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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Apr 14. 2021

36. 말로 받는 위로

우연과 선의의 교차로에서

 요즈음 항상 언급했듯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긴 하지만, 어제는 좀 선을 넘었었다. 실시간 강의, 조별 과제, 개인 과제와 시험 준비... 어느 하나 원만히 굴러가는 게 없었다. 일 하나가 와장창 막을 내리면 다음 일이 거칠게 일상으로 쳐들어왔다. 그 일들이 너무 미우면서도, 그 일들을 제대로 끌어안지 못하는 내게 더 화가 났다. 하루가 끝나갈수록 마음이 편해지기는 커녕 내일의 또 다른 하루가 두려워 속이 쓰렸다. 이건 좀 심한 거 아닌가, 하는 생각이 온종일 머릿속을 빙빙 맴돌았다.


 그래서 SNS에 하소연을 했다.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숲길에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소리치듯, 오늘 하루가 왜 이렇게 힘든지 모르겠다며 볼멘소리를 했다. 가까운 사람들만 볼 수 있게 손수 설정을 걸어두고 하나 둘 힘듦을 써 내려가는 모습은 내가 보기에도 퍽 구차했다. 하지만 후회하진 않는다. 뭐 어쩌겠는가. 당장 힘들다고 털어놓을 수 있는 사람 하나 없는 곳에서 아무 말 없이 버티기엔 억울한 하루였다.


 그렇게 한바탕 속상함을 털어내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을 때, 여러 친구들에게서 안부 연락이 왔다. 걱정된다, 많이 힘들어 보인다, 우리 같이 힘내자, 바쁜 일 끝나면 한 번 보자. 서로 다른 각자의 자리에서 보낸 걱정과 격려의 말들이 마음속에 하나 둘 쌓였다. 비록 차가운 기계로밖에 전할 수 없는 마음들이었지만 내겐 충분히 따뜻하게 다가왔다.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를 나눌 수 없다는 사실이 별로 속상하지 않았을 정도로 반가운 말들이었다. 온종일 받은 스트레스에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지만 마음에 사붓이 쌓인 말들을 안고 비로소 잠들 수 있던 밤이었다.


 그리고 아침이 밝았다. 늘 그랬듯 같은 시간에 일어나 물을 마시고 핸드폰으로 시간을 확인했다. 서늘한 아침 공기에 몸을 떨며 정신을 차리려는데, 연락이 하나 와 있었다. 자주 연락을 하고 지내진 않았지만 종종 안부를 묻던 친구에게서 온 메시지였다. 힘든 하루를 보낸 것 같던데 힘을 내라는 짧은 내용과 박카스 기프티콘. 그걸 보자마자, 푹 자고 일어난 뒤의 둔한 감각에 찬물을 부은 듯 정신이 들었다. 어쩔 줄 모를 정도로 고마운 마음에 긴 답장을 써 보내고, 어제의 그 연락들을 하나 둘 다시 읽어보았다. 어제는 힘듦을 버티기 위해 급하게 말들을 삼켜 보냈다면 오늘은 굳은 땅에 비가 고이듯 그 말이 마음에 고였다. 힘들다고 하소연한 스스로가 조금 부끄러워질 만큼 따뜻한 격려의 말들이 다시금 마음에 들어왔다.


 수많은 우연과 당연하지 않은 선의가 얽혔던 교차점. 그 소중함에 달뜬 마음을 쥐고 살아낸 오늘 하루는 적당히 따뜻한 하루였다. 분명 오늘도 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어제만큼 속상하지도, 불행하지도 않았다. 바닥을 찍은 듯했던 감각을 딛고 올라온 이곳은 침체되어있던 이전보다 훨씬 안전해 보인다. 여기까지 닿을 수 있는데 도움이 되었던 말들, 잊고 싶지 않지만 언젠가는 기억에서 휘발되어버릴 소중한 것들, 에게 감사를 전한다.


 사람은 말로 위로를 받는다. 새삼스러운 말이지만 그걸 실감했을 때의 감각은 남다르다. 물론 항상 타인의 말로 구원받길 원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지만 한 번도 말을 통해 힘을 얻어본 적 없다는 것 또한 슬픈 일이다. 우리가 서로를 말로 위로하고, 위로받을 수 있을 만큼의 용기를 가질 수 있기를 바라며, 오늘의 글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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