를 읽어야 했고, 미국으로 자신의 일을 찾아 떠나는 친구와의 마지막 추억을 위하여 제주도를 다녀왔고, 어쩌면 미국보다 더 먼 결혼과 부부라는 미래로 뛰어드는 친구를 위하여 축하의 노래를 불러야 했다. 그렇게 지난 한 달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지나간 시간은 한 달뿐이 아니었다. 꾸준하게 글을 쓰기로 마음먹은지도 1년, 그 1년의 시간도 순식간에 흘러갔다. 1년이 52주이니 계획에 따르면 52편의 글을 실어야 하지만 나의 브런치에 있는 글은 21개뿐이다. 꽤나 많이 게으름을 피웠구나 싶으면서도 토요일 저녁 지금 이 순간에도 글을 쓰고 있는 내 모습에 스스로 심심한 위로를 받기도 한다. 그래도 아직까지 다짐을 꺽지 않은 나 자신에 응원을 보내며, 비록 한 달간의 휴식 아닌 휴식을 취했지만 다시 한번 열심히 타자기를 눌러본다.
AS로마의 축구 경기가 끝나고 로마 시내로 이동하니 어느새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기 시작했다. 해는 넘어갔지만 그대로 숙소로 돌아가기엔 아직 이른 시간이라 로마의 유명한 유적지 일부를 들렀다가 돌아갈 요량이었다. 하지만, 금강산도 식후경이듯 열정적인 응원으로 인해 열정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굶주린 우리의 배를 먼저 달랠 필요가 있었다.
로마 시내를 걷다 우연히 한 피자가게에 들어가게 되었다. 큰 기대 없이 찾아간 가게였지만 의도치 않게 반가운 얼굴을 보게 되었다. 바로, 로마의 왕자라고 불리는 AS로마의 전설적인 선수 '프란체스코 토티' 선수였다. 물론, 그를 실제로 만난 것은 아니고 사진 속 그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직원의 안내를 받아 우리에게 배정된 자리로 가니 벽면 가득 채운 사진들이 있었다. 이곳을 방문한 유명인사들의 사진이었다. 이러한 모습은 우리나라에서만 볼 수 있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탈리아 로마에서도 마주하니 은근히 반가운 마음도 생겼다. 특이한 점은 가게 사장님이 열렬한 축구팬인지 축구선수들의 사진이 유난히 많았다. 특히, 앞서 얘기한 토티 선수의 사진은 여러 장이 걸려 있었다. 몇몇 사진에는 그의 친필 사인으로 보이는 것도 새겨져 있었다.
우연히 들른 가게였지만, 마침 AS로마 경기를 보고 온 우리로써는 엄청난 인연을 만난 것처럼 기쁠 수밖에 없었다. 축구경기를 본 날의 마지막 식사를 열렬한 축구 팬의 가게에서 가질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었다. 피자 맛이 엄청나게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가 방금 지켜본 팀의 역사적인 선수들에게 둘러싸여 식사하는 그 분위기는 잊을 수가 없다. (또한, 이탈리아에서는 1인 1피자라며 피자 한 판을 각자 먹은 우리의 모습도 잊을 수 없다.)
콜로세움이나 판테온과 같은 유적지는 늦은 시간이라 내부로의 입장이 불가능했다. 다행히 내부로 입장할 필요 없이 바깥에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곳이 한 곳 있었다. 바로 트레비 분수였다.
밤의 트레비 분수에는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었다. 회백색의 거대한 조각물이 주황빛의 조명에 빛나고 있었다. 그 아래 하얀 조명으로 인해 진주빛으로 빛나는 가장자리와 중심으로 갈수록 에메랄드 빛깔을 영롱하게 강해지는 분수의 생명수가 아름답게 펼쳐져 있었다. 주황빛의 주택 건물로 둘러싸여있어 그 아름다움이 더욱 돋보였다. 연인, 가족, 친구 등 다양한 관광객들이 이 아름다운 거대한 조각을 배경으로 연신 카메라를 눌러댔다. 분수의 아름다운 모습을 카메라 프레임 한가득 담고 싶었지만 이를 둘러싼 사람들로 인해 쉽지 않았다. 카메라에 담는 것은 포기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최대한 눈과 기억 속에 오래 담기 위해 시야가 방해받지 않는 옆자리로 한동안 앉아있었다.
하지만 당시 나는 축구경기의 여운에 더 많이 사로잡혀있었고, 인간이 만들어낸 아름다운 창조물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이에 대한 지식이 부족했을 수도 있고, 아직까지는 이러한 건축물에 큰 관심이 없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앞으로 보게 되는 콜로세움, 판테온 등에서도 마찬가지인 경우가 많았다. 그 규모와 아름다움에 압도되지 않고서야 큰 감상을 얻기가 어려웠다. 이 점이 지금에서야 느끼는 이탈리아 여행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공부하고 알았더라면, 이러한 역사적인 건축물들을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졌을 거란 생각이 든다. 언젠가 가능하다면 미래의 나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주고 싶다.
잠시 동안 트레비 분수 옆에 앉아 멍하니 분수를 바라보다 어느덧 시간이 꽤나 늦었음을 깨닫고 친구들과 이고에 왔음을 사진으로 남겼다. 숙소로 향하는 길을 찾아보니 콜로세움이 멀지 않은 곳에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콜로세움 내부로 입장할 수는 없지만 조명이 비추는 콜로세움의 야경이 보고 싶어 그곳으로 향했다.
다음 날 본격적으로 콜로세움을 둘러볼 생각이었지만, 애피타이저 느낌으로 콜로세움을 즐기기 위해 숙소로 가는 길에 잠시 들렀다. 거대한 콜레세움의 풍채는 먼 곳에서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콜로세움으로 가까이 갈수록 아름답게 빛나는 콜로세움보다는 콜로세움 겉면 일부를 감싸고 있는 천과 옆에 놓인 거대한 중장비가 눈에 들어왔다. 정확한 영문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콜로세움의 보수공사 진행 중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보니 내일 다가올 여행의 기대감을 높이는 애피타이저라기보다는 오히려 실망감을 미리 느끼게 되어 버렸다. 콜로세움을 감싸고 있는 현대 문물들이 해가 밝으면 더욱 밝게 드러날 것을 생각하니 아쉬운 마음만 커졌다.
이전 편에서 얘기한 것처럼 우리가 이탈리아를 방문한 시기인 겨울이 이곳에서는 관광 비수기이고, 그렇다 보니 대부분의 유적지 보수공사가 이 맘 때에 진행되곤 한다는 것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안타깝지만 보수공사의 흔적이 드러나지 않는 곳을 찾아 콜로세움을 빛나는 자태를 남기고 아쉬움이 더 커지기 전에 숙소로 돌아갔다. 이렇게 로마에서의 첫날이 마무리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