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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y 08. 2021

43. 마음의 허기

그걸 외면하고 도착한 곳은

 그런 날이 있다. 하루 종일 입에 무언가를 물고 있는 날. 그런 날의 내 모습은 일관적이다. 손에선 군것질 거리가 떨어지지 않고 종일 먹어댄 탓에 맛도 느끼지 못할 만큼 배가 부르지만 계속 음식을 속으로 욱여넣는다. 결국 잠들기 전 더부룩한 속을 부여잡고 후회하지만, 먹으면서도 후회할 것을 알지만 그 순간엔 멈출 수가 없다. 그걸 멈출 수 있을 만큼의 마음 상태였다면 시작도 하지 않았을 행동이었다.


 기억하기로는 고등학생 때부터였다. 스트레스가 쌓이다 한계에 봉착했을 때 음식으로 손을 뻗은 게 말이다. 성적과 입시에 대한 압박감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남들과 나를 비교하고 순서를 매기는 일에 부당함을 느끼면서도, 침묵하며 그에 따르는 나 자신에 대한 혐오감이 더 컸다. 꿈이 가득한 친구처럼,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처럼, 스스로 잘하는 자식처럼 여겨지는 것을 포기하지 못하고 스스를 몰아세우는 나에게 환멸을 느꼈다. 그걸 털어놓을 곳도 없었을뿐더러 해결방법을 찾을 마음의 여유도 없던 시절이었다. 그래서인지, 평소 보상이라고 생각했던 음식에 무의식적으로 기대게 되었던 것 같다.


 달마다 모의고사가 끝나면 채점조차 하지 않은 시험지를 가방에 구겨놓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달고 짠 과자를 서너 개씩 고르고 평소엔 잘 먹지도 못하는 매운 라면을 골라 계산대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집에 도착하면 저녁도 먹지 않고 방에 틀어박혀 사 온 것들을 먹었다. 평소 먹는 것보다 몇 배는 짜고 단 것들을 욱여넣고 나면 우습게도 마음이 조금 누그러졌다. 평소라면 먹지 못했을 것들을 잔뜩 먹었다는 만족감과 예의 그 포만감이 감각을 지배했고,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 같은 건 뒷전으로 밀어둘 수 있었다. 딱하게도 그때의 나는 그 상태가 마음의 안정이라고 착각하곤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마음을 털어낼 수 있는 거 아니냐는 생각이 들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경우는 조금 다르다. 그때의 나는 음식에 의존하고 있었다. 먹는 것의 쾌감으로 심리적 압박을 잊으려 했고, 자제하는 것을 포기했을 때의 감각을 마음의 후련함이라고 착각했다.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폭식의 형태로 음식에게 기댔던 것, 그것으로 실질적인 심리적 문제의 해결을 회피했다는 것이 문제였다.


 그럼 지금은 어떨까. 사실 예전의 나를 안타까워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다. 먹는 것에 기대는 것이 문제가 된다는 걸 알면서도 종종 음식을 입에 밀어 넣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기숙사에 입주한 뒤로 식이조절과 운동으로 체중을 감량한 탓에 특정 음식들에 대한 충동이 있기도 하고, 내 식습관에 관여할 타인이 없기 때문에 가끔은 정말 극단으로 치달을 때가 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사람에게 받은 스트레스, 뜻대로 되지 않는 계획과 쌓여가는 과제와 시험들을 웃고 넘길 수 없는 날. 당장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어 털어놓을 수도 없는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들이 버거워지는 그런 날에, 나는 다시 음식에 손을 뻗는다.


  물론 안다. 내가 마주한 허기는 당장 입에 집어넣고 있는 초콜릿과 감자칩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차원의 문제라는 걸. 사실 너무 잘 알아서 문제다. 먹는 것으로 문제를 회피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한 이후로, 이젠 먹는 순간의 쾌감으로도 스트레스를 잊을 수 없다. 사실은 회피였다고 해도 나에겐 도피였는데, 한 순간에 도피처가 증발해버렸다.


 나는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 사실 정답은 알고 있다. 다른 건강한 스트레스 해소법을 찾기. 마음에 과부하가 왔을 때 해결할 수 있는 자신만의 방법 찾기. 음식에 집착하지 않고 내가 처한 문제 상황을 객관적으로 분석하기. 그래, 안다. 여기에 기어이 '하지만'이라던가 '그런데' 따위의 변명을 붙이고 싶어 하는 나 자신도 실은 너무 잘 알고 있다. 그런데, 정말 그럼에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답지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가 풀 때는 풀리지 않는 문제 같은, 골치 아픈 난제와 마주한 느낌이다.


***


 업로드를 위해 글을 읽어 보니 너무 우울하고 가망 없는 내용을 써버린 기분이 들어 마음이 찜찜하다. 누구나 마음의 허기를 겪고 그걸 달래기 위해 음식을 찾기도 한다, 식의 내용을 쓸 생각이었는데 내 경험과 현재를 담으려 하다 보니 감정이 격해졌다. 저 글이 쓰인 어제에도 음식으로 감정을 때웠어서 더 그런 듯하다. 어제의 서러운 고민에 위로를 얹자면 오늘의 나는 그저 나를 탓하지 않기로 다시 마음먹었다. 잘못된 도피처를 찾았던 나를 탓하지도 않을 것이고, 스트레스를 이겨내지 못한 나를 탓하지도 않을 것이다. 가끔은 또 폭식을 하고 그 뒤에는 후회를 하더라도 그다음에는 지난 일을 어쩌겠냐며 넘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당장 마음의 허기를 채울 줄 모르고 잘못된 길로 가버리는 이전의 나를 보더라도 이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와 괜찮다고 다독이는 현재의 내가 되고 싶다.


+

 여러모로 피곤한 글이었다. 주제를 다루려다 되려 주제에 잠식되어버렸고 그걸 수습하기 위해 다음 날의 내가 골머리를 썩기도 했다. 사실 지금도 이 글을 다른 사람들에게 건네도 괜찮을지 확신이 없다. 글을 올리기 위해 확인하는 지금도 갈팡질팡했던 나의 흔적이 부끄러워 몸서리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언제나 그랬듯 근거 없는 용기를 담아 글을 올린다. 오늘의 두서없음에 관용을 베풀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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