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커피와 티라미수의 도시, 로마

by 김산결

로마 한 바퀴


로마에서의 두 번째 아침이 밝았다. 로마에서 머무는 일정은 하루가 더 남아있었지만 다음날에는 바티칸을 방문해야 했기에 로마 시내를 구경할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날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른 아침부터 부지런하게 로마의 유명 관광지를 둘러보아야 했다. 우리는 우선 숙소에서 가장 가까운 콜로세움으로 향했다. 비록 지난밤 콜로세움의 모습을 보기는 했지만 콜로세움 내부로 입장하기 위해 다시 한번 그곳을 찾았다.


지난 편에서 언급한 것처럼 겨울의 콜로세움은 두 조각 정도가 사라진 피자 마냥, 그 일부가 보수공사로 인해 회백색 천으로 뒤덮여있었다. 이 때문에 이미 기대감이 많이 꺾여있는 상태였고, 이탈리아 여행에 대한 흥미를 잃어버린지는 오래라 많은 것이 눈에 들어오지는 않았다. 그래도 다행이게도 콜로세움 내부는 별다른 공사 작업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겉에서 보기에는 '스타디오 올림피코'와 같은 축구장에 비하면 무척 작게 느껴졌지만 안에서 바라본 콜로세움은 훨씬 더 넓어 보였다. 관중석에서는 수많은 검투사들이 피와 땀을 흘리며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을 무대가 보였다. 다만, 영화 '글레디에이터'에서 본 것 또는 최근 '토르: 라그나로크'에 나온 검투장처럼 평평한 모습은 아니었다. 오히려 콜로세움의 메인 무대로 보이는 곳에는 수많은 돌기둥이 마치 장애물 마냥 서있었다.


도대체 왜 이런 모습일까 의문이 점점 커지던 찰나, 마침 많은 관광객들을 이끌고 지나가는 가이드의 설명을 통해 그 의문을 해결할 수 있었다. 본래 이러한 구조물들 위해 모래로 덮인 나무판자가 검투장 이루고 있었고, 우리 눈 앞에 보이는 모습은 당시 검투장 아래에서 수많은 검투사들과 맹수들이 대기하는 장소라는 내용을 들을 수 있었다. 그런 점을 고려하면 관중석과 검투장은 꽤 가까운이 위치했고, 아주 근접한 곳에서 검투사들의 움직임 하나하나를 생동감 있게 느끼는 관중들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졌다. 마치 지난 오후 우리가 느낀 축구선수들의 그런 생동감을 말이다.


이전 학기 꽤 관심을 가지고 수강한 '연극과 문화'라는 강의 내용도 일부 떠올랐다. 이 넓은 콜로세움의 검투장에 물을 채워 수전까지 구현했다고 하니, 당시 황제의 권력과 로마 제국의 기세가 어느 정도인지는 굳이 직접 느끼지 않아도 그 이야기만으로 충분히 전해졌다. 이러한 콜로세움의 역사나 당시의 용도 및 쓰임새보다 사실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아침 햇살에 그 세월이 고스란히 전해지면서도 여전히 빛을 뿜고 있는 콜로세움의 대리석과 벽돌들이었다. 이른 아침에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빛나는 로마의 위세와 그 시절을 함께한 콜로세움은 온 세상을 밝히는 아침해와 무척 잘 어울렸다.


아침해가 비추는 콜로세움


그다음 일정으로 판테온을 보기 전에 간단하게 아침 겸 점심식사를 하기 위해 마땅한 레스토랑을 찾으러 나섰다. 길을 가다 보니 베네치아 광장 인근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유럽을 여행하면서 그리고 20년간 생활한 대구를 떠나 서울을 올라온 후, 도시에서 가장 인상적인 장소를 꼽으라고 한다면 나는 망설임 없이 광장을 택할 것이다. 도심 한복판에 많은 시민들이 산책을 할 수 있고 잠시 앉아 쉬어갈 수 있고 그리고 특히 높은 빌딩과 건물 숲에서 탁 트인 광경을 볼 수 있는 광장이 나에게는 가장 매력적인 장소였다. 이러한 광장 문화는 유럽에서 더더욱 발달되어 있는 것으로 보였다. 시가지의 모든 길은 광장으로 향했고, 길을 잃어버리더라도 광장을 중심으로 생각하면 어느 장소도 어렵지 않게 찾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민들이 광장에서 그들의 여유시간을 보내고 있었고, 벤치가 없더라도 잔디 또는 그냥 길 위에 삼삼오오 앉아서 친구들과 지인들과 연인과 즐거운 대화를 하고 있었다. 국민과 시민이 만들었지만 첨단문화가 뒤덮고 있는 도시에 온전히 이들을 위한 장소가 여전히 남아있음이 마치 힘겹게 올라가는 등산로에서 마주치는 약수터처럼 느껴졌다.


