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소개할 영화는 몇 주 내내 제게 생각거리를 제공해 준 <젊은이의 양지>입니다. 1995년도에 같은 이름으로 드라마가 방영된 적 있는데요. "80년대 후반, 광산촌을 배경으로 한 세 젊은이의 사랑과 야망을 그린 드라마"라고 소개되어 있네요. 상당히 다른 내용이겠죠? ^^;
신수원 감독은 영화 ‘순환선’ ‘명왕성’ ‘마돈나’ ‘유리 정원(제22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등을 연출하며 묵직한 메시지를 전해왔어요. 감독님 인터뷰에서 ‘젊은이의 양지’는 “무한한 경쟁과 돈에 몰린 세대에게 보내는 따뜻한 사과와 위로”라고 하셨네요.
감독님의 말대로 영화를 보고 난 후 사과받은 기분이었습니다. 목소리를 높여 이야기하고 있는 저를 발견했어요.
영화 주인공은 19살 볼에 여드름 자국이 남아있고 사진 찍는 걸 좋아하는 "준"입니다. 채권추심 콜센터에서 '성인용 기저귀'를 차고 목표 콜 수를 다 채울 때까지 야근하면서 현장실습생으로 적응하기 위해 꾸역꾸역 노력합니다.
채권추심 콜센터에 센터장이지만 계약직, '세연'은 시장에서 딸을 떠올리며 낙지를 사던 길에 본사 회식자리에서 걸려 온 전화 한 통에 달려가 불쾌한 농담과 상황에서도 자리를 지키는 캐릭터입니다. '세연'의 모습에는 당연하고 감내해야 하는 모든 것을 참아내온 기성세대를 대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영화를 보는 내내 마냥 나쁘다고 말하기도 잘못되었다고 꼬집기도 애매한 복잡한 감정이 뒤섞였습니다. 나 또한 어쩔 수 없는 기성세대라고 증명이라도 하듯이 '세연'이 이해되기도 했습니다.
실적과 콜 수, 일하고 있는 직원부터 연체 전화를 받는 채무자들까지 어느 하나 압박감이 느껴지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도 채찍질을 가해 오는 회사의 구조와 이를 수행하는 직장 상사들.
궁금해졌습니다.
저런 구조 속에서 일을 잘하는 것이 인생을 잘 살아가는 것일까요?
적응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 '준'에게 '세연'은 이렇게 조언합니다.
꿈을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인생 실습한다고 생각하자.
'준'은 '세연'을 '진짜 어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준'에게 그날은 이렇게 말합니다.
못하겠어? 알량한 자존심을 팔아서 받는 게 월급이야.
'준'이 찾아간 채무자는 결국 죽게 되고, 남겨진 어린아이의 모습까지. '준'의 꿈인 사진 속에 모두 담기게 됩니다. 카메라 속에 담긴 모습은 우리의 민낯을 너무나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었습니다.
무엇이 우리를 벼랑으로 내 몰고 있는 걸까요?
본사의 정직원이 되고 싶은 '세연'은 유리천장과 마주하며 유리 너머 있는 그들의 희망고문에 선택을 강요받기도 스스로 선택하기도 합니다. 여자로서, 어느 정도 공감 가는 부분도 충분히 있었어요.
실습생 '준'의 죽음 이후에, 벌어지는 미스터리가 영화 속으로 빨려 들게 합니다. 누군가가 보내오는 '준'의 사진과 영상, 석고상들이 '세연'을 압박합니다. '준'의 죽음이 기사화되면서 회사의 태도도 너무나 현실적이어서 씁쓸하기까지 합니다.
'준'과 소통한 추억이 있는 '명호'는 방 탈출 가게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에서 개연성이 부족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에요.
또 다른 인물은 '미래'인데요. '미래'는 '세연'의 딸입니다. 취업 준비생을 잘 대변합니다.
살면서 가장 힘들었을 때가 언제예요?
지금입니다.
면접관의 질문에 '미래'의 대답에 코끝이 찡해지더라고요. 노력이 부족해서, 끈기가 없어서, 세상에 못 할 게 없다는 말에 한 번쯤 상처받아본 이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하지 않을까요?
진짜!! 정말!!
노력만 하면, 끝까지 하면 다 꿈을 이룰 수 있는 세상 맞나요?
제일 무서운 게 뭔지 알아? 그래봤자 난 결국 엄마처럼 될 거란 거.
'미래'의 말에 예전의 제가 생각나더라고요.
마지막 인사를 하고 미완성, 멀쩡해보이지만 결함이 있는 석고상이 버려졌던 것처럼 스스로 물속으로 걸어가지만 마치 버려진 기분이 드는 건 왜 일까요? '준'의 모습에 과연 <젊은이의 양지>는 어디인가?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습니다.
얼마나 더 죽어야 멈출 거야?
그건 나하고 상관없는 일이야.
'세연'의 지인, 노무사와 '세연'의 대화입니다.
꿈을 포기하면 만날 수 있는 곳이 진정 <젊은이의 양지>가 맞을까요?
우리와 정말 무관한 일..일까요?
영화<젊은이의 양지>와 더불어 JTBC에서 방영 중인 <허쉬>에서도 어느 한 인턴의 죽음이 나옵니다. <허쉬> 1,2회와 영화<젊은이의 양지>는 많이 닮았어요.
No Gain, No Pain 아무것도 얻으려고 노력하지 않는다면, 고통도 없을 것이다.
기성세대에게는 경종을 주기도 하고
취준생, 인턴과 그들에게 일을 시키는 이들에게 "인생에 실습은 없다."라는 메세지도 주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애쓰는 모든 이들에게 "네 탓이 아니야."라고 위로와 사과를 받는 기분이 들었습니다.
저는 특히나 이 영화를 기성세대에게 꼭 권하고 싶어요. 생각이 많이 바뀌면 좋겠다는 뜻에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