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본질을 탐구하려는 정도의 차이가 생기는가?

챕터 3

by The being

적자생존이라는 말이 있다. 태생의 우월함으로 인하여 적자생존이 생기는 것일까? 적자생존은 진화의 단편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준다. 진화가 가능했던 것은 본질의 탐구의 정도에 갈린다고 판단된다. 본질의 탐구는 생존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설명하였다. 본질의 탐구는 어떻게 생존하는가를 생각하게 해준다. 그리하여 진화와 쇠퇴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단순히 우월인자가 생존하는 것이 아니라 본질의 탐구정도에 따라 적자생존이 형성되는 것으로 판단된다. 즉 우월과 열등의 차이는 탐구의 정도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다.



그럼 그 정도의 차이는 왜 나는 것인가? 본질의 노출이 어느정도에서 이루어지느냐에서 생기는 것으로 보인다. 어느 정도의 만족을 얘기하고 싶다. 그 만족으로 인하여 본질의 탐구가 멈추게 되는 것이다. 본질은 보편적인 공감과 선호를 어느 정도로 얻었는지에 따라서 본질의 가치의 비중이 달라진다. 만약 얼룩말이 얼룩말의 본질을 사자를 만나면 도망가는 것으로 생각하지 않고 맞서 싸운다고 생각한다 해보자. 얼룩말은 얼룩말의 본질을 도망가는 것에서 멈추었기에 사자를 만나면 도망가게 된 것이다. 단지 신체적인 조건이 부족하여 도망 간 것이 아니라 본질을 그렇게 정의 하였기에 사자를 만나면 도망가는 얼룩말만의 본질을 얼룩말들끼리 형성하게 된 것이다. 그 본질을 사자가 만든 것이 아니다. 얼룩말이 만들었다고 보기가 쉽다. 물론 사자도 그러한 본질 형성에 영향을 주었지만, 그러한 본질을 고착 시킨 것은 얼룩말이라는 것을 얘기하는 것이다. 왜 인간이 지금의 영향력을 갖추게 된 것일까? 끊임없이 본질의 탐구를 통하여 발전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출현이전의 동물의 본질은 신체의 조건으로 생과 사가 가렸다. 그러한 조건으로는 인간은 현재 지금의 영향력을 갖출 수 없는 존재이다. 하지만 인간은 동물의 본질을 바꾸어 놓게 된 것이다. 바로 본질의 탐구라는 과정을 통해서 이룩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동물과 인간을 분류하여 인간만의 본질을 형성하기 시작한다. 그러하면서도 인간은 동물이라는 큰 본질 안에서 벗어나지는 못하고 있다. 동물이라는 본질이 형성됨으로서 인간의 본질도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이렇듯 하나의 본질이 형성되고 고착되어 갈수록 그 본질을 부정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부정은 기존의 본질 자체를 부정하게 됨으로 쉽게 부정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인간이 동물이라는 큰 범주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동물이라는 본질을 탐구 할 수 밖에 없고 인간과 인간외의 동물의 분명한 차이를 증명해야한다. 그래야지만 인간이라는 단일 본질이 형성되는 것이라 본다. 이렇듯 원형본질의 파형들은 모두 원형본질에 얽혀있다. 그리하여 인간이 단일 본질을 형성하기 위해서는 본질에 본질을 탐구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즉 탐구에 정도는 단순히 본질만을 생각할 것인가, 본질 넘어에 있는 본질까지 탐구 할 것인지에 갈린다고 본다. 우리는 쉽게 하나의 정의된 본질만을 탐구하기가 쉽다. 여기서 그러한 본질 넘어에 본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의 정도에 따라 탐구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이다. 하지만 하나의 정의된 본질을 탐구하는 것을 우선시 하는 것이 중요하다. 정확히는 순서라고 생각되어진다. 기존의 본질에 대하여 깊게 탐구를 하다보면 어느순간 본질 넘어의 본질을 생각하게 될 것이다. 지금의 세상은 그렇게 본질 넘어의 본질을 탐구한 자들이 움직이는 세상이 된 것이다.


챕터 4에서 계속~~~



이전 02화본질에 다가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