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26 시즌 첫 스노보딩
2025년이 지고 2026년이 도래했다.
우연이든 필연이든, 지인이든 일면식 없는 타인이든 이 글을 읽고 계신 모두가 모쪼록 새해 복이 가득한 한 해가 되시길!
2025년의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는 것이 좋을까 아내와 함께 고민했었다.
한국의 추위야 굳이 말로 하지 않아도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었고, 일본은 연말연시 연휴가 길기에 추위를 뚫고라도 한국을 가기엔 비행기 티켓값이 무섭도록 비싸지는 시즌이라 당최 엄두가 나지 않았다.(한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다.)
그래서 답은 정해졌다.
논다. 회사도 놀고 거래처도 놀고 따라서 나도 놀고 아내도 놀며, 아이는 방학중이니 집에서 뒹굴거릴 바에는 멀지 않은 도쿄밖 어딘가로 놀러 가는 것이 우리의 답이었다.
나는 고등학교 때부터 스노보딩을 취미로 즐기고 있고, 아이는 나에게 보드를 배워 세 시즌 정도 함께 보딩을 다녔다.
25년도의 여름은 역사에 없던 더위를 동반한 여름이었고 그 여름이 길기도 길어 지구가 데워질 대로 데워진 탓인지, 12월 말에도 도쿄의 한낮 기온은 12~13도를 웃돈다. 춥지 않고 따라서 첫눈의 소식도 아직이다. 이는 우리가 목적지로 결정한 나가노현도 마찬가지였다. 나가노 동계올림픽의 영광을 재현해 줄 설국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것이다.
그래도 어쩔 수 없다. 2박 3일 예약은 변동할 수 없고 가기 전에 한 번은 눈이 오겠지… 하는 기대를 앉고 일단 채비를 꾸렸다.
다행히 우리가 출발하기 이틀 전, 나가노현에 제법 눈이 왔다는 뉴스를 보았다. 하얀 설국까진 아니겠으나 어쨌든 보딩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슬로프의 현황을 알려주는 게시글을 확인하고 여행에 대한 기대감을 높였다.
우리의 목적지는 나가노현 치노시(長野県茅野市)에 위치한 시라카바코(白樺湖).
해발 1416m에 자리한 인공호수를 둘러싼 몇 곳의 스키장 중 하나인 로열힐 스키장이 이번 시즌 첫 라이딩을 할 곳이고, 우리의 호텔은 그곳에서 차로 5분 거리에 위치한 시라카바코(호) 뷰 호텔이다. 이 주변의 스키장들과 호텔은 아주 시설이 노후한 곳들이 대부분이다. 일본의 경제호황기 시절 우후죽순 생겨난 스키리조트와 호텔들.. 그것들은 버블이 붕괴하고 일본의 경제호황의 형광등이 꺼질 때 모두 함께 빛을 잃었다. 그럼에도 운영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남은 아주 몇 개의 스키장과 낙후한 호텔들이 대형 프랜차이즈 기업들에게 매각되면서 어려운 사정 속 다양한 차별화를 거쳐 지금껏 운영을 이어오고 있다.
우리의 숙박시설인 뷰 호텔도 그중 하나인데, 뷰 호텔은 일본의 이토엔 호텔즈(Itoen Hotels)가 사들여 호텔체인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시설은 낙후했으나 싼 가격과 온천, 가성비 석식 등 나름의 차별점을 무기로 매년 만실을 채우고 있는 곳이다.(출처:Google)
가성비 좋은 호텔에서 겨울이라고 대게페어를 하니(저녁뷔페로 대게를 무한정 먹을 수 있다), 종일 신나게 보드를 타고 저녁엔 게를 무한정 욱여넣으며 체력을 보강할 수 있어 아이도 너무 좋아하는 곳이다.
숙소의 소개는 간단히 하고, 어쨌든 이렇게 아들과 함께 하는 네 번째 스노보딩 시즌이다.
