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딴섬 로맨틱

030325 외딴섬에서

by 신동인

지금 나는 외딴섬에 있는듯해. 물은 싫어해도 바다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듯이, 나 역시 이 섬이 썩 나쁘지만은 않아. 사방이 물결치는 이곳에서 나는 충분히 자유로운데 그래도 잃어버린 듯한 자유를 자꾸만 갈구하게 돼. 갈구하면 안 되는데, 이러다 바닷물이라도 한 움큼 주워서 마시고 싶을까 두렵기도 해.


오늘 새벽에는 가득 눈이 내렸어. 삼월에 40cm를 넘기는 눈이라니, 본 적 있어? 한 발짝 내디디니 쑤욱 들어가 사라져 버린 내 발을, 그걸 보고 있는데 썩 나쁘지만은 않았어. 곧이어 다른 발이 따라올걸 알아서였을까, 나는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는데 하나도 어색하지 않았어. 지금 생각하니 조금 이상하네. 나는 분명 여기 고립되어 있고, 누군가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는 중인데.


어물쩍 그렇게 생각하기로 한 걸까, 공간에 맞춰 나는 기어코 형태라도 바꾼 걸까. 그러게, 그러고 보니 한 해가 넘는 시간 동안 나는 사랑의 부재를 전혀 의식하지 못했네. 무척이나 소중했던 그것을 나는 너무 쉽게 바다에 던져버린 것 같아. 그래서 한동안은 괴롭기도 했잖아. 이제야 기억났다, 내가 항상 갈구했던 것.


이곳에도 사랑은 존재해. 갈증 나서 섬 끝으로 달려가는 내게 자기 물병을 쥐여주는 사람이 있었어. 매 시각 남모르게 나는 위태로운데, 나를 한사코 위태롭지 않게 해 줬어. 그런 당신이 죽었을 때 나는 오랜만에 펑펑 울어도 봤는데, 그것마저 나한테는 위로였어. 내가 받아본 십 년 만의 위로여서 더 무거웠던 탓이겠지.


내가 버렸던 사랑을, 내 것이었던 사랑을 언제쯤 이 넓은 바다에서 건져내 떠날 수 있을까. 내일이 되면 하나씩 까먹었던 기억이 떠오르겠지, 오늘 아침 그랬던 것처럼. 그녀가 죽었던 날 점심에도 하늘은 새하얗기만 했는데, 오늘도 꼭 누구 한 명이 죽어야 끝날 하루 같았는데 벌써 저녁 열한 시가 지났네. 이 기억은 달콤하지는 않아서 바로 지워버렸어.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며칠 전에는 바넷 뉴먼의 부러진 조각을 떠올렸어. 오래 걸렸더라고, 내가 어떤 사랑을 했고 어떤 것 때문에 어떻게 사랑까지 버리게 됐는지. 그걸 떠올려서 이렇게 괴롭기까지. 머리 위에 춤추는 모빌이 아니라 네 몸짓이나 눈에 좀 더 담아둘걸, 그러면 더 빨리 기억을 찾았을 텐데.


나 사는 섬엔 아직 썰물이 없어서 잊는 것 말고는 외로움을 잃어버리는 방법 같은 건 아직 모르겠어. 너를 사랑할 때도 그러했던 것처럼. 도통 익숙해지지 않는 외로움이네. 애써 밀란 쿤데라의 말을 이해해 보려 하지만 내 손으로 날려 보낸 사랑이라 누구를 탓할 수도 없잖아. 한껏 괴로우라지.


몇십 분 후에, 다시 또 내일을 빌려와 오늘이 되면 나는 더더욱 괴로울 거 같아. 그래도 다음 계절, 늦어도 이번 가을이 오기 전까지만, 나는 그때까지만 괴로울게. 나라는 인간이 늘 품고 살아야 했던, 예를 들면 심장의 시큼함 같은 것들, 남몰래 참았던 흐느낌들, 다시 기꺼이 그것들을 껴안으러 가려면 그만 괴로워야지. 얼른 내가 되어야지. 물론 그전에 눈부터 치워야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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