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 베네치아의 가면무도회

by 김산결

물의 도시, 베네치아


베네치아는 규모로만 보았을 때는 그리 큰 도시는 아니지만 도시 곳곳을 연결해주는 운하와 바다와 맞닿아있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관광지이다. 우리에게는 어릴 적부터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으로 유명한 지역이며, 도시 전체가 자아내는 특유의 낭만적인 분위기로 한국인들에게 사랑받는 이탈리아의 도시들 중 하나이다. 해안도시 베네치아에는 육지와 연결된 본섬 외에도 여러 섬들이 있으며 특히 아기자기한 규모와 형형색색 파스텔 색상의 건물들이 있는 부라노섬은 가수 IU의 뮤직비디오 촬영지로도 유명하며, 많은 한국인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다.


이탈리아 일정을 많이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역시도 베네치아를 제외시킬 수는 없었다. 물의 도시 특유의 분위기를 느끼고 싶었고 어차피 올라가는 길이었기에 크게 무리는 없었다. 그런 이유로 토스카나 지역을 지나 우리의 다음 목적지는 베네치아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부르는 베네치아 본섬도 차량으로 들어갈 수는 없었다. 다행히 본섬 밖에 위치한 숙소에 차량을 주차할 수 있었고 우리는 육지와 베네치아 본섬이 이어주는 기차를 타고 들어갈 수 있었다. 기차는 얼마 지나지 않아 도착했고 처음 마주한 베네치아는 아득히 멀어지는 바다와 흔한 골목이 아닌 여러 갈레로 나뉘는 운하의 모습으로 스스로 물의 도시임을 우아한 자태로 보여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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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네치아


베네치아의 가면 축제


베네치아는 수상도시라는 지리적 특징 외에도 세계 3대 사육제 중 하나로 불리는 베네치아 사육제로도 유명하다. 사육제는 전 세계 가톨릭 국가들을 중심으로 성대하게 펼쳐지는 그리스도교 축제이다. 베네치아 사육제가 유명한 이유는 축제 기간 동안 화려한 가면과 의상으로 축제를 즐기는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자아나는 독특하고 환상적인 분위기 때문이다. 이 때문인지 베네치아 사육제는 가면 축제라고도 불린다.


이러한 명성 때문인지 축제 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베네치아 곳곳에는 화려한 가면을 판매하는 가게들이 많았다. 이러한 분위기에 우리는 답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베네치아 여행을 보다 풍요롭고 개성 있게 보내기 위해 우리는 가면을 하나씩 구매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근처 보이는 가게에 들어가 각자가 마음에 드는 가면을 하나씩 집어 들고 주저 없이 금액을 치렀다. 그리 비싸지 않은 가격이라 금전적인 고민 없이 실행에 옮길 수 있었다. 그리고 하루 동안 가면을 쓰고 돌아다닌 우리의 경험은 가면의 값어치를 무척이나 상회했다.


축제기간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가면을 쓰고 다니는 사람은 우리가 유일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다른 관광객들의 이목을 끌게 되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이탈리아 여학생들은 우리와 함께 사진을 찍고 싶다고 했다. (이탈리아어를 쓰고 아주 앳된 표정에서 그들의 정체를 추측해보았다.) 낯선 이들의 이러한 환대를 거절할 이유는 전혀 없었고 기쁜 마음에 함께 사진을 찍었다. 여학생들 중 한 친구의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서로에게 좋은 시간이 되길 바란다는 작별인사를 마지막으로 여행지에서 만나는 모든 사람들처럼 금세 헤어졌다. 그들을 뒤로하고 길을 가던 중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달라고 말하는 것을 깜빡한 것을 알아채고 급하게 그들이 있던 장소로 뛰어갔지만 이미 그곳엔 다른 관광객들뿐이었다. 함께 나눈 추억을 우리는 간직하지 못한다는 것이 아쉽지만 이 또한 여행의 매력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그렇게 베네치아 시가지 곳곳을 누비며 우리의 흔적을 남겼다. 특별히 한 것은 없지만 우리만의 가면축제를 열고 우리만의 방식으로 도시를 구경한 것 같아 내심 뿌듯한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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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네치아 가면 축제


마음으로 통하는 것


베네치아 구경을 짧게 마치고 우리는 잠시 부라노 섬을 다녀왔다. (부라노 섬에서의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다룰 예정이다.) 부라노 섬을 다녀오니 어느덧 거뭇거뭇해지기 시작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에서 해산물 요리를 먹지 않을 수 없었다. 한 유명한 식당에서 오징어 먹물 파스타, 봉골레 해초 파스타, 해산물 튀김 등을 먹었다. 사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인지, 맛 자체는 평범했다. 해산물 튀김은 대부분 오징어였고 매해 제사 때 먹는 오징어 튀김에 비하면 오히려 더 평범했다.