처음 스노보딩을 시작할 때 아들 녀석은 19cm의 부츠를 신었었는데 어느덧 부츠 사이즈가 24.5cm가 되었다. 데크의 길이도 첫 시작 때 118cm였던 것이 이번 시즌 새로 장만한 데크는 130cm를 넘어섰다.
아이의 성장을 느끼는 동시에 적지 않은 출혈감을 느끼기도 한다.(스노보드는 정말 비싼 취미이다)
네 번째 시즌을 맞이하는 아들은 아직 아주 능숙하게 보딩을 하지는 못하지만 여행 며칠 전부터 유튜브로 다양한 스노보딩 영상을 찾아보며 텐션을 올려보기도 하고 이전에 찍어둔 자신의 영상을 돌려보면서 이번엔 어떻게 타볼지 스스로 나름의 계획과 목표를 세우기도 한다. 정말 기특하다. 이래서 돈 들여 같이 취미 하는 맛이 있다 싶다!
오전 9시 30분부터 시작한 보딩은 오후 4시가 되어서야 끝이 났다.
자! 이제 호텔로 내려가 얼어붙은 몸을 따듯한 온천에 녹여내고 맛있는 호텔밥으로 저녁만찬을 즐기면 오늘 하루는 너무 성공적일 것이다!
둘 째날이 밝았으나 아들 녀석의 표정과 목소리가 심상치 않다. 조식을 패스한다는 아들의 기운 없는 목소리… 호텔조식을 그렇게도 좋아하는 아이인데 패스라니.. 정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다.
전날 먹은 대게가 문제였을까, 전날 온종일 힘들게 보딩을 한 것이 원인이었을까 문제를 파악하고 대처방안을 마련하기도 전에 아이는 화장실로 달려가 게워내기 시작했고 그렇게 둘 째날 아들은 총 12번을 게워냈다.
이토엔 호텔은 어느 곳의 호텔을 가더라도 반드시 이 세 가지는 갖춰져 있다. 온천, 탁구장, 노래방.
그리고 이토엔 호텔의 이 3요소는 우리 아이의 최애인데, 둘 째날 이 셋을 다 패스했다.
여행이 썩 유쾌하게 추억되지 않을 것 같아 마음이 아팠고 또 부모로서 괜히 미안함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그 게를.. 내가 먹었어야 하는데..(사실 나는 갑각류 알레르기가 있어 게는 입에도 대지 않았다)
체크아웃 당일, 아들은 그래도 좀 컨디션을 회복했는지 어제보단 좀 생기 있는 얼굴로 깨어났다.
2박 3일 여행일정 중에 몸이 아픈 탓에 스노보드는 하루밖에 타지 못했지만 그래도 기대감에 찬 얼굴로 다음번에 꼭 다시 오자며 되려 아빠를 격려해 주는 모습에 깊은 감동과 고마움을 느꼈다.
집에 돌아오는 길, 날씨도 아쉬웠는지 밝은 햇살과 투명하리 만큼 아름다운 후지산을 우리의 차창밖으로 선물해 주었다.
날이 생각보다 따듯하고 눈도 적어 첫날의 보딩도 쉽지만은 않았고 둘째 날은 아들의 다운으로 아쉬움을 남겼는데 도쿄로 돌아온 후 급격히 추워지더니 밤에는 제법 굵직한 첫눈을 내려주었다.
컨디션을 회복한 아들 녀석과 추위도 잊은 채, 한참을 어둠 속에서 눈을 반기며 놀았고 이렇게 우리의 연말은 하얗게 마무리되었다. 다행이다.
계획하고 목표했던 것들을 충분히 다 해내지 못한 연말의 여행이었지만, 굵직한 함박눈이 아쉬운 마음을 하얗게 씻어주었고 때 묻은 마음까지 하얗게 색칠해 주었으니 결과적으로는 행복한 연말이었고 2025년의 좋은 마무리였으리라!
그리고 새하얀 도화지처럼 깨끗한 시작을 기대하게 되는 2026년을 맞이했다.
우리 가족, 새복많!
해피 20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