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해! 새끼손가락 걸어!'
뭣만 하면 약속을 하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자고 약속, 하교하고 같이 가자고 약속, 체육 시간에 같은 조를 하자고 약속. 지금 생각하면 별 거 아닌 것들에 목숨이라도 걸 것처럼 맹세를 하고 도장을 찍던 어린 날이 있었다. 물론 지금은 아니다. 여타 할 기록 없이 말로 하는 약속과 맹세는 종잇장보다 가볍다는 염세적인 사람이 되어 있다. 또한 입에 침도 바르지 않고 지키지 못할 약속을 해내는 뻔뻔한 배짱을 가지게 됐다. 약속 하나에 울고 웃던 그때의 내가 지금의 나를 본다면, 나쁜 거짓말쟁이라며 분노에 찬 손가락질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쩔 수 없나 보다. 그때로부터 약 10여 년을 살면서 약속이라는 게 생각보다 부질없는 것이라는 걸 알아버렸다. 물론 서식으로 남기는 계약이라던가 금전적인 채무 관계 등의 무거운 약속이 아니라 일상에서의 그 작은 약속들에 대한 얘기다. 꼭 한 번 놀러 가자, 밥 한 번 먹자, 시험만 끝나면 한 번 만나자. 인사치레 같은 그 말들에 조금의 애정을 담아 '약속해'라는 형식적인 답을 한지는 꽤 된 것 같다. 사실 정말 그 말이 이루어지는 경우는 10번에 1번이 될까 말까 하지만, 진심을 담는다는 명목 아래 약속은 계속 내게 이용당하고 있다.
변명하자면, 그 의도는 나쁜 게 아니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모든 약속에 진심을 담는다. 다만 대개 그것이 시간에 따라 잊힐 것임을 너무 잘 알고 있을 뿐이다. 어쩔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닿지 못하는 사람들이 늘어감에 따라 뼛속 깊이 실감하는 사실이다. 한때 곁에서 함께했던 사람들이 얼굴조차 보지 못하는 타지에 흩어져 있다는 것. 물론 각자가 너무 잘 살고 있다는 것을 알지만, 그래도 아쉬운 날에는 약속을 건네며 예의 그 말이 가져다주는 위안을 삼킨다.
그리고 그 위안과 안도를 맛봤기에 나 또한 타인에게 그런 무던한 약속을 건넨다. 주로 나를 사랑하는, 또는 걱정하는 사람들에게 보내기 위해 그 말들을 모아두곤 한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기분에 한참을 주저앉아 있으면서도 가끔 오는 안부 전화에는 예쁜 말을 모아 가지런히 약속을 빚는다. 너무 행복해.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 앞으로 더 잘 살 거야. 시간 괜찮으니까, 언제 한 번 내려갈게. 그 작은 연락 안에 전하지 못한 근심과 걱정이 담긴 걸 알기에 그들이 듣고 싶어 할 만한 행복을 담아 마침표를 찍는다. 물론 그들을 위한 말은 아니다. 온전히 내 마음이 편하기 위해 그들을 위한 위안을 담아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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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혹시 몰라 말해두는데, 만일 당신이 나와 같이 여러 번 그런 약속들을 건넸다면 언젠가 한 번쯤 당신을 위해 그 약속들을 지켜야 한다. 형식적인 약속이라는 걸 스스로가 잘 알고 있지만, 내가 알고 있기에 반드시 언젠가는 그 약속을 이행해야 한다. 인사치레 같은 말들이 그 순간만을 무마할 수 있듯 무던한 약속들도 그렇다. 말없이 흩어진 수많은 맹세와 약속이 쌓이는 곳은 스스로의 마음 속이다. 순간의 그리움과 아쉬움을 놓치기 싫어 말을 남겼다면 언젠가 그 감정들을 돌려받을 순간이 온다.
가끔 내가 남긴 약속들의 무게가 느껴진다. 날아가 사라진 것을 두 눈으로 확인한 줄 알았는데 어떻게든 앙금으로 남아 마음에 엉겨 붙었나 보다. 언젠가 이것들이 한 번에 무너져 나를 덮치지는 않을까 걱정은 되지만 계속되는 약속을 멈출 수가 없다. 하루살이 같은 발상일지는 모르겠지만 오늘 하루 나의 안위와 내 사람들의 위안이 아직은 너무 소중하다. 언젠가 이 값을 치르겠거니 싶다. 그리움이 사무치는 밤들이, 소외감에 뒤척이는 새벽의 형태로 찾아올 대가가 눈에 선하다.
아아, 감당하기 힘들 정도의 힒듬으로 갚아야 한다면 최대한 늦게 와 주길. 그때까지 한 번은 꼭 약속을 지킬 테니. 또 하나의 지키지 못할 약속을 되뇌며 오늘의 하루를 맺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