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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r 10. 2021

25. 마음이 일렁이다

취미는 감상 특기는 감동

 취미는 감상, 특기는 감동. 이제껏 잘한다 자부할 만큼 크게 터득한 것은 없지만 그나마 부담 없이 재주라 할 수 있는 것이라 하면 감동이 아닐까. 학업에 도움이 된다거나 쓸모가 많은 유용한 재주는 아니지만 내 삶에 꽤나 커다란 존재감을 내세우는 것. 책을 보던, 노래를 듣던 영화를 보던 한 번은 이상 감동을 받는 쉬운 사람으로서 그 미묘한 마음의 일렁임에 관해 몇 자 적어보고자 한다.


 감동이 특기라지만, 솔직히 감동이 무엇이냐 물으면 할 말이 없다. 그런 질문을 보면 그걸 규정지어 본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은 의구심과 함께 끝없는 고민에 빠지게 된다. 감동이라는 건 뭘까. 크게 느끼어 마음이 움직인다는 딱딱한 뜻에 비하면 한없이 유하게 하루를 감아내는, 그 뜨뜻하고 울컥한 것을 뭐라 설명해야 할까. 마음의 움직임이라는 말은 거창해 보이지만 작은 음절 하나에도 크게 일렁이는 내 마음을 생각하면 한없이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그럼에도 절대 가볍지는 않으니, 도통 이걸 설명할 수 있는 한 단어나 문장을 꼽을 수 있을지에는 자신이 없다.


 다만 내 개인적인 경험을 들어보자면, 감동을 받는다 느끼는 때에는 한결같은 증후가 있었다. 오랫동안 물 위에 서 있다 뭍으로 돌아온 것처럼 마음이 요동치듯 울렁이는 감각. 내가 그것에 감하지 않았다고 결코 말할 수 없도록 속을 쥐어짜는 기분. 평소엔 잘 느껴지지도 않는 것이 한순간에 머리부터 발끝까지를 휘어잡는 느낌이 들 때면, 눈으로 본 적도 없는 마음이라는 것이 존재함을 실감하곤 했다.


 그리고 그 순간이 유독 내게 자주 찾아온다는 것이 오늘 부제의 전부다. 한 단면으로, 얼마 지나지 않은 올해 느낀 감동의 순간을 다 꼽으려면 손발을 헤아려도 모자랄 것이다. 책을 읽다가 단어나 표현, 때로는 문장 하나에 빠져 갈피를 꽂아놓은 것에도 성에 차지 않아 몇 번이고 멈춰 곱씹었던 날. 친구에게 받은 편지 속 문단이 잊히지 않아서 차마 놔두지 못하고 고이 챙긴 채 기숙사에 도착했던 날. 한 장면이 유독 떠올라 몇 초도 채 되지 않는 그 장면을 다시 보려 몇 시간 짜리 영화를 돌려봤던 날. 우연히 들은 노래의 한 소절이 특히 가슴을 후벼 파서 밥을 먹을 때도, 운동을 할 때도 계속해서 같은 노래를 틀어놨던 날.


 그 무언가가 차마 잊기 싫어 몸부림쳤던 단편의 기억들. 한편으론 미련으로 비치는 이 날들에 나는 굳이 감동이라는 이름을 붙여놓았다. 별별 사소한 것에도 마음이 부풀어 하루를 부유하는 이런 모습이 혹자에게는 시간낭비로 비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언제나 내가 습관처럼 덧붙이듯, 나는 상관하지 않을 것이다. 재미없는 의무와 피곤한 책임 사이에서 무채색의 하루를 살다가 마주하는 모처럼의 부유감은 꽤나 반가운 것이라는 변명도 그들의 귀에는 닿지 않을 테니까.


***


 마음의 일렁거림. 결국 내가 오류 없이 설명할 수 있는 감동의 형태는 여기까지가 아닐까. 원인과 방식을 따져 묻기엔 너무 개인적인 영역으로 넘어가 버릴 것 같아 두렵다. 누구나 각각의 마음과 감정을 지녔기에 서로 다른 마음의 움직임을 느낄 수밖에 없는 법이니까. 그중에 같은 곳에서 감동을 받고 울고 웃을 수 있는 사람을 만난다는 건 얼마나 큰 행운인지. 같은 일렁임을 품고 살아갈 사람이 있다는 것은 얼마나 큰 격려인지.


 마지막으로 가장 최근에 내 마음을 일렁이게 만든 노래의 몇 구절을 빌려 글을 줄이겠다.


 '넝마 같은 당신을 붙입니다. 떨어진 마음도 줍습니다'

 '네가 아프고 힘든 사람이래도 나는 곁에 앉아라'              -정우, <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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