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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6. 2021

9. 편지 쓰기

때론 한마디 말보다 소중한

 최근엔 편지를 쓸 일이 많았다. 친구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썼고, 졸업 후 만나기 힘들어질 인연들을 위해서도 썼다. 대충 세어보면 꼬박 10통이 넘게 편지를 쓴 것 같다. 장황한 글보다 한 마디 말이 낫다지만, 받는 이를 위해 한 글자씩 눌러쓴 글의 소중함은 결코 무시할 수 없다.


 사실 편지를 쓰는 일은 꽤나 미련한 일이다. 우리는 클릭 한 번이면 문자를 보내는 것은 물론 실시간으로 얼굴을 보며 대화를 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시대에 굳이 손으로 글자를 쓰고 전해야 하는 편지는 번거롭기도, 귀찮기도 한 일이 맞다. 하지만 그 미련함이야말로 편지의 매력이 아닐까.


 문구점에 가서 편지지와 봉투를 고르고, 굵기가 적당한 펜을 골라 준비하기. 편지에 쓸 말을 생각하고, 글자가 삐뚤어지지 않게 신경을 쓰며 천천히 옮겨 쓰기. 글자를 잘못 쓰면 자국이 남지 않게 조심히 수정테이프로 수정하기. 편지지를 접어 준비한 봉투에 담고, 필요에 따라 직접 전하거나 우체국에서 편지를 부치기.


 편지 한 통엔 이 모든 것이 담겨있다. 쓰는 이가 받는 사람을 생각하며 기꺼이 자신의 시간을 들인 흔적이 오롯이 남아있다.  또한 그 번거로움을 감수하더라도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 라는 편지의 의도는 쉽게 지나칠 수 없는 감동을 전해준다.


 그래서인지, 매사에 쉽게 감동받는 나는 종종 편지에 매료된다. 기회가 될 때마다 친구들에게 편지를 쓰고, 졸업식 같은 큰 이별이 오면 말을 잘 섞어보지 못한 친구에게도 용기를 내 편지를 건넨다. 내가 편지 한 장을 마주할 때마다 얻는 감동과 여운을 조금이라도 느끼길 바라며 진심으로 받는 사람의 행복을 담아 글을 써낸다. 그렇게 수많은 글들을 다른 사람의 품에 넘기다 누군가로부터 편지를 받기라도 하면, 이제까지의 수고로움을 잊고 그 소중함을 만끽하곤 한다.


 아무리 작은 쪽지라도 쉬이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니며 그 소중함이 필요할 때마다 다시 꺼내 곱씹는다. 예상치 못한 사람에게서 받은 한 통의 편지로 굵은 눈물을 뚝뚝 흘리기도 한다. 시간이 흘러 닳아버린 낡은 편지들은 투명한 파일에 한가득 꼽아 책장에 보관한다. 그렇게 쌓인 편지 중에는 초등학교 때 받은 이래로 무려 6년을 나와 함께한 편지도 있다.


 이쯤 되면 그냥 편지에 너무 집착하는 사람 같이 보이겠지만, 내게도 다 이유가 있다. 일부로 시간을 들여 글을 써줬다는 점도 감동이지만, 나와 시간을 보내며 나는 미처 기억하지 못했던 어느 순간을 기록해 나눠줬다는 사실이 너무나 소중해 차마 버릴 수가 없다. 다른 사람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건네는 것이 얼마나 용기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나는 앞으로도 그 기록들을 계속 보관할 생각이다.


 너무 쉽게 연락하고 소식을 알 수 있는 요즘, 우리는 가끔 곁에 있는 이들의 소중함을 잊는다. 언제까지나 함께할 거라고 쉽게 믿고 상대에게 소홀해지기도 한다. 또 얼굴을 맞대며 만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드는 탓에, 가끔은 짧은 메신저 몇 마디로 서로를 기억하게 된다. 정보화 시대와 코로나 시국의 교차로에 서게 된 현대인이 마주한 일종의 비극인 셈이다. 그런 지금일수록 우리는 조금 더 미련해져야 하지 않을까.


 너무 빠르고 건조하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느리지만 따뜻한 편지 한 통이 관계의 여유가 되길. 혼자로도 힘겨운 삶에서 조금은 미련하고 귀찮아질 용기를 내는 모든 이들에게 응원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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