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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7. 2021

10. 관계에서의 이탈

끝일 수도, 시작일 수도 있는

 코로나 시국으로 인해 사람과의 만남의 뜸해진 요즘, 나의 관계는 종종 있는 연락과 가끔의 외출로 근근이 이어지고 있다. 함께 보내는 시간들로 꽃을 피웠던 관계에게 지금은 가히 혹한기라 불릴 수 있는 나날인 것이다. 이에 맞추어 유감스럽게도 내가 처한 몇몇 관계들은 이른 끝을 드러내고 있다. 물론 이것은 누군가의 잘못이라기보다는, 좋지 못한 우연이 가혹한 환경에서 차곡차곡 쌓인 결과라 보는 것이 맞다.


 원체 애정과 관심에 목말라 있는 사람인지라, 나는 거의 매번 인간관계에서 아쉬운 편을 맡는다. 계속해서 상대의 눈치를 보고, 조금이라도 불편한 일이 생기면 온종일 생각하며 골머리를 앓고, 내 일도 아닌 고민거리를 들어주며 함께 걱정하고 슬퍼한다. 정작 상대방은 문제를 해결하고 괜찮아질 무렵에 나 홀로 계속 걱정을 이어가다 나중에야 그 문제가 마무리되었다는 사실을 통보받은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자기 분수에 맞지 않게 관계에 힘을 쏟다 힘겨워하는 어리석은 사람의 푸념으로 보인다면, 정확히 봤다. 신뢰, 사랑, 우정.. 관계를 채우는 그 감정들에 너무 얽매인 나머지 나는 자주 내가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책임지려 들었다. 나를 갈아 넣는 것의 고됨보다도 '여전히' 상대방의 좋은 인연으로 남고 싶다는 마음이 앞섰다. 물론 이는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지치게 만들었지만, 고쳐지지 않는 고질병 같은 습관이었다.


 물론, 사람에게 무척이나 쉬워 보이는 나에게도 관계에서의 이별은 존재한다. 감정적으로 많이 지쳤거나, 모종의 이유로 소원해지거나, 오랜 시간이 흘렀거나. 다양한 이유 아래 수많은 사람들과의 인연이 지워진다. 관계의 종류와 형태는 워낙 다양하니 확신할 순 없지만, '더 이상 상대방이 생각나지 않을 때' 나는 관계의 끝자락에 도착했음을 깨닫는다.


 좋은 것을 봤을 때나 슬픈 일을 겪었을 때 연락할 생각이 들지 않고, 상대방에게 일이 생겨도 크게 관심이 가지 않는다. 이유 없이 종종 떠오르곤 했던 얼굴들이 일상에서 지워져 가고, 평소라면 속상했을 법한 일에도 마음이 동하지 않는다.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천천히, 내가 더 이상 이 관계에 있어 아쉽지 않다는 것이 피부로 다가온다. 더 이상 상대에 관해 아무런 생각을 하고 있지 않을 때, 나는 그 관계의 궤도에서 이탈한다.


 물론 관계에서의 이탈은 관계의 끝과는 다르다. 한쪽에서 오랜 시간을 들여 감정을 정리한 상황이라면 이를 이어가기 위해서 다른 쪽은 몇 배의 노력을 들여야 하겠지만, 대부분의 이탈은 관계의 일시적인 정지 상태와 같다. 특히 관계에 있어서 더 많이 힘을 쏟은 사람일수록 이 일시 정지는 중요한 감정적 방어 체계가 된다. 마음이 완전히 고갈되지 않도록 브레이크를 걸어주는 이 체계는 다만, 너무 오랫동안 지속되면 완전히 관계를 멈추어버린다.


 살면서 정말 귀하다 여겨지는 사람들이 있다. 우리는 종종 그들을 인연(因緣)이라 이름 붙여 그 만남의 귀중함 을 강조하곤 한다. 하지만 혼자가 길어진 우리들은 가끔 당연하다는 감각에 속아 인연을 등한시한다. 정말 소중한 관계라면, 놓지 않기 위한 노력을 잊지 말아야 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사람은, 어느새 관계에서 이탈해 떠나간 이들을 원망할 자격조차 없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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