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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Apr 10. 2021

34. 늘봄

매일 변하지만 쉬이 변하지 않는 이야기

 이틀에 한 번 글을 올리기로 약속한 작가 늘봄에게는 고민이 있다. 몇 시간 동안 노트북 앞을 지키고 앉아 보아도 쓸 만한 문장이 생각나지 않기 때문이다. 이 상황의 원인은 그의 고질적인 문제인 낮은 집중력의 탓이기도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소재가 고갈되었다는 데 있다. 그가 서울에서 생활한 지 벌써 한 달 하고도 2주가 훌쩍 넘었지만, 그는 대개 지난 어제와 다를 바 없는 오늘을 살고 있다.


 똑같은 시간에 일어나 똑같은 시간에 배식을 받고 식사가 끝난 뒤에는 다시 6평 남짓한 방에 올라와 시간을 보낸다. 그가 듣는 8개의 서로 다른 강의가 안겨준 수많은 과제와 시험 탓에 4월은 그에게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달이다. 아니, 솔직히 정말 과제와 시험 때문에 바쁜지는 모르겠다. 산처럼 쌓인 과제를 보고 한숨을 쉬며 한탄하는 데만에도 꽤 시간을 들이는 것 같다. 하루 중 노트북 앞에 앉아 자판을 두드리는 데 가장 많은 시간을 쓰고, 그렇지 않은 시간에는 침대에 누워 다른 사람들의 일상에 좋아요를 누르는 무료한 삶을 살고 있다. 앉거나 눕지 않는 유일한 시간은 지하의 운동 센터에서 1시간가량 운동을 할 때지만, 요즈음은 그마저도 버거워하는 중이다.


 이게 그 하루의 전부다. 격일에 한 편 올리는 글이 버겁다며 투정을 부릴만한 거창한 하루는 아님을 스스로도 잘 알고 있으나, 오히려 너무나 초라한 하루가 이어지고 있기에 그는 쉽게 글을 쓸 수 없다. 글감이 될 사건도, 생각도 떠오르지 않을 만큼 감각적으로 고갈된 일상. 그 일상에 가장 불만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쥐고 있는 일들을 놓고 어딘가로 나설 용기가 나지 않아 그 가운데 주저앉아있는 것이 그의 지금이다.


 사실 그도 알고 있다. 그의 일상이 매일 같지는 않다는 것을. 같은 시간에 일어난 다곤 하지만 일찍 눈이 떠지는 날도, 몇 분 늦잠을 잔 날도 있었다. 그가 멍하니 틀어놓는 유튜브의 영상들도 매일매일 내용이 달라졌다. 어느 날은 뮤지컬 영상에 빠져 하루 종일을 그 여운에 젖어있기도 했고, 또 다른 날은 맛있는 음식을 잔뜩 차려놓고 먹는 먹방에 빠져 이른 치팅데이를 가질까 고민하기도 했다. 서넛이서 즐겁게 놀러 다니는 친구들의 SNS에 좋아요를 누르며 우울에 젖다가도 이내 좋아하는 작가의 만화를 보며 행복하게 웃곤 했다. 과제가 끝나지 않는다며 푸념하긴 하지만 결코 포기하지 않은 채 이를 악물고 제출일을 지키고 있고, 한 것이 없다며 자책하지만 사실 그의 공책에는 매일매일 달라지는 하루 계획이 자리를 채우고 있다. 그가 공허하다 평가하는 일상은 꽤나 다채로운 색으로 물들어있음을, 그는 잘 알고 있다.


 그래, 다만 그가 글을 쓰지 못하는 이유는 단지 지쳤기 때문이다. 달라지는 하루에서 의미 있는 고찰을 뽑아내기에는, 순간순간 떠오르는 상상들을 놓치지 않고 잡아내기에는 그가 자신의 궁지에 몰려있다는 것이 문제가 되었다. 자신에게 주어진 것 그 무엇 하나도 놓기 두려워하는 그는 최근 매일 새롭게 들이닥치는 오늘을 살아내는 데 급급했다. 한 순간도 긴장을 놓을 수 없었다. 오늘이 끝나면 내일의 과제가 남아있었고, 나중을 기약하기도 힘들 정도로 그에게 주어진 책임의 날들은 꽤나 많이 남아있었다. 며칠간은 그에 대한 푸념을 늘어놓으며 글을 짓곤 했으나 이내 한계가 찾아왔다. 결국 어느 날이 되자 그는 삶에 대한 어떤 생각도 늘어놓을 수 없었다. 그만한 생각을 해 본 지 오래되었기 때문이요, 고찰을 시작할 가닥조차 잡을 엄두가 나지 않아서였다.


 결국 그는 그 초라한 실정을 털어놓았다. 이제껏 아무에게도 털어놓지 않은 가장 사소하고 솔직한 말로 또 하루의 글을 빚었다. 어렵게 털어놓아야 했던 그 부끄러운 고백이 부디 마지막이길 바라며, 그날의 글을 맺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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