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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4. 2021

7. 삶을 바라보는 눈

가끔은 그 시야를 빌리고 싶다

 브런치에 본격적으로 글을 올리기 전에, 나는 여러 문학 공모전에 글을 냈었다. 수능이 끝난 후 시험을 망쳤다는 허탈감과 대학에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당장 얻을 수 있는 성취감이 필요했다. 그래서 하루 종일 공모전 사이트를 뒤지며 해볼 법한 공모전을 찾았고, 하나를 선택하면 그 글이 끝나기까지 굉장히 히스테릭한 나날을 보냈다. 물론 글에 삶을 투영하고 세상을 바라보는 고뇌를 담는 숭고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내면적 결핍에 찌들어있던 당시의 내게 성찰과 고민은 능력 밖의 일이었다. 그저 정해진 주제에 따라 형식에 맞게 활자를 욱여넣었다.


 어느새 정신을 차렸을 즈음엔 1개의 대회와 4개의 공모전에 글을 보낸 뒤였다. 입시가 끝났다는 안도감 덕분인지, 몇 차례의 경험으로 성취에 대한 강박이 무뎌져서인지 공모전에 대한 집착은 많이 가라앉았다. 대신, '좋은 글'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마음속에 불거졌다. 주제에 맞게 글을 쓰고 보내는 과정은 기계적이었지만 오히려 내가 왜 글을 쓰고 있는지에 관한 생각을 거듭하게 만들었다. 목적도 의미도 없이 글을 쓸 바에야 좀 더 노력해서 사람들에게 감명을 주는 글을 써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노력을 했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뒤적이며 어떻게 하면 흥미로운 서사를 쓸 수 있는지, 감명 깊은 문장을 만들 수 있는지를 찾아봤다. 온갖 글쓰기 비법서에서 '매력적인 등장인물 만드는 법', '다채로운 표현 만드는 법' 등의 챕터를 살폈고, '날씨가 좋네요'라는 문장을 다른 말로 바꾸며 표현 연습을 하라는 대목을 보고서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공책을 펼쳤다. 지금 돌아보면 차라리 그 시간에 좋아하는 작가의 글 한 줄을 더 읽는 게 나았을 것 같다.


 그 허상 같은 노력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끝났다. 어떤 의미와 내용을 담을지 고민하지 않고 감명 깊은 표현 방법을 알아내려던 어리석은 시도는 조금의 추진력도 얻지 못했다.


  원점으로 돌아온 나는 다시 공모전 사이트를 돌았다. 다만 이전과는 다르게 아무 의욕이 없었다. 집착이라는 이름의 강박으로 열정을 대신했던 예전만도 못한 상태였다. 그렇게 정처 없이 모니터를 훑어내리다, 우연히 한 공모전을 발견했다. 간단하게 응모 부문과 관련 내용만을 열거한 심심한 페이지를 포스터 삼아 공모를 진행하는 공모전이었다. 뭘까 하는 호기심에 사이트 링크를 눌렀을 때 내가 발견한 것은 수많은 역대 수상자들의 내역과 심사평들이었다.


  작은 글자에 좁은 자간. 충격적인 가독성보다 더 놀라웠던 것은 수상자들의 소감 내용이었다. 문체, 표현, 심지어는  첫 문장을 읽었을 때 느껴지는 분위기조차 어느 하나 이전에 내가 읽어왔던 글들과 비슷한 게 없었다. 자신의 의미를 담아 오랫동안 문장을 쓰고 고민해온 사람들 특유의 고유함이, 정말 새롭다 못해 조금 억울할 정도였다. 그들이나 나나 모두 태어나서 처음 살아보는 인생을 그들은 도대체 어떻게 걸었길래 그런 생각을 하고 그런 글을 썼을까. 전 세계의 모든 책을 뒤져도 똑같은 것을 찾을 수 없을 그 표현들은 삶의 어느 단면에서 도려낸 걸까.


 만감이 교차하다 순간 한 생각이 굳었다. 우리가 동시에 살아가고 있는 삶을 보는 그들의 시야는 어떨까. 삶과 죽음에 대해 고민하고, 사소한 일상 속에서 그 의미와 모순, 갈등을 바라보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만일 그 시야를 빌릴 수만 있다면 똑같아 보이는 나의 매일도 새로운 자극으로 가득 차지 않을까.


 놀라움과 부러움, 끝내는 욕심까지 뒤섞인 감상을 마치고 공모전 사이트를 나왔다. 공모전의 목적에 걸맞게 글을 짜내는 나로서는 결코 다가서지 못할 성전을 마주한 기분이었다. 약간의 처참한 심경과 함께 작은 결심을 했다. 당분간은 이 공모전 사이트에 발을 들이지 않겠다고. 대회를 위한 글이 아닌, 내 글을 먼저 써보겠노라고.


***


 그 뒤 브런치를 시작하고 일상을 쓰기 시작한 지금까지도 종종 작가들의 눈을 빌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그저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가 아닌, 삶을 살아가는 태도에 있어 그 시야의 내용을 따오고 싶다. 무던해 보이는 이 세상이 실은 경이로운 곳임을 짚어내는 모든 이들에게 약간의 경외감과 커다란 부러움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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