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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5. 2021

8. 졸업하다

낯선 끝이자 익숙한 시작

 2021년 2월 5일. 오늘은 내 고등학교 졸업식이다. 6년과 3년 단위로 겪어온 졸업식이지만 오늘은 특별히, 예전보다 더욱 많은 것들과 작별해야 하는 끝이라는 점에서 유독 낯선 날이다.


 졸업을 위해 다시 모인 친구들은 벌써 저마다의 색으로 물들어 있었다. 알록달록한 머리 색뿐만 아니라 한 사람이 내뿜는 존재감이 모두 달라진 듯했다. 예전과 같이 똑같은 교복을 입고 똑같은 책상에 앉아있었음에도 한 사람을 찾기 위해선 이곳저곳을 낯설게 두리번거려야 했다. 오늘이 지나면 각자가 선택한 삶을 향해 흩어질 것이라는 걸 암시하듯이, 짧은 겨울 동안 친구들은 다양하게 움터 있었다.


 코로나로 인해 강당을 포기하고 교실에 모여 앉아 진행한 졸업식은 여전히 조금은 슬프고 조금은 지루했다. 담임단을 맡아주신 선생님들의 목소리 편지라던가, 3년간 모은 추억의 사진들이 지나가는 순간에는 잠시 눈시울이 붉어졌지만, 교장 선생님의 훈화가 이어질 때쯤에는 다시 하얗게 식곤 했다. 꼬박 1시간 동안 방송부가 준비한 영상을 시청하고 마지막으로 반 아이들과 한바탕 인사를 하자 졸업식이 끝이 났다. 두 달간 떨어져서 겨울을 났던 우리는 약 2시간 만에 이별을 끝냈다.


 물론 완전한 끝은 아니었다. 공식적인 수순은 끝났지만, 솔직히 그때부터가 시작이었다. 필름 카메라를 챙겨 온 친구들, 한아름 꽃다발을 들고 온 친구들. 학교에서의 마지막을 사진으로 남기려는 학생들로 학교 주변이 가득 찼다. 운동장, 정원, 무지개색이 칠해진 계단 등.. 수많은 포토존을 배경으로 학생들이 모였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언니가 직접 만들어준 꽃다발을 쥐고, 무겁지만 소중한 졸업 앨범을 들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브이 포즈를 취했다. 즐거운 일이었지만, 짐을 들고 불편한 교복을 입은 채로 돌아다니는 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었다. 언젠가 2시간을 꼬박 걸었던 날보다 그 40분가량의 시간이 훨씬 피곤했다.


 이리저리 치이며 사진을 찍다가 문득 외로워질 즈음, 나는 친한 선생님께 급히 마지막 편지를 전해드리고 학교를 빠져나왔다. 그리곤 설렘에 가득 차 올라왔던 아침의 등굣길을 천천히 걸어 내려갔다. 교문을 나오고 아이들의 목소리조차 잘 들리지 않는 정류장에 도착했을 때, 비로소 나는 무언가 이별한 기분이었다. 친구들과, 선생님과, 학교와, 그 모든 것과 함께했던 고등학생의 나와.


 버스를 타고 집에 도착하니 비로소 몸에 힘이 풀렸다. 오늘을 위해 4시까지 편지를 쓴 어젯밤 때문인지, 오랜만에 너무 많은 사람들과 소통해서인지, 그냥 짐이 많고 옷이 불편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정말 기운이 남아나지 않았다. 결국 졸업식을 기념하며 언니와 단 둘이 배달 짜장면을 시켜먹고, 배가 꺼지기도 전에 단잠에 들었다.


 3시간을 내리 자고 나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미적미적 일어나 졸업장과 앨범을 정리하고, 몇몇 친구들에게서 받은 편지를 읽었다. 울었다. 예상치 못한 친구에게서 받은 말이 너무 따듯해서, 함께 시간을 더 보내지 못했던 게 아쉬워서, 같은 시간을 보냈음에도 나에 대해 더욱 많은 것을 기억해준 것이 고마워서, 정말 많이도 울었다. 고등학교의 끝을 가장 행복하게 빛내준 글이었다.


 특히 많은 것과 작별을 나눈 날이었다. 동시에 여느 때와 같이 새롭게 시작하는 날이기도 했다. 시간의 흐름에 갈피를 꼽고 언젠가 찾아오고 싶을 만한 오늘은 졸업식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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