베네치아 광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바로 조국의 제단이다. 베네치아 끝자락에 위한 위엄 있는 기념물은 그리스풍의 대리석 조각과 청동조각이 조화를 이루어 그 위세를 당당하게 내뿜고 있었다. 당시에는 이 건축물을 무엇을 기념하는지를 자세히 찾아보지는 않았지만 그 웅장함만큼은 확실히 전해졌다. 다만, 그 웅장함으로 많은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이 기념물이 정작 로마 시민들에게는 사랑받지 못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했다. 하지만, 포로 로마노를 가림으로서 역사의 도시인 로마에 부조화를 가져왔다는 평을 보니 로마 시민들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다.

조국의 제단을 지나 식당을 향해가는 길에 뜻밖의 친구를 만났다. 로마가 해안가 맞닿아있는 도시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한적한 잔디 위에 갈매기가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너무나도 고운 자태와 미동도 없는 움직임에 처음에는 조각상 중 하나로 오해했지만, 사진을 찍으려니 마치 초상권을 보호하려는 움직임 마냥 날개를 펄럭이는 모습에 진짜 갈매기라는 것을 알아챌 수 있었다. 지금도 여전히 이유는 알 수 없다. 왜 로마 시내 한복판에 갈매기가 있는 것인지.


조국의 제단과 늠름한 갈매기상(?)


판테온 인근에서 간단하게 식사를 마치고 바로 판테온으로 들어갔다. 판테온 그 모습만으로도 감탄을 자아내는 위엄을 보였다. 나에게 로마의 그 어떤 유적지보다 판테온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점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로는 판테온의 건축시기였다. 서기 125년 경에 새워진 고대 로마의 신전은 이미 당시부터 신을 모시는 종교의 형태가 로마 사회에 널리 퍼져있음을 추측하게 한다. 두 번째로는 판테온의 건축시기를 고려했을 때의 보존상태였다. 2000년 가까이 지난 건축물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그 보존 상태가 우수했다. 판테온 정면으로 눈에 띄는 큰 상처 없이 곧게 뻗어있는 기둥과 기둥 위로 선명하게 새겨져 있는 로마자의 모습은 그 세월의 흐름을 알 수 없을 정도로 깔끔했다. 또한, 대리석의 색도 여전히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고 내부조차도 깔끔하게 관리되고 있었다.


마지막으로 판테온의 특이한 돔 구조였다. 당시의 건축술로 엄청난 무게의 대리석 천정을 지탱시킨 체 어떻게 돔 구조의 지붕을 건설하였는지도 의문이었다. 뿐만 아니라, 돔 중앙부를 덮지 않은 채로 지붕이 지탱될 수 있음이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또한, 그러한 형태가 단순 미학적인 이유가 아니라 판테온의 내부를 밝히기 위한 실용적인 이유를 염두하였다는 점은 놀라움에 방점을 찍었다. 실제로 판테온 내부는 특별한 조명 없이도 충분히 밝은 빛이 들어왔다. 오히려 너무 밝지 않아서 신전이라는 이 건축물의 목적에 맞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서기 100여 년이라는 아주 오래된 시절에 이렇게 아름답고 놀라운 건축물을 세웠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가끔은 과거 인류의 도저히 믿기 어려운 기술력에 어안이 벙벙해지곤 한다. 하지만, 당시의 놀라운 기술력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것들이 구전을 통해서만 전수되었다는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인쇄술이 조금 더 빨리 발명되었더라면, 그런 세상 속에서 현대의 기술력은 지금과는 상상치 못할 정도로 많이 발전하지 않았을까라는 상상도 해본다.


