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던 집에서 살 집으로, 잘 아는 곳에서 잘 모르는 곳으로
청명한 가을 아침,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활짝 열어둔다. 금세 찬바람이 휘잉 하고 들어오고, 나는 시원하다 못해 썰렁한 기운을 실감한다. 지난밤, 식탁과 전신거울 그리고 책장마저 처분했다. 눈에 띄게 허전해진 집안이 찬 기운에 부채질을 한다.
아저씨는 오늘 이 동네에 오는 것이 설렜다고 말했다. 첫 직장이 있던 원서동을 지나올 수 있어서라며, 그 시절엔 밤을 새워 회의를 해도 즐겁기만 했다는 말을 자랑스레 덧붙였다. 그래서였을까. 여덟 시까지 오기로 한 그는 삼십 분이나 더 일찍 도착했고, 내가 부동산과 약속한 시간이 되기도 한참 전에 모든 작업을 마쳤다. 조금이라도 빠르게 숭인동으로 넘어가, 일을 마치는 것이 오늘 그의 희망 사항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부동산 사장님께서 출근하기도 전이었다. 우리는 사장님을 기다리는 동안 이른 점심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이삿짐센터 기사님과 식사를 하는 일은 태어나 처음이었다.
그는 이삿짐 앱에 달린 수많은 후기들처럼 모든 부분에서 호의적이었고, 무엇보다 수다적이었다. 내가 살던 집 벽면 곳곳에 부착된 접착식 후크를 안간힘을 써서 떼어 줄 때에도, 생각했던 것보다 더 많은 짐을 실어야 한다는 걸 알았을 때에도, 집 앞을 가로막고 있던 (곧 폐기 처리될) 커다란 책장이 쓰러지기라도 할까 봐 굳이 구석으로 옮겨주면서도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나는 휑한 집을 마지막으로 둘러보았다. 연고 하나 없는 도시에 한번 살아보겠다고, 혼자 힘으로 구했던 집이다. 2년 전, 이곳은 여행으로도 안 와본 낯선 동네였는데, 막상 떠나려고 보니 아쉬움에 괜히 더 질척거리고 싶어진다.
헥헥 거리며 언덕을 오르다가, 오르막에 싫증 날 무렵 모습을 보이던 얄미운 나의 집. 아침이면 강렬하게 내리쬐는 햇볕 때문에 저절로 눈을 뜨게 만든 환한 집. 코인 세탁소 대신 오래된 세탁소와 수선집만 있던 조용한 골목, 한 번도 치안 걱정 없이 지낼 수 있었던 안전하고 푸근했던 나의 동네, 나의 201호.
문을 닫고 밖으로 나오자 비로소 떠나는 것이 실감 났다. 나는 그와 나란히 계단을 내려와 좁은 골목을 빠져나왔다. 우리는 반찬에서 짙은 젓갈 향이 나는, 부동산 근처에 위치한 갈빗집에 도착했다. 평일 오전 이른 시간이라 손님은 둘 뿐이었고, 유독 조용하게 느껴졌다. 바스락, 바스락, 사르르륵- 바로 앞 초등학교 경비 아저씨께서 낙엽을 쓰는 소리가 들릴 정도였다. 갈비탕 두 개를 시켰다. 그는 밑반찬을 먹으며 집 앞에 있던 큰 책장이 내 것이었냐고 물었다. 거기에 꽂혀있는 책들은 다 어디에 갔느냐고 궁금해하면서.
화두는 자연스럽게 독서 이야기로 넘어갔고, 나는 그가 좋아하는 장르가 SF 소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는 내게 <듄>을 추천하면서, 과거 사업 때문에 두바이로 출장 갔다가 사막투어를 한 일화까지 들려주었다. 듄에 대해 설명할 때 그는 충분히 많은 말을 하고 있으면서도, 더욱더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가 느껴졌다. 영화로 제작된 듄을 1편만 보고 더는 보지 않았다는 나를 그 세계로 완전히 초대하고 싶은 것처럼. 이사로 인해 만난 사람과 책 이야기를 하다니! 나는 그와 다른 이유로 내적 흥분상태였다. 그러나 마음속으로만 방방 뛸 수밖에 없었다. 이삿짐센터 기사님을 경계하지 않으면 추가 금액으로 폭탄을 맞을 거라는 동료들의 말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특히 너처럼 남에게 유독 싫은 소리 못하는 사람은 더더욱 조심해야 한다고 신신당부를 했다. 노파심이라는 걸 알고 있었지만 새겨듣지 않을 이유도 없었다.
잠시 후 몸이 아픈 집주인 대신 부동산 사장님과 계약을 마무리하고 그의 1톤 트럭 조수석에 탑승했다. 트럭은 금세 사직터널을 통과했다. 동네가 시야에서 점점 멀어졌다. 2년 전, 이곳으로 이사 오던 날엔 트럭 2대가 꽉 찰 만큼 짐이 많았다. 그러나 지금은 그의 절반뿐이다. 불필요한 살림들 틈사이에서 부대끼며 살다 보니 단출하게 살고 싶어 졌고, 이사를 앞두고 거의 모든 살림을 처분했기 때문이었다.
눈부신 한낮, 궁궐을 감싸는 담장에 핀 가을 나무들은 계절 한가운데서 만개하고 있었다. 안간힘 써가며 매달려있던 노란 은행잎들이 바람이 불 때마다 부슬비처럼 흩날렸다. 나는 1톤 트럭을 타고 경복궁과 창덕궁, 원서동을 가로질러 달렸다. 새 동네로 가는 사이, 그는 세부에서 고래상어 본 일을 이야기했다. 거대한 물고기를 가까이서 본 경험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신선하고 경이롭다고.
살던 집에서 살 집으로, 잘 아는 곳에서 잘 모르는 곳으로. 최근 몇 주간 나는 다시 낯선 환경에 적응해야 하는 일상을 앞두고 쭉 긴장상태였지만, 오늘만큼은 조금 평온하다는 기분이 들었다.
그가 내려다 준 짐을 대충 푸르고, 제안받은 금액에 수고비를 좀 더 얹어 이체했다. 진심을 담아 감사하다는 말을 전했다. 우리는 서로의 건강과 행복을 응원했다.
이 동네 역시 여행으로도 와본 적 없는 동네, 아직 무엇이 좋은지, 아쉬운지 알 수 없는 ‘무’의 상태에 가까운 새 동네다. 이곳에 관해 내가 아는 것이라곤 421번 버스를 타면 회사 앞까지 15분이 걸린다는 것, 가까이 청계천이 흐른다는 것, 동묘 시장이 근처에 있다는 것 정도. 한 번씩 삶의 모양을 바꾸려고 할 때마다 그 불확실성 앞에서 마음이 동동거리곤 하지만, 때로는 그 불확실성이 예상치 못한 베네핏을 건네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오늘 조금 믿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