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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Feb 10. 2021

12. 뭉뚱그리기

삶을 기억하는 형태

 내 글을 자주 보는 사람들은 눈치챘을지도 모르겠지만, 나는 글을 구체적으로 풀어내는 데 재주가 없다. 정확히는 '상황'을 세세하고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을 힘들어한다. 이것은 비단 글을 쓰는 상황뿐만 아니라 기억의 형태에서도 드러나는데, '저번 주에 친구에게서 인상적인 편지를 받았다'라는 기억은 있지만 편지를 받으며 주고받은 말이라던가 그때의 주변 상황은 잘 기억나지 않는 식이다.


 여기엔 내가 그리 기억력이 좋지 않다는 것도 한몫 하지만, 내가 상황을 주로 '감정'으로 기억한다는 것이 가장 큰 몫을 한다. 예를 들어 나는 지난 시간을 묘사할 때면, '행복했던'이나 '혼란스러웠던'과 같이 당시의 내 감정을 빌어 설명을 하곤 한다. 이로 인해 내 이야기를 듣거나 읽는 입장에서는 내 말들이 추상적이고 뭉뚱그려진 표현으로 다가오는 경우가 많다.


 구체적인 에피소드로 현실성을 강조하는 수필을 쓰는 입장에서, 확실히 단점으로 다가올 법한 특징이다. 확실히 뭇 수필들과는 달리, 내 글에는 마치 1인칭 주인공 시점의 소설처럼 시간과 감정이 혼재되어 '나'의 것이 되어버린 여러 과거들이 등장한다. 이 때문에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는 경험에 관해 서술할 때 나는 굉장히 조심스러워지는데, 자칫 사실을 곡해하여 편파적인 글을 쓰게 될까 두렵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타인과 관련된 과거에 대해 쓰는 경우, 높은 확률로 내 글에는 과하게 힘이 들어간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쯤 되면 작가의 입장에서라도 이 특징을 싫어하는 게 일반적이겠지만, 나는 아직까진 중립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우선 일상생활에서 이 특징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고, 가끔은 불편한 이 감정적 기억이 가져다주는 이점 또한 있기 때문이다.


 우선 불편한 기억을 빨리 잊을 수 있다. 크게 실수를 했다거나, 다른 사람들과 갈등이 생겨 스트레스를 받았다거나 등의 부정적인 기억은 초반에는 생생하게 각인될지 몰라도 조금 시간이 지나면 불편했던 '감각'으로 덮여간다. '정확한 정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속상했었지', '지금은 다 끝났지만, 그땐 정말 부끄러웠지'와 같은 형태로 말이다. 이는 이미 끝난 일로 인해 받는 스트레스를 줄임과 동시에 현재에는 그 감각을 느끼지 않는다는 상대적인 안도감을 느끼게 한다.


 반면에 행복한 기억은 더욱 오래 남는다. 복잡한 상황보다 그때 지배적으로 작용했던 행복감이 훨씬 기억하기도, 떠올리기도 쉽기 때문이다. '저저번 주 때 어떤 사람과 어떤 일을 함께해서 기분 좋았어'의 구조보다, '그때 나 진짜 행복했었는데, 좋은 일이 있었지'의 구조가 행복함이라는 감정이 직관적으로 다가오는 것처럼 말이다. (사실 감정으로 순간을 기억하는 게 이미 일상이 된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뜯어 설명하기는 힘들다.. 그저 이런 기억의 형태와 특징도 존재하는구나, 정도로 읽어주길 바란다.)


 여하튼 이런 점에서 나는 현재까지 삶을 기억하는 나의 방식에 크게 불만이 없다. 오랫동안 뭉뚱그려진 기억을 가지며 살아서일 수도 있지만, 이 또한 나를 만드는 요소겠거니 하는 마음가짐이 크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양성을 가지는 것처럼, 기억하는 형태 또한 서로 다른 개인들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받아들이는 거다. 굳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다면 누군가 지적할 거리도, 무조건 바꿔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질 거리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삶을 기억에 담아내는 형태에 정답은 없다. 주변의 풍경과 함께 자신을 담는 사람과 사람에게 줌을 당겨 화면 가득 표정을 담는 사람이 있는 것처럼, 다양한 방법이 존재할 뿐이다. 그러니 너무 신경 쓰지 말자. 어떤 모습이던 자신에게 소중한 순간을 잊지 않고 기억한다면 그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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