판테온


커피의 나라, 이탈리아


로마 제국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에는 인류를 대표하는 많은 유적지와 건축물들이 있지만, 사실 우리의 최대 관심사는 커피였다. 비록, 커피가 처음 발견된 곳은 아니지만 현재 많은 사람들이 즐기는 추출 커피의 한 형태인 에스프레소를 개발한 이탈리아였기에 이탈리아 사람들의 커피에 대한 자부심과 사랑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전 세계로 매장을 넓혀가고 있는 세계 최대의 커피 프랜차이즈인 스타벅스가 당시까지만 하더라도 이탈리아에 매장을 하나도 열 수 없었다는 사실은 이탈리아 사람들이 자신들의 커피에 대한 애정이 얼마나 큰지를 알 수 있는 유명한 이야기 중 하나이다. (2018년이 되어서야 밀라노에 이탈리아의 첫 번째 스타벅스 매장이 들어섰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이탈리아였기에 가는 길 곳곳에서 카페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이탈리아의 카페는 '정말 커피를 마시기 위한 장소'였기에 우리나라의 카페와는 달리 그 규모가 훨씬 작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바에서 에스프레소를 한 입에 톡 털어 넣고 다시 자신들의 갈 길을 떠났다. 또한,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아메리카노라는 메뉴는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에스프레소를 마셨고, 필요한 경우에는 에스프레소에 스팀우유, 위스키, 보드카 등을 첨가해서 먹었다. 만약에 아메리카노가 먹고 싶다면 바리스타에게 에스프레소와 함께 물 한 잔을 요구하여 직접 섞어먹어야 한다.


로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카페는 스페인 계단 근처에 있는 카페 그레코(Caffe Greco)이다. 로마의 3대 카페 중 하나로 흔히 알려진 이 곳은 1760년에 문을 연 아주 오래된 카페이다. 많은 예술가와 지식인들의 교류 장소였던 것으로도 유명한 카페 그레코는 특히 덴마크의 유명한 동화작가 안데르센이 자주 방문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실제로 이 건물 2층은 그가 살았던 곳이라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위키피디아에 나올 법한 얘기는 여기서 그만하도록 하겠다.


로마의 많은 카페가 그러하듯 카페 그레코에 들어가면 커피머신과 수많은 에스프레소 잔이 놓여있는 바와 깔끔하게 정장으로 멋을 낸 바리스타들이 손님을 맞이한다. 대부분의 손님들은 바에서 커피를 주문하고 금세 마신 후 제 갈길을 간다. 물론 안쪽으로 앉아서 커피를 즐길 수 있는 장소도 있다. 다만, 그 경우에는 커피값을 제외하고 별도의 자리값을 지불해야 한다. 우리는 굳이 앉을 필요까지는 없었기에 그리고 뭔가 바에서 캐주얼하게 커피를 즐기는 것이 이 곳의 문화에 더 가까운 것으로 보였기에 그 자리에서 바로 주문을 했다. 나와 친구들의 메뉴는 늘 그랬듯 에스프레소였다.


바 형태로 이루어진 카페의 가장 큰 장점은 오픈 키친과 비슷하다는 점이다.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제조하는 과정을 눈 앞에서 지켜볼 수 있었기에 커피를 눈으로도 즐길 수 있다. 특히, 카페에서 일을 하며 커피를 만드는 데에 관심이 많았던 나로서는 이러한 유서 깊은 곳의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드는 장면을 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커피값 이상의 가치를 주었다. 커피가 준비되고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바리스타들이 커피를 만드는 장면을 함께 즐겼다.


