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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08. 2021

11. 불합리한 불안

필요한 고민인지 쓸데없는 걱정인지

 새벽 2시 즈음, 이불에 몸을 뉘이고 눈을 붙이다 보면 머릿속에 온갖 생각들이 떠오른다.


아, 약간 기침 나는데 이거 코로나 아니겠지? 빨리 검사받고 확인서 받아놔야 하는데. 기숙사 등록금은 납부했나? 설마 착각해서 안 낸 채로 등록 취소되는 거 아니야? 올라가면 혼자 잘 살 수 있을까? 혼자 살다가 크게 아프면 어떡하지? 친구도 못 사귈 텐데 학교에는 적응할 수 있을까?


 정리되지 못한 생각들은 새벽의 부추김 아래 혼란의 도가니에 휩싸인다. 평소라면 쉽게 털어버릴 법한 생각들이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시간에 나의 머리는 낮 시간의 공상으로 지쳐있기 마련이라 이를 해결할 힘은 남아있지 않다. 결국 새벽 3-4시까지 계속되는 이 혼란은 몸의 피로가 눈꺼풀을 잡아 내린 후에야 강제적으로 종료된다.


 흔히들 새벽 감성이라 부르는 이 생각과 감정의 홍수에서, 나는 주로 불안이라는 파도에 휩쓸린다. 만일, 로 시작해 어쩌지, 로 끝나는 아주 막연한 걱정. 한 번 시작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져 처음에 내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잊게 만드는 이 메커니즘에 나는 유독 취약하다. 여기엔 내가 상상력이 과한 걱정형 인간이라는 것과, 불안이 기본적으로 '확신할 수 없음'에서 시작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걱정이 많은 사람과 불확실한 상황은 함께할수록 극단적인 시너지를 만들어내는 조합이니까.


 물론 모든 불안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적절한 불안은 무모한 선택을 조절하고 신중한 결정을 내릴 수 있게 도와준다. 이성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아는 사람들은 이 감각을 더욱 완성도 있는 결과를 만드는데 활용하기도 한다. 하지만 문제는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과 앞으로도 그런 완벽한 사람은 되지 못할 거라는 점이다.


 내게 있어 불안은 생각뿐만 아니라 행동까지, 내 모든 것을 멈추게 하는 제동 장치와 같다. 결과를 만들어내는 일원으로서의 효율을 떨어뜨리고 한 개인으로서 살아가는 삶의 질에 흠집을 낸다. 해야 할 일을 하지도 쉬지도 못한 채 보내는 하루의 허무감은 정신 건강과 신체적 기력을 동시에 좀먹는다. 나를 힘들게 만들면서 도움조차 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불안은 역경이나 고난 따위의 고상한 것과는 사뭇 거리가 있다.


 그래서 나는 요즘 불안에게 질문을 던진다. 그것이 내게 도움이 되는 고민인지 쓸데없는 걱정인지를 구별하는 일종의 검증 방법이다.


 "증거 있어?"


 누군가 이유 없이 나를 추궁할 때 버럭 내지를 법한 대사지만, 꽤나 효과가 좋다. 왜냐면 대부분의 불안에는 확실한 증거가 없기 때문이다. 내가 납득할 수 있는 명확한 이유가 있느냐고 묻는 이 질문은 무분별한 불안에 휩싸인 내 이성을 잠시 현실로 끌어낸다. 지금 나 자신에게 너무 불합리하게 굴고 있는 것은 아닌지, 너무 극단적인 가정을 현실처럼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등. 여러 기준 아래 불안을 뜯어보고 비로소 그 근원을 찾아내게 한다. 그리고 이는 대부분 아주 사소한, 일상에서의 실수나 걱정의 경험들이다.


 한바탕 불안을 뜯어보고 나면 비로소 부푼 걱정으로 가득 찼던 마음이 공허해진다. 불안이 얼마나 나를 가득 채웠었는지, 내 걱정이 얼마나 부질없었는지를 직면하게 된다. 나를 깨어있지도, 잠들지도 못하게 했던 것의 원인이 아주 보잘것없는 것이었다는 경험은 꽤 열 받지만 한편으론 불안정한 나를 원상으로 돌려놓는다. 그리고 이 열 받음의 과정을 몇 번 반복하고 나면 이유 없는 불안과 근거 있는 고민의 경계가 조금씩 뚜렷해진다. 나는 요즘 그 경계를 밟으며 아무 문제없는 하루와, 걱정이 많았던 어느 하루를 격리시키려 노력하고 있다. 아직까지는 이 경계에 머물러 있지만, 언젠가 불안에 지치지 않고 잠들 수 있는 밤이 오기를 바라본다.


 나는 아직도 자주 이유 없이 걱정하고, 불안해한다. 하지만 천천히 내 이유 없는 불안에 이름을 붙여 나갈 것이다. 더 이상 불합리하게 나 자신을 좀먹지 않도록, 앞으로 나아가야 할 순간에 황망히 멈춰있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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