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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 Jan 30. 2021

2. 배 아픈 질투는 사랑이 되고

새로운 감정의 좌표가 된다

  사랑 얘기만 나오면 항상 마음이 간질거린다. 연애라는 걸 해본 적도 없고, 누군가 나를 좋아한다는 감정을 느껴본 적도 없지만 19년 동안 꼭 무언가에게 마음을 퍼주며 살아왔던 터라 친구들 사이에 오가는 달달한 연애 스토리 사이에서 씁쓸한 감초 같은 짝사랑 이야기를 풀어놓곤 한다.


 내게 있어 사랑이란, 누군가(무언가)를 좋아하게 되어 쏟아내는 감정이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을 줄 대상을 찾으며 살았다는 편이 맞았다. 어떤 대상에게 긍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호의를 베푸는 건 그 누구보다도 나 자신을 행복하게 만들었다. 보기만 해도 심장이 간질거리고 웃음이 나오는 존재를 발견하는 것은 내 일상이 아무리 힘들더라도 버틸 수 있게 하는 손잡이를 만드는 일과 같았다. (물론 시간이 지나며 이 태도가 가져오는 역풍을 맞기는 했지만, 이는 나중에 이어 보기로 하자.)


 그리고 대개 나의 사랑이 시작되는 순간은, 일상에서 누군가를 부러워하는 순간과 묘하게 맞아떨어졌다. 나보다 훨씬 훌륭한 글을 쓴다거나, 나는 엄두도 내지 못하는 악기를 몸이 부서져라 연주할 줄 안다거나, 책을 읽고 이제까지 한 번도 나오지 않은 기발한 생각을 말한다거나, 하는 순간들 말이다. '나는 할 수 없었던' 행동들을 자유자재로 하는 이들을 보며 질투보다는 사랑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 즈음부터였다.


 14살의 나는 사람들의 관심과 칭찬이 고팠던 터라 뭐든 남들보다 낫고 뛰어나길 바랐다. 말도 안 되는 욕심이지만 그때는 그랬다. 다른 사람들의 칭찬으로밖에 굴러가지 않는 협소한 나를 가지고 있었다. 나보다 시험을 잘 친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나보다 운동을 잘해서 주목받는 친구들을 부러워하고, 나보다 노래를 잘해서 칭찬받는 친구들을 질투했다. 그런데 어느 날, 정말 혜성처럼 만나게 된 한 아이를 통해 옹졸하던 나의 마음에 작은 분화구가 생겼다.


 학교 밴드부에서 드럼을 맡은 학생이었다. 학교 동아리에서 단연 각광받고 선망의 대상이 되는 밴드부에서, 흔치 않은 드럼이라는 악기를 1학년이 맡아 연주한다는 건 굉장히 특별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별 관심이 없었다. 내가 하지 못하는 일을 잘하는 걸 궁금해해 봤자 열등감밖에 더 생기겠냐는 치졸한 마음이었다. 그 뒤로도 같은 반이었던 그 아이를 마주칠 때마다 부러움 어린 마음으로 지나치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리고 이 옹졸한 감정은 학교에서 열린 밴드부의 공연을 보고 완전히 산산조각 나고 말았다.


 평소엔 말수 없고 조용했던 사람이 무대에 섰을 뿐인데. 빨강 파랑의 원색으로 빛나는 촌스러운 강당의 조명 속에서 몸이 부서져라 드럼을 치는 그 애의 모습은 유달리 빛나 보였다. 귓가에 크게 울리는 기타와 건반의 멜로디를 뚫고 나오는 드럼 소리를 들으며, 그 고저 없는 울림에 따라 심장 박동이 변하는 걸 느꼈다. 머리에 가득 차는 생각은 단순했다.


 '멋지다'


 순수한 감탄과 함께 이제까지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충만한 동경의 행복감이 밀려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부러움과 질투보다 훨씬 달콤한 감정이었다. 


 그 뒤로는 뻔한 이야기다. 나는 그 애에게 반했고,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 아이를 좋아했다. 연인 관계는 꿈도 꾸지 않으니 친구라도 되고 싶다는 마음으로 매일같이 인사를 했고 종종 간식거리를 건넸다. 본인은 먹지도 않고 손에 쥐이는 대로 가져다주는, 누가 봐도 사랑에 빠진 사람의 모습이었는데도 당시엔 꽤나 친구 행세를 잘하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지금 생각하면 웃음만 나오는 서툰 짝사랑이었지만, 다시 돌아가기 힘들 순수한 마음을 가끔 곱씹곤 한다. 남보다 뒤처지는 게 그토록 두려웠던 그때, 내가 가보지 못한 미지의 영역에서 빛나는 사람을 통해 질투와 열등감에 다른 이름을 붙였던 그 시간을.


 그 뒤로 주위에서 너무 쉽게 사랑에 빠지는 게 아니냐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사랑에 헤픈 사람이 되어 버렸지만, 내 감정의 자취를 갉아먹던 질투와 열등감은 꽤나 많이 사라졌다. 남한테 시기를 던지며 나를 깎던 때에 비하면 사랑을 헤프게 퍼 나르는 지금의 모습이 그리 후져 보이지는 않아 다행이다. 언젠가 더 나은 감정의 좌표를 찾으면 좀 더 멋들어지게 변할 수도 있겠지만, 지금의 안온한 감정이 바닥이 날 때까지는 버텨봐야지 싶다. 언젠가 사랑이 동나게 되면 그때는 조금 서둘러 새로운 마음의 방향을 찾아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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