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 보려면
집을 나서기 전 신발장을 연다. 오늘 옷차림과 어울릴 만한 신발을 찾는다. 나는 가장 위칸에 놓여있는 신발을 꺼내 신는다. 어제도, 그저께에도, 지난주에도 신은 검은색 플랫슈즈다.
플랫슈즈를 좋아한다. 언제부터였는지, 무슨 계기였는지는 이제는 희미해졌지만, 신고 있을 때도 벗어 두었을 때에도, 변함없이 귀여운 모양을 유지하는 올곧음이 좋다. 단정함과 활동성을 동시에 갖춘 점도 마음에 든다. 하이힐, 부츠, 로퍼에 잠시 한눈팔 때도 있지만 결국 내 마음의 종착지는 플랫슈즈다. 그 납작한 신발이 내 작은 키를 보완해 주는 것도 아닌데 중요한 자리에는 늘 아끼는 플랫슈즈를 신고 싶어진다. 그러면 움츠러들었던 자신감도 살아난다.
시크한 세모 앞코, 흔한 느낌이 없어 마음에 드는 네모 앞코, 사랑스러운 곡선 앞코, 붉은색, 하늘색, 검은색, 회색, 하얀색, 트위드, 도트, 민무늬까지. 작은 신발장에 가득 찬 플랫슈즈를 보며 괜히 뿌듯한 기분이 들었다. 당시 내게는 ‘힐 말고 플랫슈즈 신어’(크루셜 스타-Flat Shoes 中) 달라는 애인도 없었지만, 나는 1년 365일 플랫슈즈와 함께했다.
그런데, 플랫슈즈를 너무 사랑해 준 탓이었을까. 발바닥에 병이 나고 말았다. 어느 날 아침, 발로 땅을 디딜 때마다 욱신거리는 통증이 올라왔다. 밤새 부은 거라고 생각했지만 오후가 되어도 나아지지 않았다. 발바닥이 몸의 무게를 견뎌야 할 때면 얇은 유리 조각 위에 발을 올린 것처럼 찌릿한 통증이 번졌다. 걸음걸이는 저절로 느려졌고, 모양마저 우스꽝스러워졌다. 지하철 계단을 내려갈 때는 자연스럽게 발끝부터 바닥에 닿도록 몸을 기울이게 되었고, 평평한 길에서도 발바닥 전체를 디디지 못한 채 조심조심 걸음을 옮겼다. 맑은 날에도 지팡이 대용으로 장우산을 지침하고 다녔을 정도, 어쩌다 발바닥이 바닥에 제대로 닿기라도 하면 악! 하고 비명이 튀어나왔다.
의사 선생님께서는 족저근막염이라는 진단을 내려주셨다. 진료실을 느리게 나서는 나를 딱하게 쳐다보며 낮은 신발을 오래 신고 걷는 사람들에게 나타나는 흔한 증상이라는 설명도 덧붙였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고통스러운 체외충격파 치료를 받으면서도 나는 나의 신발장을 떠올렸다. 내 발건강에 도움 하나 안 되는 이 납작한 신발을 나는 얼마나 좋아한 걸까. 플랫슈즈를 못 신으면 나는 앞으로 무얼 신고 다니지?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와 신발을 벗고 바닥에 발을 내려놓았다. 평소라면 아무 생각 없었겠지만 그날따라 발이 더 작아진 기분이 들었다. 나의 몸 가장아래에서 나를 떠받치고 있던 이 작은 부위를, 나는 너무 오래 잊고 살았나 보다. 눈물을 머금고 플랫슈즈와 잠시만 안녕을 고할 수밖에 없었다. 족저근막염의 통증은 너무나 괴로웠으니까. 건강을 회복할 때까지만 다른 신발에 정을 붙여보자고 마음먹었다. 신발은... 다른 신발로 잊는 거라면서.
그로부터 오 년이 흐른 지금, 나는 여전히 플랫슈즈를 좋아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신을 때마다 통증에 대해 복기한다는 사실이다. 밑창이 닳았다 싶으면 모델이 같은 새 신발을 장만하기도 하고, 예전처럼 플랫슈즈만을 고집하지도 않게 되었다.
좋아하는 것을 더 오래오래 보려면, 오로지 그것만을 바라보기보다는 조금의 간격을 두고 사랑할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