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첫 번째 이별 식탁
푸른 어둠이 내리깔리고 그 아래 비가 쏟아지는 날.
이직한 직장으로의 출근이 일주일 남은 백수는 날씨에 취해 분위기에 취해 요리에 대한 의욕을 잃었다.
되도록 손이 덜 가는 음식을 하고 싶어 냉장고 문을 열었다. 사다 둔 어묵이 부디 자기를 요리해 달라며 앞칸에서 축 늘어져 나를 본다. 어쩔 수 없지 오늘은 너로 정했다!
어묵탕의 동료로 누가 좋을까. 오징어볶음이나 김밥이 좋겠지만 할 엄두가 나지 않고 파스타 재료로 사다둔 베이컨이 보인다. 아무래도 오늘은 볶음밥을 해야겠다.
마늘과 파로 기름을 내고 베이컨과 양파를 썰어서 밥과 볶아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하고 아쉽다.
덮어주는 이가 없어서일까. 오믈렛은 해본 적이 없어 걱정스럽지만 그래도 이 허전해 보이는 볶음밥을 위해 도전하기로 했다.
분명 손이 덜 가는 음식을 하려 했지만 일이 커졌다. 요리는 마치 인생 같구나. 난 늘 일을 벌이고 싶지 않았지만 내 인생은 우당탕탕 32년간 굴러왔지. 어쩌면 그 간극 때문에 괴로웠는지도 모르겠다.
만들어진 달걀지단을 보는 이 마음도 참 괴롭다. 내가 하는 요리는 맛은 나쁘지 않지만 비주얼이 쉽지 않다. 숟가락이 절로 가지는 않는달까. 너덜너덜한 달걀을 보니 이내 시무룩해진다.
민망함에, 내가 좋아하는 국수 맛집 남수 포차에서 밑반찬으로 준 열무김치를 꺼냈다.
맛이 보증된 이 열무김치라도 있어야 이 식탁이 살 것 같았다.
다행히 아빠는 식사를 아주 오래도록 했다. 대학가 식당이라면 10분 컷으로 끝날 메뉴가 30분은 넘게 걸렸다.
아빠는 입맛에 별로 맞지 않으면 더 이상 음미하고 싶지 않은 지, 식사를 빨리 끝내는 경향이 있다.
'프로 음미가'랄까. 프로 음미가의 식사 시간이 딱 그날 요리의 점수인 셈이다.
역시 나야. 비주얼 좀 망치면 어때 맛있으면 그만이지.
아까까지만 해도 망쳐버린 달걀 때문에 내 인생 같다고 한탄하던 여자는 없다.
나는 참 이다지도 가벼운 인간.
지금은 웃으며 말하지만 한동안 나는 인생을 망쳐버렸다는 생각에 괴로운 나날을 보냈다.
그때 필요했던 것은 가까운 사람들의 인정이었다.
"그럴 수 있어. 너 지금 이렇게 방황하는 거 당연한 거야. 슬퍼하는 것도 얼마나 힘든 건데. 앞으로 잘하면 되지."
이런 류의 너무 뻔해서 재미없기까지 한 인정. 이게 전부였다.
그러나 그런 인정이 생각보다 쉬운 것은 아니었던 것 같다.
아빠는 날 비난했다.
"네 사업이 망해버린 것은 너와 나의 수치이며, 네가 이렇게 구는 것도 다 정신을 못 차려서 그런 것이다. 세상에 널 도와줄 이는 아무도 없다. 정신 차리고 어서 걸어라. 너는 아직도 부족하다."
쓴소리로 각성시키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인간에 대한 이해 부족.
좌절에 젖어 고개를 들기 힘든 사람들이 그 메시지 넘어 의미를 알아들을 수 있을까.
사람은 말이지, 그 말에 녹은 정서를 듣는다.
말 밑에 깔린 화자의 생각을 느낀다.
좌절에 젖었다면 젖은 그대로를 인정해주세요.
인정은
내가 결코 병신머저리는 아니었구나. 잠시 길을 잘못 들었을 뿐이구나.
확인하는 과정의 시작이다.
나를 인정해주는 사람에게서 받는 확인으로 말미암아 우린 자기 불안을 떨칠 수 있다.
그래야 나를 한 걸음 떨어져 볼 수 있고, 내가 나아갈 길을 모색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내 존재를 그대로 받아들여주는 많은 이들이 있었고 나는 그들 덕에 다시 나의 길에 설 수 있었다.
그 길을 한참 걷고 나서야 아빠는 나를 인정했다. 내 주변을 둘러싼 많은 못된 것들을 확인해주었다.
이렇게 못생긴 오믈렛도 의심하지 않고 바로 수저에 뜬 것처럼, 나도 좀 빨리 인정해주지.
내 잘못만은 아니었다고.
한편으론
그렇게 모든 것을 안아주기에는 아빠도 벅차지 않았을까. 우린 모두 부족한 인간이니까.
생각하니 또 시큰하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