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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2. 2021

5. 글쓰기에 적합한 삶

간절히 바라지만 결국엔 내가 만들어야 하는

 하루 한 편은 글을 쓰기로 목표를 정한 뒤로, 아직까지는 매일 저녁 착실하게 노트북을 켜는 나는 요즘 자주 한숨을 쉰다. 써놓은 글들을 검토하고 또 새로운 내용을 적어나가려 흰 창을 띄우면 오늘은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하나, 하는 두려움이 엄습한다. 주춤거리며 몇 자를 적다 결국 고개를 돌리면 책상 위에 널브러진 책들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네까짓게 무슨 수필이야. 매일 똑같은 하루만 굴리고 있으면서'


 그러곤 아픈 곳을 찌른다. 누가 봐도 파란만장하고 특별한 삶을 살고 있는 듯 보이는 누군가의 수필집이. 나도 매일 소재거리가 넘치는, 말 그대로 글로 쓰기 좋은 인생을 살고 있다면 너같이 멋진 책을 써낼 수 있다고 쏘아붙이고 싶지만, 나는 아무 말도 할 수 없다. 사실 나도 매일같이 반복되는 하루에 누구보다 매너리즘을 느끼고 있으니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외출을 자제하다 보니 어느새 나의 일상은 '나'만의 하루가 되어가고 있다. 가장 많이 마주하는 얼굴은 자주 보는 유튜버의 얼굴이고, 귓가에는 배경음악으로 틀어놓은 1시간짜리 플레이리스트만 종일 무료하게 울려 퍼진다. 애틋할 틈 없이 마주하는 가족들과는 별 대화 없이 각자의 시간을 보낸다. 하루 종일 인스타그램과 유튜브, 넷플릭스를 오가며 볼거리가 있는지 두리번거리는 스스로를 보면, 거실에서 어항 속을 유유히 헤엄치는 금붕어보다 못한 하루를 보내는 기분이 든다. 그런 내가, 수필을 쓴다는 사실은 가끔 스스로도 자신감을 가질 수 없을 만큼 황당해 보인다.


 하지만 어쩌랴. 친구들과 만나 진탕 놀기로 약속을 잡을 수도, 홀로 먼 타국에 여행을 갈 계획을 세울 수도 없는 상황인데. 심지어는 맑은 공기를 마시기 위해 산책을 나가도 마스크를 끼고 숨을 들이쉬어야 하는데 내 하루에 꼭 타인이 있기를 바라는 것은 지나친 욕심일 거다. 그리고 타인이 사라지자 공허해진, 내실이 부족한 일상을 만든 것이 나라는 사실을 모른 체하고 다른 누군가를 탓할 만큼 아직 난 그리 뻔뻔하지 못하다.


 삶을 건설하는데 외부의 요인은 분명 크게 작용하지만, 결국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스스로가 결정해야 한다. 막연히 책으로 짓기 좋은 다이내믹한 인생을 바라는 나도, 정말 그런 인생을 갖기 위해선 매일같이 열심히 굴러야 한다. 매일매일 성실하게 하루를 관찰하고, 타인과 소통하고, 다른 사람은 상상하지 못한 기발한 행동을 실천으로 옮겨야 한다. 누군가가 의식하지 않고 오롯이 자신의 것으로 서서히 세워낸 삶을 급히 따라가기 위해선 그 정도의 노력은 기울이는 게 맞다. 그리고 나는 안다. 내가 그러지 못할 거라는 걸. 주로 뜨뜻미지근한 삶의 에너지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매일 불같이 열정적으로 삶을 그려내지는 못할 것이라는 걸.


 그러니 오늘도 뜨뜻미지근한 온도로, 싱겁게 돌아가는 하루를 기록한다. 누군가 화려하게 적어낸 글에도, SNS에 올라오는 친구들의 특별한 하루에도, 부지런하게 살아가는 친구들의 빛나는 일상에도 질투보다는 그러려니 한 마음을 보낸다. 필연적으로 늘어난 혼자만의 시간을 절호의 기회로 삼아, 어떤 글을 써야 할지 홀로 두려워하고 고민한다. 오늘 하루가 언제까지나 견고하게 나의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삶의 초석이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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