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없던 시절 다녀왔던 여행인 까닭에 바티칸 시국에 대한 기억이 자세히 남아있지는 않다. 그러다 보니, 국가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고 역사와 전통을 가진 수많은 건축물과 예술작품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먼저 기억에 남는 순간은 바티칸 시국으로 처음 들어가던 순간이다.
그 규모와 위치를 언뜻 보았을 때는 로마시 안쪽에 위치한 또 다른 도시처럼 보이지만 이 곳은 가톨릭의 중심지이자 이탈리아와는 독립적인 '국가'이다. 국교는 당연히 가톨릭이며 교황청이 위치한 이 곳은 교황을 국가원수로 하는 정식 국가이다. 로마 시 안쪽에 위치하고 그 규모가 크지 않아 이탈리아의 한 도시라는 오해를 많이 받는 것 같으며, 실제로 바티칸 시국은 세계에서 가장 작은 나라로도 분류된다.
어쨌든 이탈리아와는 다른 국가이기 때문에 이 두 지역이 맞닿는 곳은 엄밀히 말하자면 국경이다. 그 말은 즉 국경을 넘기 위한 절차를 밟아야 한다는 뜻이며, 바티칸 시국은 가톨릭교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중요한 인물인 교황이 머물고 있는 곳이기 때문에 그 보안도 철저히 유지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바티칸으로 처음 들어갈 때에도 가장 인상 깊었던 점이 바로 이 점이었다. 그다지 두껍지 않은 벽을 사이에 두고 국가가 나뉜다는 점과 일반적으로 생각했을 때 그 규모가 더 작은 도시 안에 국가가 있다는 점이 신기했고, 실제로도 엄중한 절차를 거친 후에야 바티칸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교황청의 근위병으로 생각되는 이들은 가톨릭의 느낌이 물씬 풍기는 멋진 유니폼을 입고 날카롭고 차가운 눈빛으로 관광객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최근 모 프로그램에서 본 내용에 대한 기억이 맞다면 아마 그때의 근위병들은 스위스 용병들로 추측된다.
바티칸 시국에 들어오니 바로 정면으로 성 베드로 광장과 성 베드로 대성당을 볼 수 있었고 온갖 고풍스러운 건축물로 둘러싸인 광장은 입국 수속 절차에 삭막해진 시야에 빛을 더했다. 우리가 한나절 동안 둘러볼 코스의 첫 번째 장소는 성 베드로 대성당이었고 그 이후에는 시스티나 성당과 바티칸 박물관을 들를 예정이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은 지금껏 들른 그 어떤 성당보다 규모가 크고 화려했다. 베드로의 무덤 위에 세어졌다고 전해지며, 가톨릭 교회의 성당 등급 분류상 최고 등급인 대성전으로 분류된다고 한다. 미켈란젤로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건축가 여럿이 건물을 설계했으며, 수 차례의 설계 변경을 거쳐 어렵게 완공이 된 성당이라고 한다. 옛 교황들의 무덤이 일부 이 곳에 모셔져 있으며, 이 밖에도 성당 내부는 바로크 시대와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할 수 있는 조각품들도 채워져 있다. 그중에서도 여전히 뇌리에 깊숙이 박혀 있는 것은 미켈란제로가 조각한 '피에타'의 모습이다. 피에타는 성 베드로 대성당에 입장하여 입구와 가까운 오른편에서 쉽게 찾을 수 있다. 아마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으로 향하면 어렵지 않게 피에타 앞으로 갈 수 있을 것이다.
피에타에 대한 기억이 강렬한 첫 번째 이유로는 그 조각품에 대한 이야기를 일부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두 번째로는 유리 너머로 보이는 성모 마리아와 예수의 모습이 형언할 수 없는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냈기 때문이다. '피에라'라는 작품명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에서만 쓰이는 것이 아니라 그 뜻 자체는 '슬픔', '비탄'으로 기독교 예술의 대표적인 주제 중 하나이며 성모 마리아가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시선을 떠안고 비통에 가득한 표정으로 그녀의 아들을 바라보는 모습을 조각한 작품들을 일컫는 단어이다. 미켈란젤로는 아주 섬세한 조각술로 이 장면을 자신만의 방식으로 그려낸 것 같다. 성모 마리아의 옷 주름은 조각이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표현되어 있고, 온기가 없이 축 처져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시신은 대리석이 가진 차가움을 너머 서늘함을 품고 있었다. 반면에, 그녀의 아들을 바라보는 성모 마리아의 얼굴에는 표정도 없고 눈동자도 없었으나 뜨거운 슬픔이 아려있는 듯했다. 또한, 미술사 시간에 들은 바로는 미켈란젤로는 성모 마리아상의 크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 왜소하게 조각했고, 이 때문인지 예수 그리스도를 떠안고 있는 어머니의 품이 온화하고 드넓어 보였지만 그 슬픔도 같은 크기로 다가오는 듯했다.
