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지금도 인기가 좋지만, 어렸을 적 참치마요 삼각김밥은 센세이션이었다.
고3 때, 도서실에서 선생님 몰래 pmp로 본 거침없이 하이킥의 윤호도 좋아했던 참치마요 삼각김밥.
애석하게도 나는 삼.김을 잘 뜯지 못해서 자주 사 먹지는 않았다. 같이 간 친구에게 부탁이라도 할라치면, 이 녀석들이 매번 눈을 반달로 뜨고 "너 삼각김밥도 못 뜯어?" 하는 꼴에 울화가 치밀기도 했으니 조금 꺼려졌달까.
그래서 삼.김 보다는 한솥의 참치마요 덮밥을 더 좋아했지만, (물론 한솥은 치킨마요가 진리) 우리 동네는 시골이라 한솥이 없었다. 그 시절 우리 기준으로 한솥이 있으면 도시였다.
나이 서른이 넘어서 보니, 참치마요 덮밥 이 녀석 꽤 만만하고 뚝딱 만들어낼 수 있는 메뉴였다.
그래서, 일주일 중 가장 피곤한 오늘, 수요일의 메뉴는 간단한 참치마요 덮밥. 너로 정했다!
당신과 나의 열다섯 번째 이별 식탁
재료 : 양파(1/4), 참치 한 캔 (많이 먹고 싶다면 왕 큰 것을 사라, 왕 크니까 왕 맛있다!), 달걀(4), 식초(약간)
깻잎(혹은 김가루), 설탕(1), 마요네즈(3)
참치마요 덮밥 만들기
양파 1/4을 다진다. 양파가 있어야 참치의 느끼함을 잡아준다. 잡았다 요 놈! 양파가 없다면 묵은지를 물에 씻어 다져주자. 직장 상사라고 생각하고 마구마구 다져주자. 다듬은 이 아이를 그릇으로 옮긴다
깻잎 (3장 정도가 적당)을 돌돌 말아서 잘게 썰어주자. 김가루로 대체해도 좋다!
참치 기름을 빼주자. 채에 바쳐서 빼줘도 되지만, 설거지가 귀찮으니까 대충 빼준다
기름 뺀 참치를 그릇에 옮겨 담아 양파와 섞고, 식초 약간, 설탕(1), 마요네즈(3)를 넣어 쉐킷 쉐킷
달걀은 3개 풀어서 달걀 알끈 제거하고(요거요거 비릿하다 꼭 제거하자) 섞어서 달궈진 프라이팬에다 촤르륵 뿌리고 약불에서 마구마구 망쳐서 스크램블 에그를 만들자. 망친다고 생각하는 것이 뽀인트. 익힘 정도는 취향껏!
그릇에 밥을 올리고 스크램블 에그를 밥 주변으로, 도넛 모양처럼 둘러준다.
그 위에 아까 양파와 섞은 참치를 밥 위에 올려준다.
잘게 썬 깻잎 혹은 김가루를 위에 올리고, 스크램블 에그 위에 돈가스 소스를 조큼 뿌리면 초딩 입맛 완성!
참치마요 덮밥 만들기를 설명하며 신난 것인지, 찜닭 만들 때보다 레시피가 복작스러워 보인다.
맛있어서 신난 것이니 어쩔 도리가 없었다. 사람이 신나면 주절거리게 되기도 하지 않나.
58년 개띠 중에선 참치마요 덮밥과 같은 한 그릇 식사를 정식 식사와 차별하는 분들이 있다고 한다. 정성 면에서 인정을 하지 않는달까. 일요일 오후의 간단한 식사 정도로만 여긴다고 하는데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 순전히 내 주변 이야기지만) "차려주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말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성식 씨는 한 그릇 식사를 좋아해서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내가, 꼭 옛날 엄마 모습 같다. 가끔 엄마는 다른 남자들 욕을 하다가, "그래도 느히 아빤 그러진 않잖아."라며 맥락 없이 아빠를 두둔할 때가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자기 위안 삼는 거 아니냐"라고 말하곤 했다. 구김살 많은 나는 그렇게 꼭 엄마를 무안하게 해야만 하는 별로인 구석이 있었다. 상황 맥락 없는 엄마에게 굳이 감정 맥락 없는 것으로 대응하고 싶었던 것이다. 맥락 없는 게 모녀지간인 것은 확실한 것 같지만. 나도 밥맛없고 정 떨어지게 굴었다 참.
맥락 없는 것은 성식 씨도 마찬가지인 것인지,
내가 끓인 된장찌개를 외면하는 구김살을 가진 성식 씨는 희한하게도 된장국은 호로록, 호로록 경쾌하게 들이켠다. 가볍고 산뜻하게 된장국으로 목을 축이며, 한 그릇 음식 참치마요 덮밥은 깨끗하게 비워졌다.
'그래도 우리 아빤 한 그릇 음식을 타박하진 않아.' 누가 들을까 조용히 혼자 생각한다. 구김살 많은 딸내미가 없는 것이 다행인 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