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밥상에는 그 사람의 마음이 담기는 것일까.
요즘 술 생각이 많이 나는 지 자꾸 술도 안 마시는 아빠에게 술안주로 좋은 음식을 차려 준다.
온갖 부조리함과 인류애 상실을 느낄 수 있는 고단한 직장의 하루가 끝나면 소주의 쓴 맛으로 이 모든 것을 밀어내 버리고 싶지만, 내일이면 다시 그 속으로 걸어 들어가야 하기에 안쓰러운 나를 위해 오늘의 내가 참는다.
나 대신 성식 씨가 술안주 메뉴로 고된 하루의 끝을 잘 정리하기를. 마음을 담아 고슬한 밥을 그릇 안에 폭 안겨 본다.
당신과 나의 열네 번째 이별 식탁
감자 짜글이 만들기
감자 짜글이 재료 : 감자(2), 양파(1/2), 대파(큰 줄기 1), 통조림 햄(1), 청양고추(FREE)
양념 : 다진 마늘(1), 고추장(1), 설탕(1), 고춧가루(2), 간장(4), 된장(1/2), 물(700~800ML)
채소 재료를 손질하고 양념을 쉐킷 쉐킷 섞어 만든다. 물을 꼭 적당히 넣자! 난 적게 넣다가 망했다!
통조림 햄은 위생백에 넣어 조물조물 으깬다.
냄비에 감자를 깔고 양파를 깔고 으깬 햄을 뿌리고 양념을 붓는다.
대파와 청양고추를 퐁당퐁당
감자가 익을 때까지 끓이면 완성
숙주 잡채 만들기
숙주 잡채 재료 : 숙주(3줌), 닭가슴살(500G), 피망(1), 오이(2), 양파(1), 나는 애호박(1/3), 당근(1),
청양고추(2) 다진 마늘(2), 소금(1), 간장(1), 설탕(1), 굴소스(1), 참깨가루(1), 챔기름(1), 후추 약간
야채를 손질하고, 오이의 경우 굵은소금으로 절여주면 좋다. 난 과감한 사람이라 생략했다.
숙주를 1분 30초간 끓는 물에 살짝 데친다.
닭가슴살도 데친다! 난 훈제 냉동 닭가슴살이라 전자레인지에 2분 30초간 데웠다.
닭가슴살 데치는 동안 다듬은 채소를 볶는다. 소금 살짝 친다.
챔기름을 프라이팬에 두르고 닭가슴살에 소금, 설탕, 굴소스, 후추 약간, 간장, 청양고추를 넣고 볶는다. 고추기름도 있으면 좋다.
다 볶아진 재료들을 모두 섞는다. 쉐킷 쉐킷.
마지막으로 참깨가루 뿌려주면 완성
보기만 해도 고된 노동을 끝내고 온 김 씨, 박 씨가 함바집에 앉아 소주잔을 기울이는 모습이 상상된다.
오늘 난 신 씨가 되어 한 잔 기울이고 싶었지만 한 잔으로 도저히 끝낼 수 없을 것 같아 입맛만 다신다.
내일은 아침부터 취재가 있어서 나의 저녁은 단아해야 하므로. 마음 한편에선 회사 놈들을 위해 내가 왜 희생해야 하냐고 분노의 트리가 역정을 내지만, 주말에 꼭 맛있는 것 먹여주겠다고 달래준다. 우쭈쭈 우쭈쭈, 금요일에 우리 꼭 맥주 마시자아?
어렸을 적에 아빠와 싸우고 집안일을 파업했던 엄마가, 다시 마음을 다잡고 살림을 시작하는 날엔 식탁 위에 못 보던 음식이 올라오곤 했다. 그땐 철이 없어서 "엄마 살림 GG 친 줄 알았는데 드디어 새로운 음식을 하셨다!"
라고 떠들다가 눈 흘기는 엄마와 눈이 마주치면 까르르 멍청이처럼 웃어넘겼다.
마음을 다 잡고, 다시 현실 세계로 이 악물고 복귀할 채비를 하느라 더욱 음식에 정성을 들였음을 그땐 몰랐다.
또래 친구들이, 어렸을 적 부모님이 치킨을 사들고 퇴근했던 날이 유난히 그들이 고단한 하루를 보낸 날이었음을 사회생활을 하면서 알게 됐다고 하는데, 우리 아빤 고단한 날이면 과자를 사 먹는다.
우리한테 치킨을 사주는 게 아니고, 카라멜과 땅콩, 에이스, 빠다코코넛을 사 와서 고독한 자신의 작은 성으로 들어간다. 그래서 치킨 이야기에 '그래, 그랬지'라고 응수할 순 없지만, 그때의 냄새가 나고, 그날의 공기가 느껴져서 마치 과거에 그랬던 기억이 있는 것만 같다. 방학 일기에 가짜 일기라도 쓴 것인지. 그래서 가짜가 진짜 추억처럼 기억에 남은 것인지 알 수는 없지만.
우리에게 마파두부를 해준 그날의 엄마가 생각나고, 처진 어깨에서 내려온 손 끝에 과자로 가득 찬 봉투가 들려 있는 아빠 모습에 고개가 끄덕여지는 날이 오고야 말았다.
이 삶이 이렇게 슬픈 일이 많을 줄 알았다면 어서 어른이 되고 싶다는 쓸데없는 소망은 갖지 않았을 텐데.
여름방학 일기에 가짜 일기를 쓰고 있는 열한 살의 나를 만나면 어깨를 잡고 말해주고 싶다.
좀 더 느리게 성장해도 된다고. 너는 나중에 많이 속상해지기엔 지금 너무 여리다고. 그 여름이 많이 더워도 그곳에 더 오래 머물러 있으라고.
회사 근처에 꽃집이 있다. 내일 퇴근길엔 결국 어른이 된 나에게 오렌지색 메리골드를 선물해야겠다. 메리골드의 꽃말은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 뭐든 먹어도 되는, 자유할 주말까지 반드시 행복하기를, 평일을 부디 버리지 말고 잘 살아내기를, 꽃 한 송이가 위로가 되기를. 눈 감으며 내일의 나를 위한 기도를 드린다.
다음 날, 기대하고 있을 나를 위해 메리골드 선물 약속을 지켰다. 반드시 지킨 약속이 반드시 오고야 말 행복을 더 빨리 오라고 재촉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