미켈란젤로의 피에타는 작품이 지닌 의미와 가치를 고려했을 때 엄중히 관리하고 온전히 보관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때문에 일반 대중들에게는 방탄유리로 방문객들로부터 안전하게 분리되어 전시되고 있다. 내 기억엔 성 베드로 성당의 조각품 중 이러한 방식으로 전시된 것은 피에타가 유일했던 것 같다. 그리고 아마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방탄유리가 치워지는 경우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하지만, 작년 말 문재인 대통령께서 '한반도 평화를 위한 특별 미사'를 위하여 바티칸을 방문했을 때, 문재인 대통령을 위한 교황청이 방탄유리 없이 온전한 모습으로 피에타를 관람할 수 있도록 배려해주었다는 기사를 접했다. 정책에 대한 사람들의 찬반은 나뉠 수 있겠지만,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대통령을 전 세계 가톨릭의 수장인 교황께서 세심한 배려를 해주었다는 점에 이 나라의 국민으로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피에타를 제외하고도 대중들에게 아주 유명한 작품들을 바티칸 시국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하나는 미켈란젤로가 그린 시스티나 성당 천장의 프레스코화이며, 또 다른 작품들은 바티칸 박물관에 있는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과 작자 미상의 '라오콘 군상'이다.
'라오콘 군상'은 바티칸 박물관의 유래가 된다. 아마 중학교 때부터 역사 교과서 또는 미술 교과서에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던 이 작품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 형체만 보았을 때는 르네상스 시대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생각되었지만, 실제로 이 조각품이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시기는 율리우스-클라우디우스 왕조 시기로 기원전 27년과 기원후 68년 사이 즈음이라고 한다. 2000년이나 거슬러 간 과거에 인간이 이토록 정교한 조각을 할 수 있었다는 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조각품은 1500년 경에 로마에서 발굴되어 바티칸에서 처음 공개가 되었고, 이때 이 작품이 공개된 것을 바티칸 박물관의 시초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은 듯하다. 이 때문에 바티칸 박물관을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 아닌가 싶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또 다른 우리에게 유명한 작품이 있다. 바로, 라파엘로의 '아테네 학당'이며 라파엘로가 고대의 대학자들을 한 자리에 모은 일종의 상상화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중심으로 걸어 내려오는 대학자들의 모습은 마치 우리나라 영화 '범죄와의 전쟁'의 포스터를 연상시켜 피식 웃음을 짓게도 한다. 철학, 과학, 문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인류의 혁혁한 족적을 남긴 이들을 한 자리에 모아놓았다는 상상이 재미있으면서도 그들을 찬양하고 존경하는 라파엘로의 마음이 전해지는 작품이었다. 특히, 나는 이 작품에서 무슨 이야기를 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수많은 대학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얘기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 깊게 느껴졌다.
마지막으로 그 규모 면에서 단연코 압도적인 미켈란제로의 시스티나 성당 천장화가 있다. 시스티나 성당의 예배당에서 볼 수 있는 이 천장 프레스코화는 우리에게 특히 '천지창조'와 '최후의 심판'이라는 각각의 장면들로 유명하다. 성경의 내용들을 그림으로 옮겨 놓은 이 작품은 수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은 인류의 가장 중요한 문화재 중 하나로 여겨지고 있다. 사실 미켈란젤로의 주전공은 조각으로 회화는 아니었으나 시스티나 성당 천장을 칠하라는 교황의 의뢰를 아마 거절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이 엄청난 규모의 작품은 약 5년의 세월을 거쳐 완성되었고, 천장에 그려하는 작품의 특성상 이로 인해 미켈란제로가 관절염과 근육 경련을 얻고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감 안료로 인해 눈병도 얻었을 것이라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실제로 시스티나 예배당 현장에서 이 작품을 관람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작품의 규모로 인해 모든 작품을 꼼꼼히 보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동안 고개를 뒤로 젖히고 천장을 바라보아야 했다. 불과 수분에 불과한 시간이었지만 금세 목에 뻐근함이 전해져 왔고 4년간 천장에 매달려 작업을 했을 미켈란제로를 생각하니 인간의 한계를 넘었구나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바티칸 박물관의 마감시간이 임박하여 천장화를 더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은 잠시 접어두었지만 처음 그 공간에 들어갔을 때의 압도감은 여느 자연경관이 주는 압도감에 못지않은 경외감을 주었다.
바티칸에서의 하루를 마무리하고 출국(?)한 뒤 다시 로마의 숙소로 향했다. 해가 진 로마의 모습은 낭만적이었다. 숙소로 걸어가는 길에 테베레 강의 야경을 볼 수 있었고 우리 가는 길마다 비추는 주홍빛 가로등과 조명들은 차가운 저녁 공기마저 따뜻하게 만드는 듯했다. 비록, 로마와 이탈리아에서의 여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그 마무리는 나쁘지 않았다. 테베레 강의 흘러가는 물길에 불편함, 불안감 등 나쁜 감정들을 실어 보낼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