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차 산업혁명, 우리의 미래는 어디에

대학생의 소소한 고민

by 망고


작년부터 관심 있게 봐온 주제가 하나 있다.

바로 4차 산업혁명, 과학적인 분야를 깊게 배워본 적도 없고, 관련 분야의 학문에 흥미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내 생존이 달린 문제이기에 4차 산업혁명에 관한 책과 논문을 읽고 교육에 관한 영화도 보며 나름대로의 진지한 고민을 해왔었다. 내가 봤던 자료의 서론은 이렇게 시작한다. ~예상한다. 명확하지 않은 근거를 띄며 미래학자의 글을 인용하거나 자신의 생각을 적으며 글이 시작된다. 당연하다. 미래는 누구도 예측할 수 없으니 확실한 어투로 쓸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명확한 미래를 알고 준비하고 싶은 나로서는 답답했다. 답을 알기 위해 읽었지만 어느 하나 답을 내려주지 않았다. 다만 살아가야 할 방법은 알려줬다. 인간은 어느 세계에서나 탐구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가지고 있으니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다. 태도의 명확한 답을 얻고, 현실에 집중하며 미래의 대한 고민보다는 바로 코앞에 닥친 일만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러던 와중, 창의적 사고 디자인이라는 교수님의 강의를 봤고, 수강신청에 성공하여 1강을 듣게 됐다. 강의를 들으며 작년에 생각했던 내 고민의 흔적이 이어져 이렇게 글을 쓴다.


4차 산업 혁명하면 같이 떠오르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창의성’이다. 기업에서 원하는 인재 상에도 항상 나오는 것이 있다. 맞다. ‘창의성’이다. 나는 이런 단어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학교에서는 주입식 교육만을 해오며 학생들을 관리하기 쉽게 획일화된 교육을 해왔으면서 어떻게 사회에 나와서는 창의적인 인재를 말하는 것일까. 참 모순된 세상이라는 생각을 가졌는데, 우리가 살길을 도모하는 방법은 창의성이라고 하니 힘이 빠졌다. 경제와 사회를 수업하는 교수님의 말씀은 이러하다. 미국 연구에 의하면 창의력을 증진시킬 수 있는 방법은 현재까지 고전을 읽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라고 말이다. 그렇다면 교육은 주입식 교육이 아닌 고전 읽기 수업이 들어가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 공부보다는 독서를 증진시켜야 하는 것이 맞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한다.


영국 교육전문가 켄 로빈슨 TED 강연 – 학교가 창의성을 죽이고 있는가? 에 의하면 창의력을 읽기/쓰기 수준으로 다뤄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직장을 위한 과목이 우선시되니, 예술이라 쓰는 과목은 항상 뒷전에 있다는 것이다. 모든 어린이들은 각기 다른 대단한 재능을 가지고 있는데, 직장을 위한 과목을 우선시하여 교육을 하니 개성이 말살이 되는 것이고 그 직장을 위한 과목들이 기계로 대체된다고 하니 그 지식만을 습득한 우리들에게는 현재의 세상에서 제시하는 과제가 참 가혹하다는 것이 아닌가. 다행히 창의적 사고 디자인을 가르치는 박 OO교수님께서는 공교육의 지향점을 말하며 조금은 해결할 수 있는 돌파구를 제시해주신다. Mini C (개인 창의성) > Little C (일상적 창의성) > Pro C (전문적 창의성)의 순서대로 점진적인 창작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보통 창의성하면 모차르트, 아인슈타인 이런 천재적인 사람들이 생각나지만 그런 접근성 높은 것만이 창의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기존의 것을 활용하여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잠재적 능력이 창의성의 정의이듯 글을 좋아하는 내가 소소하게 나만의 단편소설을 만드는 것이 Mini C (개인 창의성)가 되는 것이고, 이 단편소설을 공모전에 제출하여 당선되는 것이 Little C (일상적 창의성)인 것이고, 그렇게 한편 두 편 글을 쓰다 보면 작가가 되는 것이 Pro C (전문적 창의성)가 되는 것이라 생각해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에게 작품을 인정받고 후대에도 전해진다면 최종적으로 Big C (뛰어난 창의성)가 되는 것이라 볼 수 있다. 이런 수업을 받으니 한결 창의성에 대해 접근성이 낮게 들어가는 고민을 해보게 되며 현재와 접목하여 조금은 미래를 볼 수 있는 힘을 기를 수 있게 되지 않았나 싶다.


다만, 불행한 소식은 AI 가 쓴 각본과 소설 그리고 광고까지 있다는 것이다. 인간 고유의 능력이라 믿어왔던 것들에 대해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니 절망적이었지만 AI는 기존 작품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여 창작하는 작품이니 시대적 감정을 다루는 작품은 인간이 더 빨리 느끼고 다룰 수 있지 않을까 싶다. 인간의 작품이 나온 뒤에야 기계는 그 시대적 작품을 창작시킬 수 있으니 사람의 뒤를 쫓아오는 양상을 띄지 않을까 한다. 적어도 감정을 다루는 예술에서는 말이다.


과학을 공부하는 사람도 아니고, 그렇다고 관련 주제에 대해 연구를 하는 것도 아니고, 글을 출간한 작가도 아니지만 내 미래를 궁금해하고 걱정하는 대학생인 내가 지극히 할 수 있는 고민거리를 적어봤다. 학기가 시작한 만큼 4차 산업 혁명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한 것은 아니다. 다만 대학에서도 지금 현실에 처한 문제를 같이 고민하고 관련된 수업을 개설하여 우리에게 배움을 제공하는 것은 우리가 한층 더 깊이 있는 고민을 통해 성장하고 살아남으라는 말로 들린다. 우리 모두가 살아남았으면 한다. 이렇게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말이다. 정보를 독식할 수 있는 상위계층이 아니라면 지금의 사회가 원하고 제시하는 길이 아닌 자신을 알고 연구하며 나를 이 세상에 어떻게 녹여들게 할 것인가를 고민해봐야 할 시점이 아닐까 한다.


시간의 흐름대로 떠내려가는 게 아닌 배움의 끈을 놓지 않고 우리의 미래에 대해 그려보고 나를 들여다봐야 한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살아남을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사진 출처 : 물류산업진흥재단 홈페이지
매거진의 이전글제주 한림 이시돌 맥그린치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