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새 친구

마음이 늘어난 쪽으로

by 심지연



어느덧 끝 여름이다. 나는 다른 때와 다르게 푹푹 찌는 더위에도 물놀이 한 번을 하지 않았다. 올여름엔, 그런 것보다 더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더 이상 쓰지 않는 물건들을 버리는 일이다. 소유한 것을 비우는 일을 종종 해오곤 했지만 이번만큼은 더 많은 걸 비울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한여름이 시작될 무렵, 새 친구를 사귄 일 때문이다.


나는 새 친구의 농담이 듣기 좋았고, 데이트 장소로 파스타집이 아닌 불판 앞을 데려가 주는 것이 좋았다. 음악 대신 라디오를 즐겨 듣는 취향은 물론, 내가 학창 시절부터 지금까지 쭉 좋아하는 김형중의 그랬나 봐가 그의 노래방 애창 곡인 것도 좋았다. 더위라면 둘 다 질색이었지만 우리는 뙤약볕에도 딱 붙어 어디든 걸어 다녔고, 서로의 등줄기를 타고 땀방울이 흐를 때마다 아낌없이 부채질을 해주었다. 그러는 동안 계절은 말복을 향해 있었으며, 내 안에 응축되어 있던 마음들이 매일같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기쁘게 해주고 싶은 마음, 장난치고 싶은 마음, 상처 주고 싶지 않은 마음, 선망하는 마음, 걱정하는 마음, 가엽게 여기는 마음, 시시때때로 사랑을 고백하고 싶은 마음… 나는 내 안에 이렇게나 많은 마음이 동시에 태어날 수 있다는 사실이 불쑥 두려워졌다. 그리고 이토록 흘러넘치는 마음을 어찌할 도리가 없어 매일매일 손가락이 아프도록 일기에 적었다. 단 하나의 마음도 잊고 싶지 않아서였다.



몇 해 전의 난, 너무 많은 걸 소유하고 있다는 건 온전히 나 자신으로 사는 것이 자신 없기 때문이라고 썼었다. 그때부터 물건을 비우는 일을 주기적으로 해오며 물건에 대한 미련을 버리는 연습을 하곤 했었다. 그러나 올여름에 알게 된 사실 하나, 미련을 버리는 연습보다 더 효과적인 것은 소유하고 싶은 것을 바꾸면 되는 간단한 일이었다. 지금 내겐 내 마음보다 더 중요한 건 없는 듯하다.



이제 내 집엔 방 한구석 먼지 쌓인 턴테이블과 방치된 LP는 사라졌다. 필름 카메라와 폴라로이드 카메라도 더 필요한 사람에게 보냈다. 몇 년간 입지 않고 옷장에만 모셔둔 옷가지들을 비우고 나니 옷장은 눈에 띄게 홀쭉해졌다.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올여름 비운 것 중 가장 기특하다고 여기는 것은 책이다. 틈만 나면 더 이상 읽지 않을 책들을 모아 가장 큰 가방에 넣고 알라딘 중고서점으로 향했다. 한 번도 읽지 않은 새 책도 예외는 없었다. 이백 여권을 팔아 겨우 삼십만 원밖에 못 벌었지만 마음의 공간은 훨씬 넓어진 기분이 들었다. 내가 비운 것들은 과거의 내가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사들인 물건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나 자신이 되기 위해 비운다.



가을을 맞이하는 마음은 이미 분주하다. 성실하게 비운 공간을 다른 것으로 채울 생각으로 설렌다. 나는 나의 공간이 내 마음으로 더욱 가득 차도록 영원히 내버려 두고 싶다고 생각한다. 그를 아주아주 오래도록 바라고 싶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