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달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에어프라이어가 참 좋다. 수육을 냄새나지 않게, 보다 빠르게 조리할 수 있다.
원고료나 월급이 들어온 날에는 기분이 좋아서 아빠가 좋아하는 수육을 해주곤 한다.
오늘도 그랬다. 원고료가 입금되어 기분이 좋아진 나는 특별한 규칙도 아니지만, 정육코너에서 고민 없이
목살을 집어 장바구니에 넣었다.
기분이 좋은 날만 수육을 할 수 있는 것은, 수육에 얽힌 긴 다툼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아빠만 모르는 수육의 유구한 역사.
당신과 나의 일곱 번째 이별 식탁
-큰 냄비에 고깃덩어리와 물을 붓고, 된장을 풀고 양파와 마늘, 대파를 넣고 한참을 끓인다.
이것은 에어프라이어가 우리 부엌에 들어오기 전, 문명 이전의 수육 조리법이다.
빗살무늬토기가 구석기에서 신석기로의 발전을 보여주는 상징물이라면, 에어프라이어 또한 문명의 한 축을 담당하지 않을까. 이것은 레볼루션, 혁명이다. 어떻게 수육을 이렇게 냄새 없이, 심지어 겉바속촉으로 조리할 수 있을까. 연신 에어프라이어에 감탄하다가 국을 놓쳤다. 결국 냉장고를 뒤져 찾아낸 숙주로 국을 급조했다.
급했던 나머지, 카메라 속 숙주 국이 인체의 신비를 보여주는 이미지처럼 징그러워서 사진이 흔들려버렸다.
그래도 괜찮다. 수육이 너무, 심하게 맛있으니까. 이 날 아빠는 큰 덩어리 하나를 다 잡쉈다.
다행이다. 좋아하는 마음은 깊지만 이제 또 한동안은 못 볼 예정이니까.
내 나이 스물셋, 스물넷 즈음. 항암 치료 중이던 엄마는 병원에 있었고, 나는 주말마다 양평 집으로 내려와, 아빠 식사를 차렸다. 부엌일이 처음인 딸의 요리가 부실했는지, 어느 날엔 장을 보러 가는 내게 아빠가 전화했다.
"오늘은 고기 좀 삶지!"
수육이 먹고 싶다는 뜻이었다. 엄마에게 전화로 물어본 수육 조리법은 생각보다 간단했다. 재료를 모두 때려 넣고 고기가 삶아지기를 기다리는 것이 전부였다. 그래서인지 음식 이름에서 느껴지는 위용에 비해 손쉽게 만들어냈다. 오늘처럼 그날도 아빤 한 덩어리를 뚝딱 잡쉈다.
엄마는 수육 만드는 게 처음인 내가 걱정이 돼 결국 전화를 걸어왔다.
"잘했어? 맛있었어?"
"응, 쉽던데? 익었는지 맛보니까 맛있더라고."
"맛만 봤어? 밥이랑 안 먹고?"
"그러고 싶었는데 아빠가 다 먹었어."
아빠가 다 뺏어 먹어서 내가 못 먹은 게 아니었다. 나도 알고, 엄마도 아는 일이라 농담 삼아 말했고 엄마는 웃어넘겼다. 그런데 다음 날, 수육만큼은 아니지만 아빠가 좋아하는 두부 동그랑땡이 반 이상이 남았다. 심지어 쌀밥까지. 이 이상한 소식을 엄마에게 전했다.
"엄마, 아빠가 두부 동그랑땡이랑 밥을 남겼어. 무슨 일이지."
잠시 말이 없던 엄마는 속이 터진다며 아빠를 나무랐다. 어제 엄마는 내가 수육을 못 먹은 것에 화가 났고 아빠에게 전화해서 애 먹을 만큼은 남겼어야 하지 않냐고 타박을 하고 말았다. 아빠는 거기에 마음이 상한 것이고.
나와 통화를 마친 엄마는 아빠에게 바로 전화를 걸었다. 안방에서 들려오는 통화소리로 그의 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남겼지 그럼. 그걸 또 일르드나? 많이 먹는다고 뭐라 하니까 남겼지!"
잔뜩 토라진 아빠를 엄마가 어떻게 위로했는지, 아빠는 조금 밝아져서 전화를 끊었고 다행히 우린 어색하지 않은 저녁을 보냈다.
일 년 뒤, 엄마와 나, 아빠가 한 집에 있을 때였다. 아직 항암이 끝나지 않은 엄마는 대부분의 날을 혼자 보내는 아빠가 안됐다며 수육을 준비했다. 수육의 단점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것인데, 비위가 약한 항암 환자가 장시간 고기 삶는 냄새를 맡는 것은 좋지 못한 일이었다. 약간의 울렁증을 느끼던 엄마는 결국 모든 조리를 끝내고 앓아누웠다. 아빠가 집에 도착했을 때, 엄마는 잠들었고 아무것도 모른 채 아빠는 오래간만에 맛있는 식사를 했다. 우리 마음은 알 수 없는 방향으로 튀거나, 뜻밖의 것과 만나 꼬여버리기도 하는데, 내가 조리를 했어야 했다는 후회가 아빠의 순진무구한 식사 장면과 만나 아주 나쁘게 꼬여버렸다.
‘엄마가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빠가 봤어야 했는데.’얽힌 마음과 함께 입이 삐죽 나왔다.
그리고 5년 뒤, 아빠는 취업을 목전에 둔 아들에게 수육이 먹고 싶다는 말을 한다.
그날은 아들의 면접 하루 전으로, 오랜 시간 입사를 꿈꾸던 회사의 면접이었다. 당시 아빠의 저녁식사를 책임지고 있던 동생이었지만, 그날만큼은 온전히 면접 준비에 시간을 쏟아야 했고, 항문외과 수술 후 집에서 요양 중이던 아빠는 보양식이자 최애 음식이 먹고 싶던 날이었다. 서로 다른 욕구가 충돌해 빚어낸 비극이었다.
나와 달리 아빠에게 크게 화내는 일이 없는 동생이라서 다행히 둘 사이의 말다툼이 오가진 않았지만, 면접으로 긴장되어야 할 분위기가 한동안 엄한 일로 얼어붙어 있었다.
평생을 힘든 일만 하며 산 아빠는 집안일 중에서도 특히 끼니 챙기는 것을 어려워한다.
에너지원이 될 고기 메뉴가 자주 필요하고, 담백한 맛을 좋아하다 보니 수육 이야기를 자주 하게 된다.
아빠만 모르는 이 이야기를 생각하면 그의 무심함과 순진함의 불분명한 경계에 화가 나면서도 애잔한 마음이 들어 화를 거두어버리고 만다. 한동안은 수육을 안 하겠다고 했지만, 아마 한 달 뒤, 원고료가 들어오는 날에는 또 에어프라이어에 목살을 넣고 있을 것이다. 그 날은 성식 씨의 수육 파티. 한 사람만이라도 즐거운 파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