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과 나의 이별 식탁 : 닭갈비

독립을 앞둔 딸의 아버지를 위한 저녁 식탁 차리기

by 신보라
오늘의 저녁 식사


당신의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저의 소울푸드는 닭갈비입니다.

돼지고기, 소고기의 양념보다 매큼하니 제 입맛에 맞더라고요.

철판에 볶아 육즙이 살아있는 닭갈비의 식감은 왜 이렇게 또 좋은지.

상추에 싸 먹어도 맛있고, 닭갈비 한 점만 입 속으로 직배송돼도 맛있고, 아무튼 맛있는 닭갈비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닭갈비 집은 시내에 있는데요, 시내 학원에서 근무할 때. 그러니까 에디터가 된 지금으로부터 겨우 3개월 전까지 전 학원 강사였네요, 학원 영어강사였을 때, 유난히 힘든 날에는 닭갈비 집에 가서 친구와 2인분에 치즈떡 추가, 그리고 밥까지 야무지게 볶아 먹으면 스트레스가 눈 녹듯 사라지곤 했습니다. 참 야무지게 저녁을 마무리했죠? 그때 야무짐을 다 쓴 탓일까요. 요즘은 도통 야무딱진 구석이라곤 볼 수 없는, 32년 된 국내산 어리버리가 따로 없습니다.


(왼쪽부터) 성식 씨가 사 온 설렁탕, 나의 소울 푸드 닭갈비, 고슬한 흰 쌀 뽭!


좋은 건 한 번 더!!!!!!!!!


당신과 나의 열여섯 번째 이별 식탁


닭갈비


닭갈비 재료 : 닭갈비, 양배추, 양파, 대파, 깻잎, 고구마, 떡볶이 떡

닭갈비 양념 : 고추장(1/2), 간장(1/2), 설탕(1/2), 맛술(1/2), 다진 마늘(1/2), 고춧가루(1/2), 후추, 참기름


닭갈비 만들기

양념에 닭갈비 고기를 10분간 재웁니다. 맛있어질 때까지 잘 자렴!

예열한 팬에 닭갈비를 넣고 바닥부터 잘 익혀주세요

고구마와 떡을 넣고 양념과 골고루 섞어주세요

마지막으로 양배추와 양파, 대파, 깻잎을 넣고 볶아주면 닭갈비 완성!


닭갈비가 특히 고픈 날에는 래퍼처럼 혀를 꼬아 "댓궬비~!! 댓갤비!" 외치곤 합니다. 외쳐 댓갤비!

댓갤비를 여러 차례 외친다는 것은 그날 하루가 매우 고됐다는 뜻이겠지요. 오늘이 그런 날입니다.

꼭 댓갤비를 먹어야 했어요. 시골에는 하나씩 있는 동네 하나로마트에서 생 닭갈비를 샀습니다. 양념도 들어있더라고요. 위 레시피엔 양념을 마치 직접 만든 것처럼 썼지만, 사실 피곤해서 시판용으로 사 왔답니다. 지친 몸으로 양념을 만들었다가 망쳐버리면 그것이야말로 비극 아니겠어요? 그래서 전 시판용을 믿기로 했습니다. 그래도 채소 정도는 직접 다듬는 것이 좋겠습니다. 냉장고에는 오늘 꼭 닭갈비를 해 먹으라는 듯, 우렁 총각이라도 다녀갔는지 양배추, 깻잎, 떡볶이 떡이 있네요. 고구마가 없는 것이 아쉬워 냉동고를 뒤져보니, 맛탕용 고구마가 나옵니다. 오늘의 닭갈비는 운명인가 봐요.


흰 옷에 빨간 양념을 튀겨가며 맛있는 댓갤비를 완성했습니다. 맛탕용 고구마의 때깔이 영롱해서 고기보다 먼저 맛을 봤어요, 세상에 누가 닭갈비 양념에 꿀을 넣었지요? 닭갈비 속 고구마에서 꿀 바른 맛탕 맛이 나네요.

그러나 성식 씨 취향은 아니었던 것 같아요. 고구마가 닭갈비의 고구마처럼 얇고 기다란 모양이 아니어서 그런 것인지, 큰 정육면체 주사위 같은 고구마를 다 남겼어요. 나이 든 아저씨가 은근히 까탈스러운 구석이 있네요.


그래도 영혼을 충전시키는 소울푸드를 먹었더니 기분이 한결 나아졌습니다.

좀처럼 설거지 통에 먹은 그릇을 넣어 두질 않는 성식 씨의 여전함이 오늘은 참을만합니다.

심지어 고구마를 남겼는데도 괜찮습니다. 된장찌개 남긴 것에 마음이 상했던 것을 생각하면, 오늘의 트리는 괄목할 만한 차이를 보이네요.

평소보다 더 피곤한 상태에다 기분까지 악에 바쳐 있었는데 조리대에 올려 둔 그의 그릇을 봐도 속 쓰림이 덜 합니다. 소울푸드의 힘은 별 게 아니고, 이런 데 있나 봅니다.

작은 일로 화가 나는, 참 치사해지는 순간에 약간의 너그러움이 발휘되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기분이 썩 즐겁지는 않아서, 입을 꾹 다물고 설거지를 하는데, 물 컵을 가지러 거실로 나온 성식 씨가 한 마디 합니다.


“닭갈비가 아주 맛이 좋네?”


삶의 무게가 눌러 아래로 처진 입이 조금은 인중 쪽으로 올라왔습니다.

일상이 그저 이렇게, 소울푸드로 위로받으며, 작은 칭찬에 기운을 차리기도 하면서 작고 밝게 흘러갔으면 좋겠습니다.

그 정도만 되어도 살 만할 것 같아요. 그 정도에도 잘 굴러갈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는 평화롭게.

우리에겐 이런 대단하지 않은 이유로 소울푸드가 필요합니다.


당신의 지친 일상을 위로하는, 소울푸드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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