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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May 25. 2021

46. 공연 1

삶에서 처음 겪어 보는 종류의 시간

 공연이 끝났다. 일주일에 몇 번이고 연습실을 잡아 연습을 하고, 모이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 줌으로 피드백을 받아가며 준비한 그 공연이, 끝난 지도 벌써 이틀이 지난 일이 되었다. 사실 크고 거창한 공연은 아니었다. 작은 루프탑에서 준비한 노래 한 곡을 부르고 내려가는 것이 내게 주어진 시간의 전부였다. 다만 무대에 선다는 것의 무게가, 살면서 처음 겪어보는 시간의 생소함이, 그 짧디 짧은 찰나라는 시간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내 연습을 돌아보면, 이를 악물었다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시간이었다. 그냥 노래만 연습하면 되는데 뭐 그리 거창하냐 싶겠지만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 대학생 신분으로써 과제와 시험 등에 둘러싸인 상황에서 꾸준히 시간을 들여 연습을 진행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언제나 그렇듯 '나만이 아니라 모두가 힘들다'는 식의 동기부여는 통하지 않았다. 신체적인 피로도 존재했지만, 정신적인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분량 전체를 수작업 애니메이션으로 진행한 영상 과제, 영화 두 편을 보고 팀 발표 영상을 제작해야 했던 교양 과제 등... 빈틈없이 하루를 채우는 과제들 사이로 연습 시간을 욱여넣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연습 자체도 순탄하지 않았다. 악보만 조금 볼 줄 안다 뿐이지 노래에 관한 지식은 고등학교 음악 시간에 배운 게 전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처음 며칠은 무작정 노래만 불렀다. 그땐 정말 어떻게 되어가는지도 모르는 채로 아득바득 노래만 불렀었는데, 이후에는 다행히 동아리 음악팀에서 노래에 대한 피드백을 진행해주신 덕에 연습의 방향을 조절할 수 있었다. 피드백을 받고 나서부터는 손에는 핸드폰, 눈 앞에는 노트북을 두고 반주와 피드백 사항을 맞춰보며 연습을 했다. 그렇게 두 번째 피드백까지 지났을 때, 듀엣 연습이 시작됐다.


 그렇다. 내가 맡은 곡은 듀엣이었다. 초중반 부분까지는 그래도 서로 부르는 부분이 나누어져 있었는데, 곡의 후반부에는 아예 둘이서 함께 부르는 화음 부분이 등장하는 곡이었다. 혼자 연습할 때도 그 부분만 다가오면 조금 침울해졌던 기억이 난다. 난생처음 공연을 하는데, 동아리 사람들도 화면으로밖에 만난 적이 없는데 듀엣이라니. 그냥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려운데 같이 노래를 하라니. 생각만 해도 아득해졌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연습 날짜는 코앞으로 다가왔고, 나는 미리 예약해둔 연습실로 가는 내내 해탈한 표정으로 멍하니 녹음해둔 곡을 돌려 들었다. 실수만 하지 말아야지, 피해만 끼치지 말아야지 하는 마음을 주문삼아 몇 번이고 되뇌었다.


 도착한 연습실에는 이미 듀엣을 함께 할 파트너분이 도착해 계셨다. 초면인 사람과 조우하는 것이 너무 오랜만이어서, 차마 눈도 제대로 마주치지 못하고 허둥지둥 어색한 인사를 마쳤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건 한 시간 뒤가 바로 실시간 피드백이어서 어색함을 밀어 두고 연습을 시작할 수 있었다는 거였다. 초중반은 순탄했다. 사실 굉장히 좋았다. 녹음으로만 들었던 듀엣 상대의 노래를 실제로 듣는 건 생각보다 훨씬 간질간질하고 들뜨는 일이었다. 문제는 화음이었다. 거긴 정말이지... 예상했던 것보다 몇 배는 어려웠다. 그 부분에 임박할 때마다 등 뒤가 싸해지는 기분이었다. 옆에 사람이 없었다면 몇 번이고 머리를 쥐어뜯었을 정도의 충격이었다. 다행히도 피드백을 위해 녹음한 분량에서는 화음이 그나마 안정적으로 나왔고, 피드백에서도 큰 지적을 받지 않았다.


 그 뒤로는 그저 연습의 연속이었다. 듀엣 연습을 위해 연습실을 한 번 더 잡았었고, 개인 연습을 위해서도 연습실을 잡았었다. 연습을 위해 든 돈은 교통비를 빼고도 자그마치 7만 2천 원. 대략 3주에 걸쳐 쓴 금액이다. 계산하는 지금도 기가 차는 가격이지만 후회를 들일만한 지출은 아니었으니 딱히 미련은 없다. 그저 금액이라는 명시적인 단위를 꺼내서라도 지난 시간 내가 들였던 노력의 부피를 가늠하고 싶을 뿐이다.


 그리고 공연 당일날 아침이 왔다. 며칠 동안 늦게까지 과제를 하고 스트레스를 쌓아온 여파인지 기상하자마자 느껴지는 건 쓰린 속이었다. 일어나자마자 마시는 물까지 버겁게 느껴질 정도로 울렁이는 속에 당황했지만 신경 쓸 여유는 없었다. 해야 할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공연 당일 아침에 과제라니? 지금 와서 생각해도 웃픈 상황이지만 사실이다. 그 전날 밤까지도 과제에 시달린 것이 무색하게, 당일 24시까지 제출해야 하는 리포트의 전량을 끝내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23일 아침, 나는 평소 먹는 양의 1/3도 먹지 못한 채 계속 리포트를 썼다. 그리고 약속 시간 1시간 30분 전. 눈 밑으로 길게 내려온 다크서클과 함께 나는 공연장을 향해 출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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