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고 쓰고, 내 안의 밴댕이와 만났다
살다보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난다.
학창시절에는 학교 친구, 선배, 후배 그리고 선생님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동료와 선배, 사수, 부장, 사장 등등.
내가 선택하지 않았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주어진,
고정된 관계-부모님과 형제 자매같은 피로 맺어진 혈연관계.
여기에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유일한 가족 - 배우자 - 까지 만나게 되면
그 배우자의 원가족까지 법적인(?) 가족이 된다.
새끼를 낳으면 새끼의 친구와 그들의 부모, 형제로까지 관계가 확장되기도 하며
한동네에 오래 살다보면 같은 라인의 동네 주민과는 인사를 할 정도의 친분(?)을 갖게 된다.
뿐만 아니다. 아이의 학교 친구들과 그들의 어머니, 선생님
그리고 학원 선생님과 학원에서 생성된 관계들까지.
택배기사님과 동네 편의점 사장님, 미장원 사장님, 마트 관계자(?) 분들까지
정말로 많은 인연들이 쉴새 없이 이어진다.
현대인들의 피곤함은 직접적인 그러니까 대화를 나눌만한 깊이 있는 관계까지는 이어지지 않지만
얽히고 섥힌 무수히 많은 관계들 때문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멀리 볼 것도 없다.
가정주부인 나를 돌아보면
같이 사는 식구들 말고 스쳐지는 가는 사람은 많지만
대화다운 대화는 하지 못하는 날도 있다.
"성인 사람이랑 대화하고 싶다"며 남편에게 입을 털때도 있지만
그것도 타이밍이 맞아야 가능하다.
남편도 밖에서 돈벌랴 집에 와서는 똥누랴, 술마시며 넷플릭스 보랴 자신을 달랠 시간이 필요하니까.
그에게 내가 아무 위안이 되지 못한다는 게 미안하고 서글플 뿐.
같은 공간에 있어도 각자 살아가는 시기가 있다.
적당한 거리에서 인사하는 사이가 주는 안정감에 익숙해져서일까.
영어 수업을 듣는 어르신들 중 껄끄러운 어르신이 있다.
가만히 생각해 보았건만
정각에 수업시간에 도착하는 내게 "맨날 늦는다"고 하거나
아니, 생각해보니 그 말씀밖에 안하셨네?
근데 왜 나는 그따위 말에 파르르 하는 건가.
내 속이 밴댕이기 때문일까?
중년보다 조금 더 나이가 있으신 중장년(?)의 그 어르신은
입 바른 말씀을 자주 하시곤 하는데,
나는 그 분과 어떠한 연대도 없기에
그저 인사만 하는 관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인사가 아닌 말씀을 하셔서 그게 싫었던 것일까.
잔소리 하는 여자 어른에게 나는 왜 이렇게 예민한건가?
어떤 인간적인 관계를 맺을 일이 1도 없어뵈는 어르신의 언행에 무례함을 느끼는 내가 무례한 것일까.
나는 그 어르신에게 뭔가를 받은 적도 드린 적도 없고,
앞으로도 그럴 생각이 없다.
그런데 왜 아무 상관이 없는 관계에 있는 타인에게서 내 마음은 요동치는 것일까.
하루 종일 생각해보아도 답이 나오지 않는다.
수업이 끝나면 자연스럽게 종료될 관계,
그래도 더 이상 그 어르신에게 휘둘리고 싶은 생각이 없다.
방법 하나는 자리를 바꾸는 것.
얼굴을 마주볼 수 없는 자리를 찾아가는 것.
그러려먼 더 일찍 나가야겠지.
다른 방법 하나는, 그 생각을 뚝 잘라버리는 것.
더 깊이 들어가면 분명 뭔가 내 안에 썪거나 문드러진 부분과 닿아 있을터인데,
아직까지 닿지 못했다.
아무것도 아닐 일에 예민하게 군다는 건
나를 점검해보라는 뜻이기도 하다.
추리해진 내 모습에 점점 더 작아지는 나를 두고 보기만 해서는 안될 것 같다.
20년도 더 전에 산 콜린스 영영사전을 들고
늙어서 영어를 하겠다고 설치는 나에게,
늙고 살쪘다고 쭈글해지지 마라.
밴댕이 속좁다고 욕하지 마라.
제철 밴댕이가 얼마나 싸고 맛있는 지 너도 알지 않느냐.
나야,
다른 사람에게 휘둘리지 말고
다른 사람의 목소리에만 귀를 열지 말고
스스로에게 귀 좀 기울여라.
40대는 메타인지 폭발하는 시기라는데,
스스로에게 엄격한건 좋지만
자기비하까지는 가지 마라.
야물지 못하고
똘똘치 못하고
그래도 괜찮다.
그래서 만날 손해보면 어떠냐.
평생 그리 살았어도 밥은 세끼 먹지 않느냐.
그리고 새끼들 잘 키우려면 심뽀를 바르고, 강하게 먹어야 한다더라.
Tlqk 어렵다. 어려워.
내가 이 정도의 그릇을 가진 인간이라는 것이... 부끄럽다.
그래도 어쩌겠누. 후지다고 괴로워하지 말고 좋은 점도 분명 있을 것이니, 그걸 찾아보자.
그리고,
앞으로는 양심껏 밥도 간장 종지에 담아 먹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