그러던 와중 한 바리스타가 스팀우유와 함께 에스프레소로 담긴 투명 유리잔을 드는 것을 보았다. 피처를 돌리는 그의 모습에 눈이 갔다. 보통 카페라테를 만들기 전에 우유 거품이 뭉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피처를 돌려 우유를 섞어주는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지만, 에스프레소만 담긴 잔에 무엇을 하기 위해 그런 모습을 보이는지 관심이 갈 수밖에 없었다. 그러던 찰나 그는 피처를 톡톡 튀기기 시작했고 피처의 주둥이 너머로 하얀 우유 거품만이 에스프레소 잔으로 떨어지기 시작했고 마치 함박눈이 오는 것 마냥 에스프레소라는 땅 위에 소복이 쌓여갔다. 특히, 에스프레소 잔이 투명 잔이었기 때문에 그 광경이 생생히 전달되었고 마치 마술처럼 느껴졌다. 우유 거품을 통해 라테아트를 하는 장면은 흔치 않게 볼 수 있었지만 거품을 아니 거품만 튕기듯 잔으로 던지는 장면은 생전 처음 봤다. 나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고 흥분된 상태가 친구들에게 내가 본 것을 설명했다. 다만, 문제는 다시 보여주고 싶어도 그 음료가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는 것이다. 에스프레소 마키아토는 에스프레소에 우유를 더하는 것이지 우유 거품만 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음료와는 다른 게 틀림없었다. 그렇다면, 우리가 이전에는 알지 못하는 전혀 새로운 종류의 음료인 것이고 이를 찾기 위해서는 바리스타와 직접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우리는 이탈리아어를 하지 못했고 그도 영어를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결국 우리는 이 카페에 있는 메뉴를 하나씩 다 주문해서 그 음료를 찾아내기로 결심했다. 그렇게 메뉴판에 있는 메뉴를 하나씩 주문하기 시작했다. 한국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던 에스프레소로 시작하는 다양한 음료들이 있었다. 에스프레소 뒤에 오는 단어는 무엇이 더해지는 지를 나타내는 단어였다. 하나씩 메뉴를 정복해가면서 들뜬 기대감으로 기다리기 시작했고 결국 우리의 끈기로 그 메뉴의 정체를 알아냈다. 들판에 쌓인 함박눈과 같은 그 음료의 이름은 에스프레소 스키마토(Espresso Schiumato)였고, 스키마(Schiuma)라는 단어가 거품이라는 뜻을 가진 것처럼 그 말 그대로 에스프레소에 거품이 더해진 음료였다. 덕분에 우리는 바리스타의 화려한 손기술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만약에 로마에서 카페 그레코를 방문할 일이 있다면 꼭 이 음료를 마셔보길 추천한다. 입과 동시에 눈으로도 그리고 감성으로도 즐길 수 있는 커피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1) 에스프레소, 2) 에스프레소 마키아토, 3) 에스프레소 스키마토


커피, 티라미수와 함께


스페인 계단 근처에는 또 다른 유명한 가게이다. 바로 티라미수로 유명한 폼피(Pompi)라는 디저트 가게이다. 워낙에 한국인들이 많이 찾는 가게라 블로그의 힘으로 유명해진 곳이 아닌가 의문도 들었지만 이 곳 티라미수의 맛은 우리의 그러한 편견을 완전히 깨부수었다. 저렴한 가격에 푸짐한 양의 티라미수를 즐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맛도 탁월했다. 한국에서도 티라미수를 먹어본 적이 있지만 그것과는 큰 차이가 있었다. 일단 티라미수를 구성하는 크림이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부드러웠고 커피와 초콜릿의 향이 진하게 느껴졌다. 알고 보니 우리가 한국에서 흔히 먹는 티라미수는 미국식 레시피로 이탈리아 본연의 티라미수와는 차이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행 후에 알게 되었다.


폼피에는 오리지널 티라미수 외에도 딸기 티라미수 등이 있다. 만약에 단 맛보다는 상큼한 맛을 더하고 싶다면 딸기 티라미수를 추천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디저트는 커피와 함께 했을 때 그 맛이 배가 된다. 결국, 우리는 폼피에서 티라미수를 사고 근처에 있는 카페 그레코에서 커피를 사서 함께 즐겼다. 스페인 광장에서 쭈그려 앉은 채. 커피와 티라미수에 홀린 우리는 그날 저녁 하염없이 두 가게를 번갈아가면 들렸고 몇 번씩이나 커피와 티라미수의 조합을 즐겼다. 결국 우리는 로마를 떠나는 마지막 날까지 틈만 나면 이를 반복했고, 우리에게는 그 모든 역사적인 유적들을 제치고 티라미수와 커피가 로마에서의 가장 행복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폼피의 티라미수와 스페인 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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