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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an 31. 2021

3. 글솜씨라는 재능

평생 가지기 위해 노력할 능력

 초등학생 때부터 공책 한 면을 가득 채워 일기를 쓰고, 중학생 때는 단군 설화를 배경으로 판타지 소설을 쓴 적이 있었을 만큼 나는 글을 쓰는 행위에 관심이 많았다. 아마 그 시작을 생각해보면 하루 종일 쉬지 않고 떠들어대는 입이었던 것 같다. 학교가 끝나면 책가방을 벗어두고는 엄마를 졸졸 따라다니며 학교에서 무엇을 배우고 어떤 일이 있었는지 시시콜콜 말하는 게 일상이었기 때문이다. 체육 시간에 발야구를 했고, 영어 시간에는 처음 듣는 팝송을 배웠으며 가장 친한 누구와 밥을 먹었다는 두서없는 이야기에 건조하게 고개를 끄덕이는 엄마의 곁에서 초등학생의 나는 무엇이 그리 들떴는지 한가득 이야기를 풀어내곤 했다.


 그 뒤 나이를 먹으며 가족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어들기 시작했을 무렵, 입 밖으로 나가지 못한 이야기들은 머리를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다. 성적과 친구 관계에 관한 고민부터 갑자기 학교가 무너진다면, 하는 어처구니없는 픽션까지 온갖 생각들이 혼재되어 복잡해진 사춘기 청소년의 머릿속에 자리 잡았다. 공교롭게도 그 아이는 당시 쉬는 시간이 생기면 종일 도서관에 박혀 소설책을 읽는 책벌레였고, 자연스럽게 그 생각들은 줄을 지어 차례로 소설로 태어났다. 바람을 무기처럼 다루고, 꿈을 만들어 불어넣는 등 현실에선 불가능한 초능력을 가진 주인공들이 나쁜 존재를 멋지게 물리치는 해피엔딩의  판타지 소설이 주를 이뤘다. 고등학교를 들어갈 무렵 노트북을 바꾸는 과정에서 그 시절의 소설들은 모두 사라져 버렸지만, 그 허무맹랑했던 주인공들은 요즘도 가끔 생각이 난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나는 문예 대회나 백일장에 내는 것을 제외하고는 소설을 써 본 적이 없다. 사실 소설은 고사하고, 한글 파일 한쪽짜리 이야기도 제대로 풀어본 적이 없다. 17살을 기점으로 가장 많이 쓴 글은 학교 활동을 위한 계획서와 보고서 따위였고, 글이라고 해도 필통의 포스트잇에 짧은 구절을 끼적이는 것이 전부였다. 질풍노도의 시기에 나를 설레게 한 각양각색의 상상들은 시들어버린 지 오래였다. 그렇게 글을 잃어가며 고3을 마주했을 때, 운명의 장난처럼 인생 작가라 꼽을 만큼 좋아하는 작가들의 글을 접하게 되었다. 이슬아 작가의 '일간 이슬아'와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 등이 그랬다.


 하루 한 편 글을 써 보낸다는 독창적인 발상과 특유의 성실한 솔직함이 묻어나는 글. 폭넓은 상상력과 읽는 사람을 매료시키는 스토리가 매력적인 글.(더 세세하게 짚고 싶지만 장황한 찬양론을 펼치게 될 것 같으니 자제하고 이어가 보자) 그런 책들은 읽기만 해도 질투가 나는 문장들로 가득했다.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한 표현과 매끄러운 이야기의 흐름은 읽는 나 자신이 그 글들을 사랑하면서도 시기하게 만들었다. 그런 글들은 작가를 설명하는 칸에 '글솜씨가 좋다'는 말이 각주로 몇 줄이고 달려있을 것만 같았다.


 글솜씨. 그건 내가 꼬옥 가지고 싶은 것이었다. 한 번이라도 글을 써서 타인에게 전해보고자 마음먹었던 이들은 공감하지 않을까. 나누고 싶은 생각과 기억을 훌륭하게 써 내려가는 것. 타고날 수 없는, 끝없이 시간을 들여 글을 읽고 써야만 가질 수 있는 것. 욕심 많게도 나는 종종 글솜씨를 손에 꼭 쥐고 태어났으면 좋았을 텐데, 하고 생각하곤 한다. 어떤 솜씨를 따다 쥐어 왔을지는 모를 일이지만, 뭐라도 하나 쥐어왔다면 하루에 몇 시간씩 글을 쓰고 지우며 앉아있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참 게으른 발상이지만 오랜 시간 얻어지지 않는 것에 대해선 가끔 이기적인 발상을 하게 되기 마련이다.


 끈기는 부족하고 게으른 나는, 그런 멋진 글을 동경하고 시기하며 아직은 모자란 글을 두드리며 밤을 지새운다. 쉽게 솜씨 좋은 글을 쓰는 법을 찾아보려 빛나는 글을 쓰는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아도 한결같은 성실함밖에는 보이지 않으니, 나도 그저 조용히 툴툴거리며 글을 쓰고 지워야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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