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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용희 Jun 05. 2018

본질의 상위 본질에 대한 고찰

챕터 2 본질에 다가가기

  앞서 본질에 대한 여러 생각들을 나열 하였다. 그리고 본질에 대한 탐구와 사고는 굉장히 중요한 일임을 강조 하였다. 그러하다면 그러한 본질에 다가가는 방법에 대해서 설명을 해보겠다.

 가장 우선해야 될 일은 무엇일까? 우선은 각자가 탐구 할 본질을 정하는 것이 중요하겠다. 무엇이든지 상관이 없고 좋고 나쁨은 없다. 모든 존재하는 것은 본질에 본질이기에 즉 본질에 복제품이기에 그 복제품의 탐구에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다. 그러한 본질들은 진정한 본질에 복제품이기는 하지만 하나의 본질을 형성한 것은 분명하다.

가장 쉽게 접근 할 수 있는 대상은 나에 대한 고민이라 볼 수 있다. 가장 어려운 본질일 수도 있지만 접근하기에 가장 쉽기도 하다. 또는 자신이 선호하는 것으로 정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탐구과정이 즐겁기 때문이다. 본질의 탐구는 쉬운 과정이 아니고 한 순간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구력이 필요한 것이다. 그 지구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선호도가 중요하다. 그리고 분명하게 확인해두는 것도 중요하다. 왜 본질을 탐구하겠는가에 대한 확인이다. 돈이 될 수 도있고, 자신의 발현, 또는 새로운 해석을 하고 싶은 마음등 다양할 것이다. 자신만의 동기를 정하는 것 역시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이다. 하지만 어느 순간 느끼게 될 것이다. 본질에 다가간다는 것 자체의 가치를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탐구한 것을 발현하는 것을 통하여 생성되는 에너지를 느끼게 될 것이다. 그 에너지는 여러 형태로 자신에게 돌아온다. 하지만 그렇게 돌아오는 에너지 역시도 본인이 느끼고 원하는 에너지만을 인식하게 될 것이다. 분명한 것은 그 에너지는 삶을 살아가게 해주는 에너지임에는 분명하다.

지금부터 간단하게 동물의 본질을 탐구하는 것을 얘기 해 보겠다.

동물의 존재는 필요한 것인가? 동물의 본질은 무엇인가? 동물의 각각 형태는 다르지만 왜 기본적인 욕구는 차이가 나지 않는가? 등에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이제 부터는 기존의 있는 자료를 탐구해 보는 것도 좋고, 그 자료를 참고삼아 스스로 연구해보는 것이 중요하다.

동물의 본질을 생각하다보면 외형의 조건과 주어진 욕구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외형의 조건은 환경적인 영향으로 차이가 생겨남을 알 수지만 동물 스러운 외형의 조건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주어진 욕구역시도 비슷하게 맞어지는 부분이 많음을 알 수 있다. 이렇게 비슷하게 맞아지는 부분으로 인하여 동물이라는 본질이 생겨나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동물이라 칭하였지만 그 어느 누구도 동물이라는 것에 원형. 온전한 동물을 보지는 못한 것이다. 플로톤은 이것을 이데아라 칭하였다. 분명히 어디가에는 동물이라는 원형이 존재할 것이고, 그 원형의 파생의 결과가 우리세계에 보여지고 살아가게 된 것임을 정의하였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동물의 탐구는 파생된 동물들의 탐구로 이어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본질인 동물을 탐구하기위한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그 과정에서 어느 누군가가 동물의 원형을 마주하게 되었다고 가정해보자. 그는 동물에 관해서는 이제 모든 것을 깨우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그 원형의 동물너머에 원형의 본질을 인지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본질의 탐구를 통하여 다음 본질로 넘어가게 되는 과정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많은 이들이 그 동물의 원형을 왜 발견해야 하는지 물은을 던질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통하여 다음의 본질로 왜 넘어가야 하는 지도 궁금 할 것이다. 동물의 본질을 알게 된 경우는 동물의 재조합과 재창조가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동물자체의 창조를 해낼 수는 없지만 원형의 동물을 통하여 새로운 동물에 대한 모델을 제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진화의 방향을 제시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반대의 경우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즉 새로운 동물의 모델을 창조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다. 여기서 함정은 우리는 누구도 동물의 원형본질을 찾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하면서 왜 동물의 원형을 탐구 하는 것인가? 그것은 자신만의 시각으로 명분있는 재해석과 재창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본질의 동물을 마주 할 수 없다. 모호한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탐구한 자는 자신만의 새로운 동물의 본질을 찾아가게 되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본질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동물에 대한 자료는 넘칠 정도로 많을 것이다. 그 엄청난 양의 자료를 가능한 많은 이가 공감하게끔 정의하고 찾아낸 이가 모든 자료를 지식으로 만들어 버렸다. 당연시 하게 만든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절대적으로 맞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탐구한 이만큼 탐구한 이가 없기 때문에 우리는 그 부분에서는 그의 해석을 믿을 수 밖에 없게 된 것이다. 동물의 원형은 그대로 존재 할 것이다. 하지만 언제든지 다른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즉. 우리는 그렇게 동물을 탐구 한이가 만든 동물을 인식하고 있게 된 것이다. 최초에 공룡이라고 정의 내린이가 있기에 우리는 그 거대한 동물을 공룡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누군가 그 보다 더 분명하고 명확하며 새로운 것을 제시 할 수 있게 된다면 우리는 그것을 공룡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쉽게 말해서 공룡의 창조는 공룡을 최초로 탐구한 이가 했다고 볼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로 인하여 공룡의 본질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런식으로 본질에 다가가는 것은 새로운 해석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많은 것에 본질을 탐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일 수 있지만 모든 것은 본질에 본질로 통하기 마련이다. 본질로 다가가려 하는 것은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확인하고 정의 내리고 싶은 본능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내려진 정의는 분명한 보상이 이루어진다. 단 공감의 정도와 선호에 따라 그 에너지의 양은 달라질 것이다. 그 공감과 선호는 탐구의 양에 따라 달라 질 것이고, 우리가 공감과 선호한다는 것은 우리 안에는 동일의 무언가가 존재한 다는 것을 알 수 있게 해준다. 그 알 수 없는 동일의 무언가가 바로 본질이라 본다. 그리하여 우리는 본능적으로 본질을 탐구하고자 하는 것을 갖추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본질을 탐구하려는 정도의 차이가 생긴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챕터 3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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