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바로 자살이다.

by 신동인
Untitled, 1970

그때 당신이 자살했을 때 나는 울지 못했다. 운다는 것이 동정으로 비칠까 입을 꽉 다물고 치아 사이를 비우지 않았다. 당신이 떠난 이유에 대해 여러 입에서 갖가지 문장들이 태어났지만 나는 단 한 개도 귀에 담지 않았다. 이유가 중요하냐며 성을 냈다. 이유는 없다. 룰루 밀러는 인생의 의미가 뭐냐고 물었고, 그의 아버지는 대답했다. 의미는 없다고. 신도 없고 너도 의미가 없다고. 그러면 모든 것에 되레 어떤 의미라도 붙일 수 있는 것 아닐까? 나는 생각했었다. 신이 있어서 신을 믿는 사람이 있다면 신이 없어도 없어서 신을 믿는 사람이 있듯이. 죽고 싶은 것에 무슨 이유가 필요할까. 무슨 이유를 대서라도 죽고 싶은 사람도 분명 있는 것을. 나는 죽고 싶었다. 학교 중앙도서관 옥상에는 ‘사색의 공간’이랍시고 독립된 공간이 있는데, 시간이 빌 때마다 올라가 기대어 있었다. 사색을 했냐면 내가 한 것이 사색인지는 모르겠다만 그다지 깊이 있지 않은 생각은 제법 했던 것도 같다. 내가 왜 죽고 싶은가에 대해서, 아니면 죽지 않은 것을 왜 부끄러워하는지, 너무 괴로워서. 아침이면 눈을 떠서, 그러니까 눈을 뜨자마자 죽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것이. 두 손이 멀쩡해서 내 처절한 얼굴을 숨길 수 있는 것에 감사하기보단, 내 뺨 하나 힘차게 내리치지 못하는 두 손이 부끄럽기만 했다. 쉽게 주둥이로 곱씹어대는 죽는다는 단어가 역겨웠다. 아무것도 갖고 있지 않은 내가, 애초에 가진 적 없는 무엇을 잃을까 두려워서 죽지 못하고 있으면서, 오늘은 날이 유독 더 파래서 죽고 싶다는 말이나 중얼대는 것이 역겨웠다.


수업이 끝나면 무작정 걸었다. 청계천을 굳이 돌아가지 않고 그 길을 따라서, 을지로에서 종로, 나아가 광화문이 멀리서 보이기 시작하는 사거리까지, 일주일에 못 해도 나흘을 그렇게 걸었다. 그만큼 나를 자주 찾아와 사랑한다고 말하던 네가 물은 적 있다. 왜 그렇게 걷느냐고. 한 번은 청계천을 피해서 걷다가, 종각역 사거리에 신호가 걸려 멈춰 서있던 적이 있어. 아직 저녁 일곱 시는 안 되었던 것 같고, 저 높이 쌓여있는 빌딩들이 되게 눈부셨던 날인데, 이어폰에는 아무 노래도 나오고 있지 않았고, 이어폰을 뚫고 들리는 건 눈앞에 쌩쌩 오가는 차 소리뿐이었어. 그걸 멍하니 바라보면서 그냥 뛰어들고 싶다는 생각뿐이었어. 그때 알았지, 내가 걷는 이유를. 걷는 모든 순간, 죽을 수 있는 모든 기회를 피해서 내 발로 도망치는 중이었어. 나는 알고 있었던 거야. 나는 절대로 죽지 못한다는 걸. 차들 속에 뛰어들지는 못해서, 그래서 이렇게 멀쩡하게 집으로 돌아가는 버스를 타려고 굳이 한 시간을 힘들게 걷는 거라고. 나는 살고 싶어서 걷는 중이었어. 죽고 싶은 이유는 모르겠으니, 살고 싶은 이유라도 찾으려고. 이 모든 말은 삼키고 너한테 대답했던 것 같다. 그냥 죽고 싶어서 걷는다고.


살고 싶은 이유를 찾았냐고 물으면 어쩔까 싶어 에둘러 말했던 걸까. 죽고 싶은 것에는 적확한 이유 하나 갖다 놓지 못했으면서, 살아가야 하는 이유는 왜 그렇게 찾으려 애썼는지. 모르겠지만 애썼다. 고작 두 글자로 끝나는 우울의 병명을 목에 걸지 않으려고, 더 이상은 나를 사랑한다고 말하는 사람한테 절대 궁금하지 않으면서, 이런 인간인데 왜 사랑하느냐고 묻는 비참한 하루를 더는 살고 싶지 않아서. 매일이 불행했지만 매일 불행과는 거리가 먼 단어들로 나를 껴안았다. 당신이 가벼이 떠나고 나서, 내가 이제껏 가볍게 입에 올렸던 죽고 싶다는 문장이 무거워졌던 그해 겨울에, 그때부터 나는 그랬다. 내가 너무 부끄러워서 부끄러운 만큼 살고 싶어 하자고, 자신을 타일렀다. 또 누구의 사망 소식이 들린 초겨울이었다. 이름을 팔았던 사람이 선택한 죽음에 또 누군가는 몇 문장을 쉬이 던진다.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서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의문도 비난도 애도도 하물며 동정도. 죽음을 아무렇게나 쓰고 지웠던 내가 감히 누구의 죽음을 마주할 수 있을까. 죄책은 아무것도 가진 적 없는 내가 처음으로 가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그만하면 안 될까. 누가 죽었다고, 그래서 죽었다고, 저래서 죽었다고. 왜 죽었냐고. 물꼬리 막지 말고 이제 그만 흘러가게 두면 안될까. 의미는 없으니까. 삶에 의미가 없다면, 신도 없고 내세도 없고 운명도 없고 인생에는 아무 의미가 없다면, 그렇다면 기억하지 말자. 의미 없으니까. 슬퍼하지 못하겠다면, 기억조차 하지 말자. 잊자. 그 정도는 해도 되지 않을까? 내 죄책은 오늘도 나를 쓰라리게 만든다. 이토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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