해가 전부 넘어갔고 베네치아에서 머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때문에 산 마르코 광장에서는 정말 잠시 동안만 머물 수 있었다. 시간이 늦어서 산 마르코 대성당도 바깥에서만 감상할 수 있었다.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산 마크로 광장에 가서는 금세 발길을 돌리고 싶어 졌다. 광장 가득 메운 비둘기 떼 때문이었다. 수많은 비둘기들이 광장 곳곳을 누비고 있었고 마치 자신들의 영역인 것 마냥 독차지하고 있었다. 관광객들이 뿌려주는 모이를 얼마나 먹었길래 살은 통통히 올라 있었고, 우리가 다가가도 날지를 못했다. 날아가기는커녕 새라는 본분을 잃어버린 채 뒤뚱뒤뚱 걸어 다녔다. 마음만 먹으면 포획할 수 있을 정도의 둔함이었다. 관광객들로부터 둘러싸인 환경으로 인해 변해버린 그들의 처지가 안타까우면서 그런 환경에 종속되어버린 그들의 우둔함에 할 말을 잃기도 했다. 어쨌든 비둘기만 실컷 구경한 체 산 마르코 광장을 떠났다.


베네치아에서 많은 관광객들이 곤돌라를 탄다. 많은 곳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은 아닐뿐더러 물의 도시와 운하로는 으뜸으로 꼽히는 베네치아에서 곤돌라를 타는 경험을 한다는 것은 꽤 가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우리는 남자 넷이서 낭만 있게 곤돌라를 타고 싶진 않았고 대신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에 수상택시를 타기로 했다. 전반적으로 따뜻한 이탈리아였지만 베네치아만큼은 상대적으로 북쪽 지역이며 바다를 끼고 있기 때문이지 해가 지니 찬 공기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차가워진 몸을 녹이기 위해 빠르게 수상택시에 몸을 실었다. 친구들 각자 자신만의 방식으로 베네치아의 마지막을 즐기기 위해 뿔뿔이 흩어졌다. 나도 잠시 해가 진 베네치아의 운하와 야경을 즐기고 내부 객실로 들어왔다. 자리가 없어 도착지까지 문 옆에 잠시 서 있었다.


내부 객실로 들어오기 위해서는 미닫이 문을 열어야 했는데 많은 승객들이 문을 열어둔 채로 들어왔다. 내외부의 온도차로 인해 새찬 바람이 문을 통해 들어왔다. 추위를 피해 들어온 객실이었지만 열린 문으로 인해 전혀 난방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일부 승객들은 들어온 후 문을 닫기도 했지만 금세 다른 손님이 들어오면서 문을 다시 열어놓았다. 바람이 매서웠지만 이처럼 승객들이 워낙 자주 드나들었기 때문에 나는 굳이 문을 닫을 생각을 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대각선 맞은편에 앉아 있는 한 이탈리아 할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찬바람이 들어올 때마다 인상을 찌푸리며 몸을 웅크리는 그녀의 모습을 보았다. 그녀도 이 상황이 매우 못 마땅한 듯했다. 하지만, 문과 거리가 다소 있었고 문을 닫아도 누군가 다시 열어놓은 채 가기 때문에 그냥 이 상황을 감내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추위에 떠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고만 있을 수는 없어서 이후부터는 손님들이 문을 열고 갈 때마다 내가 나서서 문을 닫았다.


그러던 중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아마 내 행동의 의도를 알아챘을 것이다. 몇 번 이런 상황이 반복되니 그녀가 나를 보며 슬며시 웃었다. 감사의 눈인사였다. 나 역시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이 넓은 공간에서 이방인과 생각을 같이 하는 현지인이 있다는 것이 재밌었다. 뿐만 아니라, 손님들이 문을 열고 다닐 때마다 나는 마음에 안 든다는 표정과 제스처를 그녀에게 보여주었다. 그녀 역시도 그 사람들을 욕하는 듯한 제스처로 답했다. 말은 안 통하지만 유쾌한 대화였다. 택시에서 내릴 때 무언가 인사를 하고 싶었다. 이탈리아어는 배운 적도 없었고 써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급하게 사전을 통해 작별 인사를 찾았다. 'Buono Giornata(좋은 저녁 시간 보내세요)' 간판으로 나가기 전 그녀에게 인사를 하니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짧은 인사로 답해주었다.


말은 통하지 않지만 마음으로 통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직접 경험한 즐거운 기억이다. 뿐만 아니라, 그녀가 나에게 보여주고 들려준 감사의 인사도 감명 깊었다. 베네치아에서의 마지막 기억이 더 소중해지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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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마르코 대성당과 베네치아의 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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